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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현실
신화와 현실
  • 신광영 편집기획위원
  • 승인 2002.08.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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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작년부터 불어닥친 신화에 관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은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다. 한국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가 한국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우리 현실이 보여주는 암울함과 답답함이다. 신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초인적인 속성을 통해서 인간이 지니는 한계를 초월하면서 동시에 인간과 동일한 질투, 사랑, 욕망 등을 지니고 있어서 다분히 인간적인 이중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이중성은 한편으로 현실적인 인간 모습과 비현실적인 신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인간이자 인간이 아닌 인물들이 독자들에게 현실을 뛰어넘는 판타지를 제공한다. 이것은 모든 나라들의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지니는 공통점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중성은 신화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한다. 한국 사람들은 셋만 모여도 정치를 이야기할 정도로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전문가들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정치인들이 자신들과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면서 동시에 자신들이 가지지 못한 어떤 신화적인 혹은 영웅적인 모습을 기대한다. 보통 사람과는 다른 높은 도덕성, 정책능력, 리더십, 국제적인 감각, 미래에 대한 비전, 카리스마 등을 요구한다.

그러나 대부분 정치인들은 이러한 이중적인 기대에 미치기는커녕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보다 못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정치인과 유권자들간의 간극이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들이 당연히 수행해야 할 병역을 기피하거나, 대부분의 월급쟁이들이 내집 마련을 위해 고생하고 있는 동안 상상할 수도 없는 넓은 아파트나 주택에서 살고 있거나, 정책에는 관심이 없고, 상대방 정치인들을 욕하는데 혈안이 돼 있는 사람들이 정치인들의 모습이다. 보통 사람들과는 생활도 전혀 다르고, 생각도 전혀 다른 사람들로 인식되고 있다.

재보궐 선거에서 나타난 낮은 투표율은 기대와 현실의 차이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반증한다. 이제 정치는 정치인과 언론에 의해서만 호들갑스럽게 지고 있고, 일반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났다. 가장 심각한 일은 이제 한국 정치에 대한 비판을 포기하고 기대를 하지 않게 됐다는 사실이다. 언론들이 정치인들에 대한 혐오를 강화시켰고 정치에 대한 냉소를 고착시켰다. 신화 속의 주인공들이 지닌 환상적인 모습들과 한국의 정치인들이 보여주는 퇴행적인 모습들은 너무나 대조적이다. 월드컵 이후에 치러진 재보궐 선거는 신화와 같은 월드컵 4강과 혐오스러운 정치 현실을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한국의 정치와 민주주의를 누가 살릴 것인가. 신화 열풍 속에서 참담한 우리의 현실이 안타깝다.

신광영 / 편집기획위원·중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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