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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통섭 통해 진정한 공동연구 정착이 목표”
“소통·통섭 통해 진정한 공동연구 정착이 목표”
  • 권형진 기자
  • 승인 2012.05.21 1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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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 송용준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원장

 

“소통과 통섭이라고 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공동연구가 정착되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송용준 서울대 인문학연구원장(중어중문학과·사진)은 여러 차례 ‘소통과 통섭’을 강조했다. 소통과 통섭이야말로 인문한국(HK) 지원사업이 아니면 시도해 보기 힘든 실험이라는 생각에서다. 2007년 대형연구소에 선정된 서울대 HK문명연구사업단의 연구 어젠다‘문명의 허브를 향햐여 ’자체가 이미 ‘소통의 중심’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연구 인력부터 일반 학과라면 상상하기 힘든 구성이다. 동·서양 의학사, 건축학, 인류학, 지리학과 같은 비인문학 분야 전공자도 연구교수로 참여하고 있다. “제대로 된 인문학을 하려면 비인문학도 필요하다”는 송 원장의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HK문명연구사업단은 소통과 통섭을 제대로 보여주자는 취지로 11개 공동연구팀을 실험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용수안론』 공동연구도 그 가운데 하나다. 중국의학에서는 드물게 눈병 수술을 자세히 설명한 문헌이다. 조선시대에 간행된 『의방유취』에 내용이 전하는데, 대부분 인도의학서의 눈병치료 서술과 일치한다. 중국과 인도의 의학 전통 모두를 이해해야 제대로 연구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도 연구가 거의 없는 이유다. 동양의학사, 인도철학사, 중국고대사 전공자 3명이 모여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조만간 SCI급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한다. 강성용 HK교수(인도철학)는 “학과에 소속돼 있었다면 시도조차 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거들었다.

공동연구를 위한 소통과 통섭은 HK문명연구사업단에 소속된 연구진이 모두 모이는 콜로키움과 월례발표회, 심포지엄 등의 토론을 통하면서 깊이를 더한다. 원장이라고 해서 봐주지 않는다. 송 원장도 토론에서 공격당하는 일이 있다. 최근 학술원 우수 학술도서로 선정된 『빠니니 읽기(인도 문법전통의 이해)』 같은 경우 처음에 ‘본인의 연구역량이 감당할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까지 받았다. 송 원장은 “이것이야말로 HK사업이 아니면 절대 있을 수 없는 문화”라며 “지원은 하되 결과를 강요하지 않고, 실패해도 시도해 보는 방식의 사업이기 때문에 가능한 측면도 크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6월 열린 문명텍스트 시리즈 출판 기념회.
HK문명사업단의 연구활동 결과는 학술서 출간이 중심이다. 1단계 공동연구의 결과물은 지난해 두 권의 책으로 출간됐고, 두 권이 준비 중이다. ‘문명텍스트 시리즈’도 올해 말이면 총 22권이 나온다. 『 서양 철학의 기원』 등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교양서도 4~5종이 대기 중이다. 1단계 사업 3년 동안 학문 분야 간 소통한 결과가 올해 말이면 총 30여권의 단행본으로 결실을 맺는 셈이다.

HK문명사업단은 연구 성과의 사회적 확산과 소통에도 적극적이다. ‘문명학교’와 ‘문명포럼’, ‘직하서당’ 등을 개최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문명학교’는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열고 있는 인문학 강좌다. ‘알타이 언어자료 아카이브’와 ‘중앙유라시아 문명 아카이브’를 구축해 고급정보의 접근성과 개방성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 EBS의 ‘인도 문명’을 주제로 한 6부작 다큐멘터리 「인도의 얼굴」과 ‘문명과 혈액’을 주제로 한 2부작 다큐멘터리 「붉은 황금, 혈액」의 제작에도 참여했다.

송 원장은 올해 안식년까지 반납하고 인문학연구원과 HK사업에 매달리고 있다. 지난해 4월부터는 HK연구소협의회장을 맡고 있다. 송 원장은 “이미 한국은 상당한 분야에서 세계적 연구소가 됐다. 이제는 세계를 선도하는 연구소가 돼야 한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과 통섭이 가능한 연구소로 발돋움시키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학과가 아니라 연구소에 소속된 전임교수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문학연구원 교수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느냐. 철학과로 가게 되면 철학이라는 울타리를 갖게 된다. 인문학연구원 교수는 그 울타리가 없거나 엄청나게 넓은 울타리가 된다. 사고의 폭과 깊이가 달라질 것이다. 인문학연구원 교수들이 중심이 돼 섬처럼 떨어져 자기 연구에 바쁜 교수들을 모아 소통하고, 통섭적인 정말 인문학적인 큰 연구들을 기획하고 해 나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세계를 선도하는 연구소로 가능하게 하는 동력이다.”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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