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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역사 경험 속에서 여성‧과학사 문제 고민
동아시아 역사 경험 속에서 여성‧과학사 문제 고민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2.11.07 12: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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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되짚은 제55회 전국역사학대회

역사학자들의 학술토론의 장이자 축제인 제55회 전국역사학대회가 지난달 26일부터 사흘간 열렸다. 학술대회는 공동주제 발표와 15개 학회의 분과별 발표로 나눠진다. 공동주제 선정은 전국역사학대회 협의회를 구성하는 역사관련 학회의 협의를 통해 정해지기에 그 자체로 역사학계의 관심이 반영된다. 올해의 주제는 ‘역사 속의 민주주의’였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민주주의의 과거, 현재, 미래를 함께 다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우선, 한국의 민주주의 정착과정에서의 성취와 한계를 돌아봤고, 동아시아의 역사 경험에서 민주주의 수용의 특질을 규명했으며, 여성사와 과학사 부문에서 이전의 민주주의체제와 질적으로 다른 민주주의를 고민했다. 수많은 발표 중에서 공동주제를 다룬 네 편의 논문의 주요부분을 발췌했다.

제55회 전국역사학대회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열렸다. 지방에서 열린 두 번째 대회이다. 고동환 대회장은 앞으로 3년에 한 번씩은 지역에서 학술대회를 개최하도록 노력하겠다는 협의회의 입장을 밝혔다. 사진은 학술대회장 토론 모습.

 

「민주주의와 성별정치학」이남희 서울대 강사(여성학)
성별정치학의 관점에서 민주주의를 본다는 것읕 범주가 명백한 남녀 집단 사이의 갈등이나 분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배제와 포섭 원리가 복잡하고 가변적으로 작동하는 가운데 성별이 활용되는 다양한 층위를 ‘두텁게’ 해석하는 것을 의미한다. 근대 국민국가에서 남성성과 여성성이란 생물학이 아니라 사회 권력관계에 의해 구성된다. 예를 들어 한 세기에 걸친 영국의 보통선거권 확대과정에서 ‘여성’은 국민의 자격으로서 마땅히 갖춰야 할 ‘남성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배제가 됐지만 그때 남성성을 수행할 수 없는 존재란 비단 여성만이 아니고, 노동계급이나 식민지인까지도 포함하는 것이었다. 여성참정권을 부정하는 사고 기적에는 성역할분리론이 깔려있었는데, 성역할분리론은 때로는 대중의 등장에 대한 두려움을 은폐하는 논리로 차용되기도 했다. 이를테면 대중민주주의가 확대되는 시기에 여성은 비단 성별뿐만 아니라 향배를 알 수 없는 낯선 유권자라는 이유로 위험시됐다. 특히 자유당은 대중의 정치적 등장이후 자신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선거가 진행되자 여성유권자의 새로운 등장을 반기지 않고 회피했다. ‘여성이 이렇다, 저렇다’하는 언술은 남성에 대한 언술과 마찬가지로 실재하거나 고정된 것이기 보다 시대에 따라, 때로는 정치적 필요에 의해 생성, 소멸하는 유동적인 것이다. 그 ‘여성(Woman)’은 실제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적인 차이’를 이유로 여성들이 보편적인 인권을 인정받지 못하고, 투표권에서 일괄적으로 배제되는 순간, ‘여성’이라는 범주가 생겨난다.


「서양의 민주주의: 이념과 변용」최갑수 서울대 교수(서양사학과)
민주주의가 단지 이뤄질 수 없는 바람의 표출에 그치지 않고 기존 정치 질서의 대안으로 바로 서려면, 적어도 다음의 두 가지 역사적 조건이 무르익어야 했다. 첫째는 근대국가의 대두이다. 유럽의 역사적 경험에서 볼 때, 강력한 정부의 존재는 그 자체로 민주주의를 설정해 주지는 않지만 적어도 근대 민주주의가 등장할 수 있는 필요조건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정부 통치 능력의 증대는 언제나 민주 체제의 형성에 선행했고 동시에 그 토대가 됐던 것이다. 이 점에서 특히 중세 이래 1000여 년에 걸친 유럽의 오랜 국가 형성과정은 민주주의의 새로운 탄생에도 심대한 의미를 갖는다. 오랫동안 같은 왕조의 지배를 받는 가운데 점차 영토적 정체성이 생겨났다. 아울러 절대주의 하에서 국가의 침투력이 전통적인 영역을 넘어 교회가 장악해왔던 영역으로 침투해 가면서 국가는 추상화되고 군주의 인격성에서 독립됐다. 이렇게 해 국왕주권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주체가 형성될 토대가 놓였다. 특히 18세기에 서구에서 여론과 그 주체인 公衆이 생겨나면서 ‘인민’이나 ‘국민’을 상상하는 것이 가능하게 됐다.


「위험 사회와 과학기술의 민주화」박진희 동국대 교수(교양교육원)
80년대 중반 이후로 과학기술운동 논의가 과학기술자 노동 운동과 민족과학기술운동으로 분화된 배경에는 한국 사회 변혁 운동론을 둘러싼 논쟁이 있었다. 제국주의 민족 모순을 강조하는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 혁명론과 계급 모순을 강조하는 민중민주주의혁명론 논쟁이 과학기술운동 논의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었다. 청년과학기술자협의회를 중심으로 하는 과학기술자 노동 운동 주창자들은 한국 사회에서의 고도 산업화로 과학기술 노동자들이 양산되면서 여타 노동계급과 마찬가지로 계급적 모순에 직면해있다고 보았다. 과학기술자들은 노조와 같은 조직적 단결을 통해 과학기술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1990년대 후반 한국 시민 사회의 정착과 더불어 과학기술운동에서 제기된 ‘과학기술의 민주화’ 논의는 한국의 시민 사회를 새롭게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줬다. 1987년도 6월 항쟁을 기점으로 한국 사회는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를 정착시키며 절차적 민주주의 제도를 정착시켜왔다. 그러나 급속한 산업화, 첨단과학기술의 무한 질주 과저에서 비롯되는 사회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능력을 기르지는 못했음이 이내 드러나게 됐다. 눈부신 경제발전 성과와 더불어 환경 오염을 비롯한 각종 과학기술 위험에 노출되고 있었지만, 이들 위험에 대한 적정한 대책들이 마련되지 않으면서 한국 사회는 지속적인 사회적 갈등에 부딪쳐온 것이다. 과학기술 민주화 논의는 이런 위험 사회 환경에서 과학기술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제시하는 것이었다. 위험에 관한 과학지식의 불확실성과 전문가 지식의 권위가 실추한 현재의 상황에서 과학기술 문제는 시민지식과 전문가지식의 민주적인 소통과 협상을 통해 풀어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민주주의의 형성과 변천」한정선 고려대 교수(국제학부)
일본에서 1960년대 출현한 ‘시민’이 과연 민족과 국가를 초월한 보편적인 가치를 내포한 개념이었는가에는 의문이 생긴다. 이 당시에 나타난 ‘시민’은 ‘독립, 독보의 개인’이자 동시에 ‘강한 연대감’을 갖고 있는 존재이다. 그리고 연대감의 정서는 ‘공통 체험으로써의 전쟁기억’이었다. 즉 1960년대 ‘시민’의 출현은 전쟁 경험과 기억 속에서 나타났다. 특히 ‘천황제 관료주의’, 군국주의에 의한 침략전쟁에 대해 비판적 저항을 전개하지 못한 戰前 ‘지식인’에 대한 회한 그리고 반성과 영동돼 있다. 예를 들면, 패전이후 <사상의 과학> 편집장으로 ‘사람들의 철학’을 추구한 츠루미 슌스케 등은 1960년 5월 이후의 안보투쟁시 출현한 ‘무명의 젊은이’, ‘민중’ 또는 평범한 ‘일본인’에서 ‘무책임정치’ 또는 국가의 사회 간섭과 통제를 막을 수 있는 주체의 성립 가능성을 본 것이다.
바꿔 말하면, ‘안보투쟁’을 통해서 만들어진 ‘시민’은 보편적인 민주주의의 주체로 국가 또는 민족을 상대화한 것이라기보다는, 지극히 특수한 전쟁경험, 일본인(민중) 속에 뿌리를 둔 개인인 것이다. 따라서 ‘시민’의 형성, ‘사람들의 철학’의 형성은 역사학계Dp서 민중의 일상과 생활에 뿌리를 둔 일본 각 지역의 ‘民衆史’의 재구성과 밀접하게 연결돼 전개됐다. 결과적으로 ‘민족국가(ethnic nation)’와 ‘일상성(everyday)’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전후민주주의의 주체이자 객체인 시민은 “종종 지극히 편협한 목적과 감정을 시민활동(civic activity)과 시민사회(civil society)라는 보편적인 상징으로 포항하는 데 아주 유용하게 활용된 도구” 역할을 하는 한계를 갖게 됐다.

 

정리=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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