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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의 시대 미생의 시대
싸이의 시대 미생의 시대
  • 교수신문
  • 승인 2013.02.19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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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싸이가 수퍼볼 광고에 등장했다. 유튜브 최다 조회수를 넘어 세계적 기업들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제작하는 수퍼볼 광고 모델에까지 발탁된 것이다. 이제 싸이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최고의 스타임이 확인됐다. 싸이의 떠들썩한 수퍼보울 등장과 비슷한 시점에 웹툰 「未生」은 조용히 100수(회)의 착점을 마무리했다. 싸이의 뮤직비디오가 폭발적으로 인기를 확산시켜 가고 있던 시기에 시작됐던 「미생」은 그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꾸준한 걸음으로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연재되는 수많은 웹툰 중 가장 높이 평가받는 만화의 위치를 획득했다. 싸이의 인기와 「미생」의 인기는 그냥 우연히 겹친 대중문화의 현상 중 하나일 뿐일까. 이들의 인기 사이에 혹여 연관성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우연히 겹친 문화현상? 「미생」은 직장인, 그 중에서도 종합상사맨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만화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 잊혀진 종합상사맨처럼 장그래에게서도 그리 특출한 점은 보이지 않는다. 프로기사를 꿈꾸다 입단에 실패하고 과거 후원자의 소개로 종합상사의 인턴 일을 시작해 2년 계약직 사원이 된 후 거의 가망이 없어 보이는 정규직 사원의 길을 위해 분투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만화의 제목인 미생은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언제든 해고될 수 있고, 그래서 아직 확실히 살았다고 할 수 없는 그의 처지를 상징한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 인기를 끌었던 이른바 기업 만화에서 종합상사맨은 우리 만화의 단골 캐릭터 중 하나였다. 박봉성과 허영만 등의 만화에서 그들은 불굴의 의지와 낙관적 정신, 패기로 무장한 채 야심만만하게 세계를 향해 도전하는 존재로 그려졌다. 그들의 경쟁상대는 세계적 기업이나 최소한 국내 굴지의 경쟁기업이었고 자신감 넘치는 그들의 도전은 결국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도록 해주었다.

처음부터 정규직이었던 그들에게 「미생」의 장그래에게서 보이는 자신의 지위에 대한 고민 따위는 조금도 존재하지 않았다. 흥미로운 것은 「미생」이 과거 고도성장 시대 우리 사회가 추구하던 이상적 모습의 상징이었던 제1회 응씨배 세계바둑대회에서 조훈현의 승리, 모두의 예상을 깨고 열세였던 상황을 극복해 세계에 우뚝 섬으로써 이후 한국 바둑의 전성기를 이끄는데 기폭제가 됐던 그 승부의 棋譜와 나란히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왜 작가 윤태호는 매번 조훈현의 기보로 만화를 시작하는 것일까. 혹시 「미생」은 과거에 대한 향수를 표현하며 막판의 역전극을 추구하는 작품일까. 과거의 기업만화에서처럼 장그래는 결국 누구도 달성하지 못했던 거대한 성과를 올림으로써 자신이 몸담은 회사를 세계적 거대기업으로 성장시키고 최연소 경영자로 자라게 되는 것일까. 동료 인턴인줄 알았던 안영이는 알고 보니 회장의 딸이었고 장그래와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되는 것일까. 하지만 현재까지의 진행 상황을 볼 때 그런 결말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문외한인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기보의 매 수가 지닌 의미에 조응하며 매 회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 같지는 않아서다. 즉 기보는 이 작품의 제목인 미생의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도입된 것일 뿐이다. 작가는 바둑을 끌어 들임으로써 단지 계약직 사원의 처지에 대한 묘사를 넘어 생의 의미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드러내고자 했다. 주지하다시피 바둑에서는 두 개의 집을 확보하지 못하는 한 그 돌은 아직 살아있지 못 한 돌이다. 굳이 왜 두 개의 집이 필요한가. 혹시 그것은 나의 집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다른 사람 역시 자신의 집을 가지는 것, 다시 말해 우리의 집이 나의 생존에조차 필수적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나를 둘러싸고 있는 우리가 같이 살아남지 못한다면 나의 생존 역시 완전한 것이 아니다. 즉 「미생」은 함께 살기, 연대가 필수적이 된 시대, 또는 그 가치를 드디어 깨닫게 된 시대의 이야기다.

연대의 시대와 새로운 해석 1989년 조훈현의 업적과 2012년 싸이의 성취는 거의 유사하게 보인다. 양자 모두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20여년의 시간을 거치며 그에 대한 해석은 상당히 바뀐 것 같다. 흔히 만화나 드라마, 영화 등의 서사 장르는 사회 상황에 대한 해석의 담론을 제공한다. 조훈현의 시대에는 박봉성의 최강타가 있었다. 반면 싸이의 시대에 나타난 주인공은 윤태호의 장그래이다. 「미생」은 조훈현을 해석했듯이 싸이를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역설한다. 그렇다면 「미생」의 인기는 그 새로운 해석에 대한 대중의 호응일 것이다.

정준영 한국방송통신대ㆍ문화교양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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