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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D. in What?
Ph.D. in What?
  • 김경희 성균관대∙무용학과
  • 승인 2012.05.21 1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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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무용학 박사가 되겠다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때가 1987년 7월, 아주 더운 여름이었다. 공부하러 가는 학생이 무슨 옷을 그렇게 예쁘게 차려입고 가야 했었는지…… 당시, 결혼도 안했던 터라, “옷이라도 예쁘게 입어야 한다”는 엄마의 극성 때문에 적절치 못한 복장으로 미국 텍사스로 향했다.

‘Texas Woman's University!’한국에서 학부와 대학원도 이화 ‘여자대학교’를 나왔는데, 박사 학위도 女大에서 해야 함은 무슨 ‘운명’인냥 받아들였다. 이렇게 시작된 유학생활. 비행기 타고 오는 내내 우는 나에게 옆자리에 앉은 미국 아저씨가 내게물었다. 어디 가냐고? 난, 무용으로 박사 학위를 따러 간다고 했더니, 그 아저씨 왈, “Ph.D. in What?”너무나 생소했었나 보다! 그 후, 공부하던 중, ‘Ph.D. in What?’이란 제목으로 된 어느 저널에 실린 연구 논문을 읽게 됐다.

 

텍사스여대 박사, 대한무용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그땐 그랬었다! 무용하는 사람이 무슨 박사냐고? 춤추는 사람이 그냥 춤이나 잘 추면 됐지, 무슨 박사냐고! 난 그 말이 정말이지 몸서리치게 싫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을 때까지 공부를 열심히 할 것이고, 학생들도 열심히 가르쳐야 하겠다고 결심에 결심을 거듭했다.

1990년 3월, 성균관대 무용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1989년 무용학과가 개설되고, 처음으로 임용된, 이른바‘開科 교수’이다. 그때, 그 열악했던 환경……. 여러 문제들을해결하느라 동분서주할 때였다. 이쪽 부서로 가면, 저쪽 부서로 보내고, 또 다른 부서로 보냈다. 나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여러 곳으로 보내졌다. 내가 그때 뼈저리게 느꼈던 것은, 대학 내에 ‘여자’그리고 ‘무용’에대한 편견이었다.

당시에 본부나 연구실 건물에 ‘여자 화장실’이 따로 없고, ‘남자 화장실’내에 ‘여자’표시가 붙은 한 칸만이 겨우 ‘여자 화장실’로 사용됐다는 점으로 미뤄 얼마나 ‘여성’에 대한 배려가 없었는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무용과 일로 찾아온 나에게 이리 저리 가라고 한 그들은, 나를 ‘춤’이나 좀 잘 춰서 교수가 된 ‘여자’쯤으로 여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도대체 언제 적 이야기를 하는 거야? 라고 반문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겨우 20여 년 전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무용’은 실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현재 대학교육 내에서 무용 실기는 크게 세 장르로 구분된다. 즉, ‘한국무용’, ‘현대무용’, 그리고 ‘발레’다. 그 외에 재즈, 스포츠 댄스 등 여러 장르의 무용을 교육하고 있다. 나는 박사 학위 논문(1993년)에서 한국의 대학 내 무용 교육의 현황과 문제점을 논의하면서 무용 학습을 위한 통합된 구성 요소의 모델을 제시했다.

무용학습(Dance Discipline)이란 물론, 무용하기와 무용 만들기(Dance & Dance Making)가 주개념이며, 이를 위해 무용 철학·미학, 무용 역사, 무용 비평, 무용 교육, 무용 과학, 무용 기록 및 동작 분석이 구성 요소로 통합돼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요소들이 균형을 잃지 않고 조화롭게 실천돼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사단법인 대한무용학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 대한무용학회는 1974년 발족된, 무용계에서 제일 오래된 母 학회다. 학회는 무용의 학문적 가치와 사회적 중요성을 증진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행사를 추진해오고 있다. 매년 6차례 발간되는 논문집은 무용학회로는 처음으로 한국 연구재단에 등재된 학술지로, 투고된 논문은 매우 엄격한 심사 과정을 거쳐 게재된다. 또한, 매년 국내 학술대회와 국제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해 보다 전문화되고 심화된 내용으로 무용학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춤으로 푸는 古典’이란 행사를 통해 젊은 안무가들을 발굴, 지원해주고 있으며, ‘한국의 춤·세계의 춤’이란 행사는 무용 작품에 대한 연구와 재현, 즉 이론을 뒷받침한 무대 공연으로, 무용 이론과 실기의 상호 연관성을 심화 발전시키고 있다.

박사학위를 취득한 지 20년이 돼 간다. 그때 제안했던 모델에는 6개의 무용관련 학문분야가 제시돼 있다. 그러나 현재 대한무용학회의 구조를 살펴보면 12개의 분과로 세분화돼 있다. 이미 언급된 6개의 분야 이 외에, ‘무용심리 및 치료 분과’, ‘무용 문화 연구 분과’, ‘무용 경연 분과’, ‘무용 테크놀로지 분과’, ‘커뮤니티 무용 분과’, 그리고 ‘무용 공연 분과’가 있다. 각 분과마다 전문적이고 심층적 연구를 하시는 이사님들께서 분과 위원장을 맡아, 맡은 학문 분야를 활성화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아마도, 지금까지도, 무용과 교수를 그저 무용실에서 실기나 가르치는 선생쯤으로 생각하는 타과 교수가 있지는 않을까 갑자기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아니겠지?, 아닐거야! 아니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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