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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거장들의 귀환 … 그러나 새로움은 없었다
익숙한 거장들의 귀환 … 그러나 새로움은 없었다
  • 이상용 영화평론가
  • 승인 2012.06.12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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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_ 칸 영화제, 노쇠함과 피로함 사이

배우나 스타가 아닌 감독들의 이름만으로도 세간의 관심을 모을 수 있는 영화제를 꼽으라면 올해로 65회를 맞이한 칸 영화제를 앞자리에 놓아야 마땅할 것이다. 올해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미하엘 하네케의 「사랑」을 포함해, 크로넨버그, 키아로스타미, 알랭 레네, 켄 로치 등의 이름은 어지간한 영화광들을 열광하게 만든다. 이들 사이로 보이는 신인들 역시 영화사의 거장들과 나란히 섰다는 이유로 앞날의 축복을 예고 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면 정색을 하고 대면하게 된다. 아주 오랜만에 선을 보인 레오 까락스의 「홀리 모터스」는 심심했고, 크로넨버그의 「코스모폴리스」는 친숙한 것들의 반복이며,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사랑」은 시적인 영화이고, 뛰어난 작품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예상과는 크게 다르지 않은 전개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이란을 떠나 국제적인 영화를 만드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글로벌 프로젝트는 확실히 심심하다. 크리스티안 문주의 「비욘드 더 힐」은 예술적 스타일의 절정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그의 성공작인 「4개월 3주 그리고 2일」에 비하면 긴박감이 떨어진다.

올해 칸은 새로움은 크게 없는 익숙한 거장들의 귀환이었다. 그 사이로 칸이 공을 들인 것은 미국영화였다. 앤드류 도미니크의 「킬링 뎀 소프틀리」는 브레드 피트를 등장시킨 영화였고, 존 힐코트의 「로우리스」는 법을 상실한 시대인 1930년대를 배경으로 금주법과 갱들의 이야기를 주인공의 성장담 속에 집어넣는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트랜스포머’의 로봇 소년 샤이라 라보트였다. 「머드」의 감독 제프 니콜스는 지난해에 이어 칸의 떠오르는 신예로 각광받기는 했지만 「스탠 바이 미」를 연상시키는 성장영화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친숙한 것의 반복이었다. 미국 영화 혹은 미국의 신예를 대거 영입한 칸의 목록은 과거와 달라져야 한다는 칸의 몸짓을 짐작하게 했지만 결과적으로 새로운 충격은 아니었다. 심심한 목록들을 따라가다 보니 임상수의 「돈의 맛」은 꽤 도발적으로 보일 정도였다.

어쩌면, 올해의 수상목록은 예상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미하엘 하네케, 크리스티안 문주는 이미 칸의 그랑프리를 수상한 칸의 아이들이었고, 제 65회 칸 영화제는 그들의 귀환을 목격하면서 끝이 나 버렸다. 물론, 칸에는 경쟁부문 영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뤼미에르 극장과 나란히 있는, 드뷔시 극장에서 상영되는 ‘주목할 만한 시선’의 주목할 만한 영화들 속에는 「사라예보의 아이들」과 같은 보스니아의 영화가 있고, 다른 주체들이 운영하는 감독주간이나 비평가주간의 보석 같은 영화들이 있기는 했지만 사람들의 눈과 귀를 한데 모으는 새로운 작품은 비교적 드물었다. 그것은 오늘날의 영화문화가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가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거장들만으로는 아주 큰 활력을 일으키기에는 역부족이고, 새로운 감독들은 다소 힘에 부치는 모습이었다.

비경쟁부문에 선보인 「몽상가들」의 거장 베루톨루치의 신작처럼 사람들은 휠체어를 타고 등장한 노장에 대한 환대를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영화의 여운을 오래 느끼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이를 더욱 차갑게 식힌 것은 칸을 향한 국내의 관심사였다. 대부분의 언론은 홍상수 감독의 「다른 나라에서」와 임상수 감독의 「돈의 맛」이 황금종려상에 근접한 영화인가를 두고만 논쟁을 벌였다. 이러한 접근에는 영화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태도가 결여돼 있는 것이며, 결과적으로는 영화 그 자체를 소외되게 만들었다. 이들 작품이 상을 받을 수 있는지 여부에만 촉각을 세웠다. 영화에 대한 고담준론을 펼치는 것도 지겹게 보이는 것은 분명하지만 스포츠 경기의 결승전을 보도하듯이 예상문답을 써대는 기사를 접하는 것도 ‘피로감’을 부추길 뿐이다.

경쟁부분에 진출한 홍상수의「다른 나라에서」의 한 장면

거장들의 신작을 중심으로 한 노쇠함을 칸의 영화들이 보여주고 있었듯이, 한국에서 칸을 향한 관심은 수상여부에 쏠린 피로감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냉소적으로 올해의 칸을 노쇠함과 피로함으로 정의 내리게 됐다. 물론, 모든 것을 쉽게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비평가 주간에서 소개된 신수원 감독의 단편 「써클라인」은 비평가부문 본상인 카날플러스상을 수상했다. 유럽에 조금이라도 머물렀던 경험이 있는 이들이라면 카날플러스 채널에서 쏟아져 나오는 영화의 양과 질에 조금은 놀라게 되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카날플러스는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주요한 작품들에까지 손을 뻗으며, 좋은 감독들을 영입하고 투자하는 대표적인 미디어 회사 중의 하나이다. 한국에 돌아가서 새로운 장편을 시작하는 신수원 감독에게 카날플러스의 상금은 물론이고, 그들이 보낸 지지가 든든한 양식이 돼줄 것임에 분명하다.

칸은 화려한 경쟁부문뿐만 아니라 다양한 섹션과 창구를 통해 자신들의 미래를 양성하고 있다. 그들이 학교에 소속된 작품들을 중심으로 하는 ‘시네파운데이션’을 직접 운영하면서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것도, 미래의 거장으로 귀환할 단편 감독들을 주목해서 보고자 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도박과도 같은 성질이 있어서, 자고 나니 하루아침에 유명인이 됐다는 일화가 종종 만들어지고는 한다. 누가 뭐래도, 칸은 이러한 신화를 만들어내는 대표적인 꿈의 공장 중 하나일 것이다.

사실 올해 경쟁작 중에는 중국과 일본 영화는 전무한 상태에서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를 제외하고는 두 편의 한국영화가 아시아 지역을 대표하는 작품들이었다. 칸의 프로그래밍이 지역적인 안배도 고려하는 만큼 이를 생각하면, 한국영화의 위상이라는 것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수상이 아니라 문화이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시작되면 칸의 주요한 작품들을 포함해 새로운 영화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만 요사이 한국의 영화관람 문화는 축제의 순간 그뿐이다. 일반 극장에서 새로운 모험을 하는 작가의 영화들은 찬밥신세가 된다. 이를 바꾸지 못한다면, 칸의 황금종려상을 수상한다고 할지라도 결국 우리 스스로 내치는 문화를 만들어낼지도 모를 일이다. 바깥의 열광보다는 내부의 문화적 성숙이 절실하다.

파리= 이상용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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