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11:20 (토)
정치적 삶 혹은 목자 없는 양들의 시간
정치적 삶 혹은 목자 없는 양들의 시간
  • 권정우 경희대 정치학과 박사수료
  • 승인 2012.11.21 11: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문후속세대의 시선_ 권정우 경희대 정치학과 박사수료

권정우 경희대 정치학과
대선 정국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고 야권 단일화가 가시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는 요즘이다. 지금, 사람들은 정치로 인해 절망하는 동시에 정치에서 희망을 찾고 있다. 정권 교체는 이런 자들의 열망이자 지난 5년을 자괴감에 일렁이며 지내온 날의 보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정권이 바뀐다고 우리들의 ‘정치적 삶’이 변할 것인가. 사실 우리는 다시 처음, 다시 그 자리로 매번 돌아온다. 몇 년에 한 번씩 유권자로 자기도 모르게 변신하는 이른바 ‘서민’들은 5년을 주기로 제한된 선택지 위에서 희망고문의 씁쓸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한다. 선거는 절망만이 가득했던 국회, 청와대를 다시 희망의 공간으로 되돌려 놓는다.

선거는 우리 앞에 놓인 강고한 거시 권력과 제도정치의 벽에 개입하고, 때로 이를 변화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겨져 왔다. 사실 제도정치의 벽 앞에서 한낱 개인, 혹은 여론 조사상의 퍼센트 포인트로 존재하는 人口들은 깊은 좌절을 체험한다. 좌절의 경험은 그런 점에서 올 한해를 휩쓸고 지나간 ‘닥치고 정치’, ‘닥치고 투표’를 가능하게 만들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는 다만 투표만을 할 수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권력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는 오직 정권을 잡은 자만이 알고 있을 뿐 정작 그들을 당선시켜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들이 자연스레 인도자가 돼버리는 동안 우리는 그들의 처분만을 기다리는 의지 없는 자들이 돼 버린다.

선거에 거는 기대의 대부분은 우리를 풍요로운 곳으로 인도해줄 목자를 찾고 있는 데 할애된다. 명심해야 할 것은, 100마리의 양을 헌신적으로 보살펴 주는, 때로 잃어버린 1마리의 양을 찾아 헤매는 따뜻한 목자의 희생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자연스럽게 양이 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 좋은 목자는 유권자로서의 양들만을 원한다. 통치가 시작되면 ‘한 마리’ 양들은 의지를 표와 함께 기표소에 반납한 채 ‘한 표’로 기억될 뿐이다. 뿐만 아니라 이 순간에 인간은 복종만을 강요받고 자신의 정치적 자유를 포기해야 하는 존재가 돼 버린다. 고로 선거를 통해 정권을 교체할 수 있지만 우리를 양으로 만들어버리는 통치의 메커니즘, 통치의 근본적인 방향을 바꾸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정치가는 목자가 아니었다. 정치가는 ‘직조공’의 역할만을 자임했다. 직조공이 씨줄과 날줄을 방추(紡錘)로 엮어 천을 만드는 것처럼, 정치가는 서로 구별될 뿐 아니라 대립할 때도 있는 다양한 인간들을 서로 엮어 공동체로 결합시키는 역할을 한다. 목자로서 양을 이끄는 정치가가 아니라 사람들의 다양성을 공통의 것, 공적인 것으로서의 방추로 엮어내는 정치가를 우리는 원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우리를 끌고 가는 모든 목자들을 거부해야 한다. 엄청난 사명감을 가지고 남을 위해 산다고 하지만 결국 자신과 남들을 구분해 시혜를 베풀려는 목자들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좋은 목자의 우연한 출현을, 동정어린 호혜의 손길을 기대하지 말고, 다만 동등한 양들 사이의 공감을 엮어낼 수 있는 권력을 구성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양들의 정치이다. 목자 없는 양들이 서로의 다양성을 드러내고 때로는 불화하고 때로는 동의하면서 나가는 생활 속의 정치가 필요하다. 중앙 정치가 권력을 독점하고, 정치의 모든 아젠다가 좋은 목자를 고르는 것이라면 우리들의 정치는 사장되고 말 것이다. 양들의 정치가 꿈꾸는 변화는 야수들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해줄 훌륭한 목자의 등장이 아니라 양들의 욕망과 의견을 다시 공적인 것으로 만들며 직조해 나갈 새로운 정치 공동체의 등장이다. 이것은 인간의 자기결정권과 자립, 자치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마키아벨리는 자유와 자치는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자치할 수 없는 자에게 자유란 요원한 것이며 자유도시, 즉 자유로운 자들의 공동체는 자치 없이 도달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양들은 오히려 자기 스스로 목자 되기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투표일 하루 동안만 인민주권의 달콤한 자기결정권을 누리는 자유인으로 살아 온 지난 5년 아니 지난 모든 세기의 결과들은 우리 삶을 생존 경쟁으로 처절하게 드러내고 있을 따름이다. 이제 남은 것은 목자 없는 양들의 시간, 우리는 기꺼이 그 곳으로 길을 떠나야만 할 것이다.

권정우 경희대ㆍ정치학과 박사수료
정치사상을 전공했으며, 한나 아렌트의 인간론에 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정치적 공론장, 도시, 생활정치, 민주주의의 직접행동과 관련한 문제에 관심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