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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계층 위한 인문학 교실, 희망의 불씨를 키웁니다
소외계층 위한 인문학 교실, 희망의 불씨를 키웁니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2.11.26 11: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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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인문학’ 일궈온 여재훈 성프란시스대학 학장

▲ 성프란시스대학 학장을 맡고 있는 여재훈 신부는 인문학이 유행처럼 번졌다 스러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성프란시스대학 후원 계좌 우리은행 1005-401-975390 (재) 대한성공회유지재단 전화 070-7746-7942

이제 가을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겨울바람이 연신 차갑게 불어오리라. 서울특별시 용산구 동자동 43-71번지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이곳 3층에는 기이한 풍경이 펼쳐져 있다. 성프란시스대학,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 강좌가 2005년부터 진행되고 있다. 2005년 9월 1기생을 모집해 교육을 시작해 2012년 현재 8기생들이 재학하고 있다. 안성찬(서울대, 문학), 박경장(명지대, 글쓰기), 박한용(민족문제연구소, 한국사), 박남희(철학아카데미, 철학), 김동훈(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사) 등 다섯 명의 전공 분야 교수들이 정규과정으로 1년 동안 글쓰기, 문학, 한국사, 예술사, 철학 과목을 가르친다. 금요일은 심화과정으로 서울대 인문학연구원(원장 송용준)의 쟁쟁한 박사들이 자원 강의를 하고 있다. 마침 이들의 여정을 담은 책이 출간됐다. 『거리의 인문학』(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과정 엮음, 삼인 刊)이다.


물론 이들의 강의 대상은 노숙인이다. 서울역, 용산역, 영등포역 등의 驛前 및 시청, 을지로 등의 지하철역 주변에서 숙식을 하거나, 서울 지역의 보호시설, 쪽방, 고시원 등에서 불안정한 주거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이다. 성프란시스대학은 게시판과 인터넷을 통해 모집공고를 내고, 다시서기센터 현장팀의 권유와 추천 등을 통해 수강생을 모집해 왔다. 매년 약 60~70명의 지원자들 가운데서 25명 내외의 수강생을 선발, 이들을 대상으로 1년간의 교육과정을 수행하고 있다. 일반 대학과 같이 입학식과 강의, 방학, 졸업식을 한다. 다시서기센터의 소장과 실장, 성프란시스대학 강사진, 대학생 및 직장인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운영위원회 위원들이 지원자들을 개별적으로 면접해 수강생을 최종 선발한다. 2012년 8기는 27명의 학생이 선발돼 인문학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성프란시스대학의 모델은 얼 쇼리스 교수가 창시한 클레멘트코스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인문학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1995년 노숙자, 빈민, 죄수 등의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정규 대학 수준의 인문학을 가르치는 교육과정으로 만든 것이 바로 클레멘트코스다. 소크라테스식 교육 방법을 채택해 일방적인 강의가 없는 게 특징이다. 큰 탁자에 교수와 학생이 함께 둘러 앉아 서로 답을 찾아가는 방식이다. 2005년 다시서기센터에 부임한 임영인 신부가 이를 도입해 오늘날의 성프란시스대학으로 일궜다. 그가 3기까지 성프란시스대학을 이끌었고, 이후 4기부터 현재까지는 여재훈 신부(43세, 다시서기센터 소장)가 학장을 맡아 성프란시스대학을 이끌고 있다. 두 사람은 사제 동기간이기도 하다.


여재훈 학장은 “빈곤계층인 노숙인들이 주류사회에 복귀하는 것이 그들이 가야할 최종 도착지라고 흔히들 생각한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당사자 스스로가 자신의 성공, 행복, 일자리, 자신의 권리가 어떤 것인지 주체적으로 규명하게 하는 것이 더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문학 교육은 매우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과정은 성찰의 기회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다른 사고방식을 소개하고, 비전을 제시하고자 한다”라고 강조했다. 11월 21일 오후 2시 서울시 용산구 갈월동에 위치한 성공회 다시서기상담보호센터 소장실에서 여재훈 학장을 만났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 성프란시스대학은 한국연구재단 지원이 끊어지면서, 다음달 5일 재정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후원 북콘서트를 개최한다.

△ 성프란스시대학이 걸어온 여정을 담은 『거리의 인문학』이 출간됐다. 소외계층을 위한 인문학 강좌인데, 2005년 시작해서 현재 8기생들이 재학하고 있다고 들었다. 거리의 인문학, 강조점이 어디에 있나.
“가끔 전화가 온다. 구청이나 다른 지역 단체들이 소식을 듣고 문의하는 것이다. 인문학 교육 시켰더니 사람이 변화하던가, 개과천선했느냐, 바뀌었느냐, 노숙인에서 벗어났냐는 질문들이다. 노숙인들이 강의를 들었다고 해서 물리적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인간적인 관계망이 회복되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쉬 바뀌지 않는다. 우리가 전개하는 인문학 교실은 인간개조 프로그램이 아니다. 그런 조급증으로 문의하면 대답해드릴 게 별로 없다. 우리 인문학 교실의 중심이 되는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 빈곤, 자신이 처해 있는 부정적 상황 등 모든 것이 자신의 원죄라는 내면적 죄의식을 지니고 있다.

우리 사회구조 자체가 부자나 성공한 사람들은 긍정적으로 치켜세우고, 가난한 사람은 게을러서 그렇게 됐다는 성공신화 논리에 의해 판단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다보니 이들은 현재 자신들의 부정적 상황이 자신의 잘못이나 못남 등에서 기인한다고 자신을 힐책하고 스스로 상처를 입힌다. 실제로 우리 인문학 강좌의 핵심은 이렇게 자기 자신에게 상처 입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상황을 마주보게 하는 프로세스라고 할 수 있다. 왜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상황이 왜 이리 어려운지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마주하게 한다. 끊임없이 사고하게 만들어서 자신에 대한 판단을 긍정적으로 이끌어내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인간개조, 의식개조 프로그램처럼 본다면 큰 오해고, 잘못된 접근이다.

여기 오는 노숙인 상당수가 국가적 사회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성장하고 살아오던 분들이다. 어렸을 때 가난했고, 가난했기 때문에 공부하지 못했고, 그래서 정상적 직업을 갖지 못하고, 결혼도 못한 사람들이 수강생의 50~60%를 차지한다. 빈곤의 악순환에 놓여 있는 이들이다. 나머지 30~40%는 사업하다 실패한 이들, 도박에 빠진 이들 등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자신에게 스스로 씌워놨던 굴레를 벗겨내게 만드는 역할을 강조한다. 스스로 자존감 높이고, 스스로를 애정어린 시선으로 어루만질 수 있게. 그래서 살아가면서 큰 힘을 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것들이 1년 동안 인문학 공부한다고 해서 어느날 갑자기 확 바뀌거나 할 수 있겠는가. 스스로가 깨닫고 그 다음에 삶의 자세에 있어서 좀 더 긍정적으로 자기 삶을 바라보고, 삶을 일궈나가게 하는 것이다. 한순간에 확 인간개조프로그램처럼 어떤 기대를 갖고 접근하는 프로그램들도 많이 개설돼 있지만 우리는 그보다는 1년 동안 꾸준히 수강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정말 관심 갖고 서로가 사랑을 베풀고, 스스로 자기 계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 주력한다.

△ 구체적으로 어떻게 접근하고 있나?
노숙인들이 가진 절망 중에 가장 큰 것은 외로움이다. 가족들과도 해체되고, 고아 출신으로 아예 가족이 없었거나 버림받은 사람들끼리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일에 무게를 실었다. 이들에게 중요한 건 새로운 관계를 맺는 일이다. 그래서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교실은 이들 수강생들이 서로 동기들끼리 1년 365일 계속 만나는 자리를 갖도록 구성해 진행해왔다. 같이 여행도 가고, 여름방학이면 여기 나와서 글짓기 교실에 참여해 문집도 만든다. 현장학습도 자주 간다. 그간 누려보지 못했던 문화적 혜택을 제공하는 셈이다. 식사도 저녁때 항상 같이 해서 먹는다. 이런 프로세스를 제공해 또 하나의 가족을 새롭게 만들고 있다. 365일 동고동락하면서 서로 의지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게 중요하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러운 변화가 나타난다. 술에 쩔어 살던 사람들이 술을 끊는다거나, 누군가를 위해 모임 자리에서도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거나 이런 일들이 늘고 있다. 이런 일들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게 우리 인문학 강좌의 가장 큰 효용이라고 생각한다.

문의하는 분들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이 인문학 교실 통해 뭔가 확 뒤집어지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각도수정, 궤도수정은 가능한 것 같다고. 이곳을 거쳐 간 분들이 여기서 함께 한 인문학 공부가 삶에 있어 참 좋은 분기점을 제공했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졸업하고 4~5년 지나서 여기서의 경험이 삶에 큰 힘이 됐다는 이야기를 듣는 수준 정도, 이게 우리가 실제 기대하고 있는 내용이고, 확인되는 내용이다. 같이 살아갈 수 있는 힘들을 서로 주고받는 동문 모임으로 자리 잡아 가는 것 같다.

△ 노숙인에게 인문학을 강의한다는 발상은 대단하다. ‘시혜’가 아니라 ‘대안’을 모색하는 고민으로 보인다. 성프란시스대학의 인문학 교실 공부가 궁금하다.
일단은 전임교수님들은 5~6년 함께 해 오신 분들이다. 이분 들 외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에서 선생님들이 차례로 나와 강의하고 있다. 그런데 이분들 말씀이 매번 강의할 때마다 두렵다는 것이다. 왜? 이런 강의가 처음이니까. 강의를 마친 뒤에는 대학에서 가르치는 것보다 훨씬 더 의미가 있었다고 말씀한다. 수강생들 대다수가 낮에 일하고 저녁에 와서 공부하는 이들이다. 공부할 때 다들 눈이 초롱초롱하다. 자신의 권리 찾으려고 공부하니까 몰입도가 높다. 그래서 대학 강의보다 훨씬 더 긴장감이나 밀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강의는 교감을 중요시한다. 그래서 여러 가지 주제를 놓고 토론식으로 서로 주고받을 수 있게 강의를 이끈다. 탁자에 둘러 앉아 서로 공부하지 일방적 강의로 가지 않는다.

이들이 지닌 절박감 때문에 공부에 굉장히 적극적이다. 교수님들도 여기에 호흡을 맞춘다. 정보 전달보다 수강생들이 살아왔던 삶,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삶이나, 굴곡 많은 삶들을 토론을 통해 끄집어내는 공부다. 흥미로운 것은 철학의 경우,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인데도 자신들이 지나온 삶의 궤적 때문에 훨씬 더 깊이 접근하고 이해하는 것 같다는 점이다. 더불어 책을 많이 읽도록 하고 있다. 졸업하려면 1년에 15권정도 소화해야 한다. 한마디로 자기 삶들을 공부에 접목시킬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 실제 대학처럼 수업을 하고 있다고 하던데
그렇다. 대학처럼 2월에 수강생 모집 공고를 내서 심층면접을 통해 25명의 학생을 선발한다. 오리엔테이션을 거치고, 성공회대성당에서 입학식을 한다. 엄숙하고 웅장하게, 좀 더 긴장감 있게 결의를 다지는 의미로 한다. 3월부터 수업에 들어간다. 보통 4월쯤에 전체 동문체육대회를 한다. 6월까지 수업이 계속되는데, 한 달에 한번 정도 현장학습을 가는데, 고궁을 견학하거나 뮤지컬을 본다. 학생들 스스로가 만든 동아리 프로그램도 있다. 현재 일어 동아리, 등산 동아리가 운영되고 있다.

졸업생들이 만든 풍물동아리 두드림도 있다. 이것은 4년째 운영되고 있다. 방학 때는 글쓰기 쪽을 많이 한다. 이런 글쓰기를 통해 문집을 1년에 한 번씩 낸다. 의무적으로 시나, 독후감, 에세이를 써서 제출하게 돼 있다. 9월에 개학해서 또 공부가 이어진다. 1학기와 동일하다. 총학생회장, 과대표도 뽑는다. 학생자치회가 있어서 학교학사일정을 같이 협의하기도 한다. 겨울방학 들어가면 문집을 마무리하고, 이듬해 1월에 졸업여행도 갔다 오고, 곧이어 졸업식을 하면 한 사이클이 마무리된다.

△ 과정이 빡빡하기도 한 것 같다. 낙오자는 없나?
당연히 낙오자가 있다. 생활고 문제가 크다. 일자리 찾아 지방으로 내려가기도 하고, 교도소에 들어가는 이도 있다. 제일 중요한 건 자신의 현재 생활, 상황들을 이겨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보통 15~17명 정도가 기수별로 졸업했는데, 올해는 20명 정도가 졸업할 것 같다. 올해 기수가 가장 열심히 하고 있다는 평이다. 교수님들이 강의만 이끌고 가르치는 데 그치지 않고, 수강생들 삶에까지 관여한다. 취업도 안내하고, 개인적 상담 많이 해주시고. 밀착감이 높아졌다.

△ 서울대 인문학연구원과 남다른 인연이 있는 것 같은데, 정부나 학계, 시민단체, 기업의 지원은 어느 정도인가.
서울대 인문학연구원이 정말 많이 도와주고 있다. 이분들은 일주일에 한 번 금요일에 무보수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한국연구재단에서 생활인문학 지원을 받았다. 강사료나 도서구입 등 강의 운영에 도움을 받았는데, 올해부터는 지원이 끊어졌다. 우리 인문학 교실이 우수프로그램으로 선정돼 국회에서 사례발표까지 했다. 한국연구재단이 올 9월부터 심사시스템을 바꾸면서 올해 지원 대상에서 떨어졌다. 우리 인문학 교실의 내용이 좋다고 평가했지만, 지원은 중단되고 말았다. 이게 좀 답답한 일이다. 8년 전에 처음 시작했을 때, 생활인문학, 저소득층을 위한 인문학으로 최초의 시도였다. 곳곳에서 관심을 가져줬고, 가히 인문학 바람을 일으키는 계기가 됐다고 자임한다.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한국연구재단외에 삼성코닝정밀소재(대표이사 이헌식)에서 나머지 절반을 지원해주고 있다. 학사운영은 연구재단, 사무실 운용과 인건비?식사비 등 부대비용을 삼성코닝에서 지원한 셈이다. 그런데 지금 절반이 사라졌다. 다음달 5일 기독교백주년기념관에서 북콘서트를 기획한 것도 이런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프로그램이 좋고 필요하다고 말만 하지 말고, 실질적인 지원을 해주는 게 좋다.
그렇지만 자원봉사자들 열정 정말 대단하다. 그리고 자원 봉사자들도 막 뽑지 않는다. 선별한다. 지속적으로 봉사할 수 있을지를 판단한다. 노숙인들은 관계에 상처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원봉사 나왔다가 금방 사라지면 이들은 더 상처받는다. 그래서 우리 자원봉사자들은 3년~5년 꾸준히 참여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 2005년 시작한 이래, 인문학 교실을 진행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교실을 마친 이들은 어쨌든 일반적인 노숙인들보다는 삶에 대한 욕구나, 그리고 어떤 높아진 문화적 수준이나 지적욕구 때문에 좀 더 삶이 나아지길 원하는 분들이 많다. 그래서 주거지원프로그램 등을 적극 활용해서 안정적인 주거생활로 진입하는 분들도 많다. 그분들이 점차 나아지는 모습으로 나타나면 좋은 일 아닌가. 인문학을 만나지 않았다면 거리에서 쉽게 생명을 마쳤을 분들이 많았다. 졸업생들 가운데 1/3은 아직도 서울역 인근 유사주거시설 같은 데 계시면서 우리와 계속 더 이상 삶의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 보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실제로 몇몇 분들은 생활이 나아지는 순간에 찾아오기도 한다. 와서 밥도 사고, 동료들을 격려하기도 한다.


가장 가슴 뿌듯할 때가 언제냐고요? 그들이 찾아와서 자기 삶에 있어서 이 인문학이 정말 큰 의미였다라고 자랑스럽게, 떳떳하게 밝힐 때다. 그들은 여기서 공부한 게 큰 보람이고 프라이드라고 말한다. 제일 감사한 것은, 같이 공부했던 동문들이 사망했을 때 협동심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몸 상태가 다들 안 좋으니까 간암이나 심장마비 등으로 급사하는 경우도 있다. 7기 졸업여행 직전에 척추암으로 고생하다 화장실에서 쓰러져 사망한 분이 있다. 연고자가 없기 때문에 내가 장례를 치른다. 성프란시스대학장으로. 졸업생들에게 고맙고 감사한 게 장례식 때 거의 빠짐없이 다들 찾아와 서로 돕는다는 거다. 장례식 내내 자리를 지키면서 고인의 유언이 있다면 지켜주기도 한다. 도우미 역할을 하는 것이고, 새로운 가족이 됐다는 확인이다. 서로 뿌듯해한다. 아무리 바빠도 와서 적은 돈일지라도 부조하면서 서로 챙겨주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 우리 사회에 바라는 게 있다면
특히 가난한 이들, 노숙인들에 대한 인문학 부분은, 실제로는 2~3년 전까지는 열풍이 불었다. 성공회대나 기타 다양한 대학에서 관심을 갖고 접근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요즘 그 바람이 많이 꺾인 것 같다. 서울시의 ‘희망의 인문학’도 경희대에서만 하고 있는 것 같다. 거품처럼 확 일어나는 것도 문제지만, 갑자기 분위기가 축 쳐지는 것도 문제라고 본다. 대학이나 사회에서 생활 인문학을 정책적으로 배려해주고, 좀 더 많이 다가와주고, 어쨌든 예산 문제 등 여러 가지가 있긴 하지만, 보다 장기적인 플랜으로 가난한 이들, 소외계층에 대한 인문학적 관심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학문에서조차 성과를 말하는데, 나는 인문학의 강점이, 인간 내면을 정화하는, 스스로가 그것을 끄집어 올릴 수 있도록 성찰하는 힘을 북돋는 거라고 본다. 성과를 말하기에 앞서 이 점이 더 부각됐으면 한다. 우리사회는 특히나 너무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있다. 성과가 없으면 필요하고 중요한 일인데도 하지 않는다. 대학에서도 인문학 과목들이 많이 사라지고 있지 않나. 사회적 공감대가 오히려 더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인문학이 지닌 저력들이 사회에서 꾸준히 이어졌으면 좋겠다. 거품처럼 일었다가 일순간에 확 꺼지는 게 아니라. 대학과 지역사회가 함께 교감을 나누는 방향에서 인문학이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누천년 축적된 게 인문학이다. 단기성과가 아니라 장기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유행처럼 번지다 관심 줄어들면 위축되는 건 문제가 많다.

성프란시스대학은?
성프란시스대학의 모델은 얼 쇼리스 교수가 창시한 클레멘트코스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인문학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1995년 노숙자, 빈민, 죄수 등의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정규 대학 수준의 인문학을 가르치는 교육과정으로 만든 것이 바로 클레멘트코스다. 소크라테스식 교육 방법을 채택해 일방적인 강의가 없는 게 특징이다. 큰 탁자에 교수와 학생이 함께 둘러 앉아 서로 답을 찾아가는 방식이다. 2005년 다시서기센터에 부임한 임영인 신부가 이를 도입해 오늘날의 성프란시스대학으로 일궜다. 그가 3기까지 성프란시스대학을 이끌었고, 이후 4기부터 현재까지는 여재훈 신부(43세, 다시서기센터 소장)가 학장을 맡아 성프란시스대학을 이끌고 있다. 두 사람은 사제 동기간이기도 하다.

안성찬(서울대, 문학), 박경장(명지대, 글쓰기), 박한용(민족문제연구소, 한국사), 박남희(철학아카데미, 철학), 김동훈(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사) 등 다섯 명의 전공 분야 교수들이 정규과정으로 1년 동안 글쓰기, 문학, 한국사, 예술사, 철학 과목을 가르친다. 금요일은 심화과정으로 서울대 인문학연구원(원장 송용준)의 쟁쟁한 박사들이 자원 강의를 하고 있다. 마침 이들의 여정을 담은 책이 출간됐다. 『거리의 인문학』(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과정 엮음, 삼인 刊)이다. 물론 이들의 강의 대상은 노숙인이다. 성프란시스대학은 게시판과 인터넷을 통해 모집공고를 내고, 다시서기센터 현장팀의 권유와 추천 등을 통해 수강생을 모집해 왔다. 매년 약 60~70명의 지원자들 가운데서 25명 내외의 수강생을 선발, 이들을 대상으로 1년간의 교육과정을 수행하고 있다. 일반 대학과 같이 입학식과 강의, 방학, 졸업식을 한다. 다시서기센터의 소장과 실장, 성프란시스대학 강사진, 대학생 및 직장인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운영위원회 위원들이 지원자들을 개별적으로 면접해 수강생을 최종 선발한다. 2012년 8기는 27명의 학생이 선발돼 인문학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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