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06:05 (일)
‘不動心’을 위하여
‘不動心’을 위하여
  • 강혜종 한국산업기술대 강사
  • 승인 2012.08.27 15: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문후속세대의 시선] 강혜종 한국산업기술대 강사

강혜종 한국산업기술대 강사
교정을 거닐다보면, 학자의 하루란 수도승의 하루와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 연구실에서 골몰하며 햇빛을 잘 쐬지 않는 연구자들의 얼굴은 유난히 희고 동안이 많다는 엉뚱한 생각도 한다.(답사 등 외부 연구 활동을 많이 하시는 분들의 예외적인 경우가 있겠지만) 그러나 학자가 수도승과 다른 점이 있다면, 세상에 대한 탐구가 내적 침잠이 아니라 광장을 향한 외침이 되는 지점이 아닐까.

누에꼬치가 반짝이는 비단실을 토해내듯, 연구자들이 빛나는 한 줄 한 줄을 고심하며 써 내려가는 과정은, 학문의 재미를 탐닉하는 자기만족의 행위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무엇보다 학자로서 발견하고, 창조한 바를 세상과 소통하는 기쁨이 클 것이다. 특히 고전을 탐독하며, 그 의미를 해석하고 소개하는 일들을 해 나가는 연구자들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많은 목소리들의 울림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올해로 다산 탄생 250주년을 맞아, 인문학계에서는 ‘다산학’에 대한 관심의 열기가 뜨겁다. 아울러 ‘實學’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전망에 대한 기대도 크다. 지난 7월 28일, 강진다산실학연구원과 연세대 국학연구원 HK사업단이 주최한 학술대회 ‘시대의 답을 다산에게 묻다’가 전라도 강진에서 열렸다. 기조발표를 맡은 임형택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1970~80년대『譯註 牧民心書』의 작업이 “질곡의 근대”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나아가『목민심서』를 통해 “민주·민중의 사상적 연원과 정통성”을 찾고자 했음을 회고했다. 이어지는 발표들을 통해서도 다산이 절실하게 호명됐을 때는, 시대적 가치 선택과 실천적 대안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순간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다산에게서 혹은 실학에서 근대성을 발견할 수 있는가에 대한 분분한 논의는 접어두고, 지금 여기서 떠올려보고 싶은 바는, 시대적 고민을 저서로 엮어낸 다산만큼, 학문을 통해 학자의 방식으로 실천적 목소리를 내고자 했던 선학들의 모습이다. 학자로서의 사명감 등등을 거창하게 운운하지 않더라도, 발견하고, 창조한 학문의 공공성을 실현하고자 했던 어느 학자들에 대한 기억이다. 이들 모두에게는 그 누구보다 현실에 대한 깊은 고민과 엄격한 성찰의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과연 몇 십 년 후에 어떤 기억 속의 학자로 남을까. ‘학자’로 남을 수 있을까. 학문후속세대의 미래는 깜깜한 새벽 아득한 바다 안개 속 막막한 현실과 투쟁해서 얻어야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질문은 어쩌면 비현실적인 우문일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생존을 위한 투쟁 전선에 지쳐있는 수많은 비정규직 대학 교원들에게는. 어떤 이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처음 가졌던 배움의 열망이나 연구에 대한 희망을 접고, 현실과의 싸움에서 쓸쓸히 퇴장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아직 한창 배움의 과정에 있는 나와 같은 학문후속세대의 학자적 의무(?)를 꼽아보자면, 우선 ‘知性의 石膏化 방지’를 위해 용기 있게 말하기가 아닐까 생각해본다.(가장 두렵고도 어려운 일이겠지만) 선학들이 내어 놓은 길을 따라 배우고 연구하면서도, 학문적 권위나 정통성에 주눅 들지 않고, 코페르니쿠스적 용기를 잃지 않는 것, ‘말하는 의무’를 져버리지 않는 일. 이것이 모두에게 필요한 연구자의 ‘부동심(不動心)’을 갖추기 위한 첫 단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나의 작금의 현실을 돌아다보니, 그보다 먼저, 열심히 책장을 넘겨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강혜종 한국산업기술대 강사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중이다. 법 글쓰기, 사회 비평, 글쓰기라는 ‘제도’와 공공성, 미적 가치 형성 방식 등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고 있다. 석사논문으로『흠흠신서』의 편찬 배경과 글쓰기 방식을 분석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