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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총장의 덕목
[대학정론] 총장의 덕목
  • 논설위원
  • 승인 2002.08.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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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8-26 19:59:27
가을학기가 가까워지면서 각 대학들은 새로운 총장과 보직교수들의 진용을 연일 발표하고 있다. 특히 총장의 존재는 그 대학의 상징적 위상으로 인해 대학 안팎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언제부터인가 총장 대상을 대학내의 구성원에서 벗어나서 외부로부터 영입하는 사례가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이다. 덕망과 학식이 주된 잣대로 작용하던 관례를 깨고 이른바 CEO(최고경영자)로서의 경영 능력이 우선시되는 사회적 흐름을 반영한 결과이다.

따라서 대학이란 교육기관을 경제집단으로 보는 인식의 변화와 더불어, 대학의 경영능력을 전문가에게 위임하는 개방의 자세가 한데 어우러진 현상으로 총장의 자리를 외부에 개방하겠다는 의지는 높이 살만 한 일이다.

그러나 이렇듯 바람직한 발상의 전환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이뤄지는 현실은 상당한 괴리를 드러내고 있다. 구체적 예를 들면 정·관계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자리를 다 거쳐 퇴진한 후 재단이나 지역의 연고에 따라 총장에 기용되는 경우가 그것이다. 아무리 살펴 봐도 학식이나 덕망은 커녕 대학경영에 대한 전문가로서의 자격을 찾아보기 힘든, 의외의 유명인사들이 대학을 마지막 보루인 양 여기는 듯해 주위의 당혹감을 자아낸다.

특히 여러모로 자체내의 문제점을 많이 안고있는 대학일수록 그러한 사람을 기용함으로써 대학 발전이라는 명분아래 바람막이의 구실을 강요할 우려가 있다. 심지어 선거에 떨어진 정치인을 끌어 들였다가 재기의 발판을 제공하기도 한다.

엄밀히 따져보면 한국적 현실에서 대부분의 대학들은 몇가지 공통점을 안고 있다.

첫째, 대학의 운영이 대부분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충당된다는 점이다.

아무리 경영능력이 뛰어난 총장이라도 과도한 등록금 의존의 높은 벽을 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외부로부터 기금을 끌어온다는 것도 극히 소수의 대학을 제외하고는 쉽지 않다.

둘째, 교육인적자원부의 감시와 견제가 절대적인 우리의 현실에서 총장이 자율적으로 포부를 실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기껏해야 정·관계의 경력은 대학의 어두운 부분을 덮어주고 감독기관의 감시망을 느슨하게 하는 로비력으로 작용할 뿐이다.

셋째, 우리 사회처럼 재단의 힘이 막강한 대학체제아래에서 영입된 총장이 이에 맞설 수 있는 독자적 입지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칫하면 재단의 편에 서서 비위를 맞추다가 교수와 학생들과 맞서게 되는 어리석음을 저지를 수도 있다. 따라서 CEO로서의 자질을 지나치게 강조해 대학사회에 문외한인 총장을 영입하는 추세는 재검토할 시점에 와 있다.

가장 이상적인 총장의 자격은 학식과 덕망이 필요조건이 되고 경영능력이 충분조건이 되는 접합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관건은 목전의 이해관계에 따라 총장을 편리하게 구하고 쉽게 버리는 잘못된 관행을 고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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