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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_ 학문의 길에는 정년이 없다
원로칼럼_ 학문의 길에는 정년이 없다
  • 최성용 서울여대 명예교수·경영학
  • 승인 2012.12.10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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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용 서울여대 명예교수·경영학
Y명예교수는 30여 년간 절친한 동료교수이자 친구다. 그는 정년퇴임 4년 만에 미국 뉴욕의 한 대학에서 ‘visiting scholar’ 신분으로 재직 중 미처 이루지 못했던 그 자신의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참 아름답고 건강한 모습이다. 그는 정년 1년을 남기고 스스로 은퇴를 결정했다. 하루라도 빨리 평소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일(연구)을 진행키 위해서였다.

그는 재임 중 탁월한 강의로 학생들에게 존경의 대상이었다. 뿐만 아니라 정년 후에도 학자로서의 길을 한 점 흐트러짐 없이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학문의 길에 정년은 없다’는 것이 평소의 소신과 지론이기 때문이리라. 그의 이러한 열정과 자세는 후진들에게도 귀감이 되고 있다. 나는 왜 진작 이런 생각에 이르지 못했는지 뒤늦게 깨달음을 주는 대단한 일이라 여기고 있다.

학문에 대한 열정과 연구는 대학 연구실을 떠나더라도 언제 어디서든 지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2008년 정년퇴임 후 2년간은 건강상의 문제도 있고 해서 강의에서 일체 손을 뗐다. 그러나 논문 심사, 학회 활동을 비롯해 전공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에는 계속 참여해 오고 있다. 주말에는 강원도 주말농장에 가서 완벽한 농사꾼으로 변신, 몇 가지 농사일에도 취미를 붙이고 있다. 시간적으로나 일의 분량으로 볼 때에는 정년 이전보다 훨씬 많아져서 비교적 바쁘게 정년 이후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흔히 정년퇴임 후에는 재임 중에 미뤄뒀던 여행이나 독서 등의 취미생활을 하는 것으로 매일매일을 소일하는 무의미한 일상생활에 빠져들기 쉽다. 이 같은 퇴임 후의 생활은 정신 건강에 별 보탬이 되지 않을 것 같다. 무언가 의미 있는 일에 관심을 갖고 몰두할 수 있다면 어느 시기까지는 몸도 마음도 모두 건강하게 유지하면서 정년 이후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정년 후 만 3년째 되는 해부터는 여러 대학에 출강해 다시 강의를 계속하기 시작했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마다않고 전공 분야에 대한 30여 년 간의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를 후학들에게 전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재직 중 못지않은 열과 성을 다해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친다. 퇴임 전과는 차별화된 강의 전달 방식을 개발하고, 학생 위주의 강의 진행이 되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철저한 강의 준비와 강의 시간 준수로 수업 진행에 충실히 임함으로써 학생들의 만족도가 눈에 띄게 높아 보일 때에는 그 기쁨이 남다르고 그 보람은 말로 형언키 어렵다.

앞으로도 건강과 여건이 허락하기만 한다면 대학 강단에서 전공 분야의 강의를 통해 제자 양성에 기여할 뿐 아니라 젊은 대학생들과 함께 호흡하려고 한다. 이 외에 학생들의 진로 상담에도 멘토 노릇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인가. 아마 그 같은 마음에서 오늘도 대학 강단에 주저함 없이 서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아직까지 내게 있어서는 정년도 나이도 별 문제가 되지 못한다. 뚜렷하고 확실한 목표 아래 나 자신의 달란트를 충분히 발휘한다면 미래 사회의 주역이 될 인재 양성에 일조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인가 생각해 본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어떤 CEO의 말에 공감한다. 정년퇴임 후에도 잘 살펴보면 할 일은 너무나 많다. 단지 건강과 시간의 제약이 따를 뿐이다. 우리 생각의 지평을 넓혀서 무언가 보람 있고 의미있는 일을 찾아내 여기에 몰입하게 된다면 정년 이후는 더 이상 부담스럽지 않은 시기일 것 같다.

70세인 세계 제일의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는 최근 “이제 쉴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쉬면 늙는다”며 ‘바쁜 마음(busy mind)이야말로 건강한 마음(healthy mind)’이라며 젊음을 과시했다고 한다. 대학 교수 정년 이후에도 건강한 정신과 몸으로 여생을 보내고자 원한다면 그의 말처럼 쉬지 않고 바쁜 마음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하튼, 정년 후의 삶의 질은 자기가 할 나름이 아닐까 한다.

최성용 서울여대 명예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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