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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고등학교 교장으로 변신한 박성수 전 전주대 총장
[인터뷰] 고등학교 교장으로 변신한 박성수 전 전주대 총장
  • 손혁기 기자
  • 승인 2002.08.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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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8-26 20:15:40
모두들 한 계단이라도 높은 곳으로만 오르려 하고, 내려앉기보다는 차라리 물러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세태에서 박성수 전 전주대 총장(사진)이 명지고등학교 교장으로 취임했다는 소식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남들과 다른 행보를 하고 있는 박성수 ‘교장’이 바라본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과 ‘자리’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었다.

먼저 총장 다음으로 교수도 아니고 고등학교 교장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박 교장은 자리에 높고 낮음이 없다며 “한번 했던 대학 총장을 또 할 필요가 있겠냐”고 반문했다. 전주대 총장 이후 다른 사립대 총장직에도 물망에 올랐던 박 교장은 “현재 우리나라 교육에서 핵심적인 문제는 중등교육”이라며, “현장에서 체험하면서 개선할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청소년 대화의 광장을 운영한 바 있는 박 교장은 “외국에서 공부하고 한국에 돌아온 30세대를 관리한 적이 있는데 이들의 대부분이 자녀교육 때문에 다시 떠났다. 정치적 이유 때문에 조국을 떠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교육을 위해 조국을 떠나는 사람은 너무나 많다”라며 적극적인 개혁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우리나라 교육이 황폐해진 원인에 대해 박 교장은 “교육이 선진국의 기술과 지식을 도입하는데 치우치다 보니 표준화 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기술습득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 사상, 제도를 생각하고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을 키워내지 않으면 우리나라도 21세기 끝에는 남미처럼 몰락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창의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알려진 지식을 활용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를 들춰내는데 익숙한 지식인의 진단이 아닐까 싶어 대안을 물었더니 박 교장은 교육개혁 방향으로 세가지를 꼽았다. 먼저 개성있는 학교. 박 교장이 말하는 개성있는 학교는 설립목적에 따라 나름대로의 교육을 할 수 있는 자율학교를 뜻했다. “기독교 학교의 경우 성경과 채플을 강의하지만 이는 상당히 피상적인 형태다. 극단적으로 기독교 학교라면 생물과 역사에서도 신앙체계와 같은 것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으로 교과지도시스템을 지적했다. 박 교장은 현재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를 ‘아시아형 교재’로 정의했다. 반드시 교사의 설명이 뒤따라야 하고, 이것이 부족해 참고서와 과외로 대체될 수밖에 없다는 것. 이러한 흐름을 끊기 위해서는 교과서만으로도 누구든지 알 수 있도록 교재를 바꿔야 하며 수업시간에는 사고의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생활지도를 꼽았다. 박 교장은 현재의 생활지도 시스템으로는 인성교육이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가정·지역·학교가 전체적으로 학생을 파악할 수 있을 때 생활지도가 가능하다는 것. 박 교장은 “촌지가 문제된 이후 지금은 학부모가 학교에 오는 것도 못하도록 하고 있다. 교육을 위해 통합된 사회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정적인 측면, 사회 정서적인 측면에서 실천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우려에 박 교장은 “가능한 방향을 찾는 것이 교장으로 지내는 동안 해야 할 과제”라며, 하나하나 풀어갈 계획을 밝혔다. 교육에 대한 그의 고민과 다양한 경력들이 어떻게 빛을 발할지 자못 궁금하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큰 조직에서 할 수 있는 일과 작은 조직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르지 않냐”고 교장으로의 변신에 대해 다시 한번 질문을 던졌다. 박 교장은 “사람은 자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이 중요한 것이다. 카운슬러는 사람의 문제점을 듣고 이를 개선하도록 돕는 것이다. 조직의 관리자도 마찬가지다. 돕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또 그는 “일을 할만한 사람은 뒤로 물러나 있고, 자리를 맡기에는 부족한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자리’를 누리는 것으로 보는 속인들을 날카롭게 꼬집었다.

손혁기 기자 pharos@kyosu.net

□약력 : 1942년 출생. 서울대 교육학과 졸업. 웨스턴 미시건대 교육학 박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사)한국카운슬러협회 회장. (재)청소년대화의 광장 원장. 전주대 총장. (현)아·태 카운슬러협회 회장. (현) 명지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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