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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방학 반납한 채 3년간 교정 또 재교정…'한국학' 토대 마련
주말·방학 반납한 채 3년간 교정 또 재교정…'한국학' 토대 마련
  • 차상호 한국외국어대 교수(태국어과)
  • 승인 2012.01.02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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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사전 만들기까지_ 태-한사전, 한-태사전의 경우

한국외국어대가 출간한 외국어사전은 다양한 종수를 자랑하고 있다. 하나하나가 모두 학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기여도가 높은 산물이다. 특히 국내서 활자를 취급할 수 없어 제작에 어려움을 겪었던 사전 가운데 하나가 '태국어 사전'이다. 단어 하나하나 이미지를 만들어가면서 제작해야 했기 때문에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차상호 한국외대 교수(태국어과)의 글을 통해 사전의 탄생과 의미를 짚었다.   

태국어는 차이나-티베트(Chaina-Tibetan)어족에 속하는 차이나-타이어파로, 이는  중국 제 방언과 타이(Thai) 제 방언으로 대별한다. 타이어는 라오스어(Laos)와 샴(Siam)어로 분류하는데, 샴어는 방콕을 중심으로 중부지역에서 태국어의 표준어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이것이 좁은 의미의 태국어이다. 태국어는 대부분 단음절어로서의 고립어이며, 44개의 자음 문자와 32개의 모음문자 그리고 5개의 성조어(Tone Language) 및 기타부호로 돼 있다.
 
  한국에서 태국어 교육이 시작된지 이제 45년이 넘었다. 1966년 한국외국어대학교에 태국어과가 설립되면서 태국어와 태국학이 대학 정규과정에서 학문적인 뿌리가 내리게 된 것이다. 이로부터 태국어 학습과 연구를 위해 교재가 개발되었지만 사전이 없었던 관계로 불가피하게 태영사전(Thai-English Dict.)과 영태사전(English-Thai Dict.)에 의존하다보니 불편함과 많은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태국어-한국어 사전의 간행은 태국어와 태국학은 물론 태국과 관련된 업무를 하는 이들의 한결같은 바람이었다. 그런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전문적인 인적 자원과 예산 확보가 관건이었다. 사전 편찬 작업이 매우 힘든 작업일 뿐만 아니라 재원 마련이 간단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던 중 1986년에 이르러 당시 교육부와 한국외국어대가 태국어-한국어 사전 편찬을 위한 소정의 예산을 책정했다. 이때 특수 외국어중 러시아어-한국어, 터키어-한국어도 함께 지원을 받게 됐다.

  이로써 사전편찬을 기획해 착수했는데, 소액의 한정된 예산과 통화팽창사태로 인해 재정적 난관에 봉착하게 되고, 특수문자인 태국어 활자를 취급할 수 있는 전문요원이 없어 수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원래부터 사전 편찬을 위한 연구활동비도 책정할 수 없었지만, 기본적인 예산부족으로 편찬위원 모두가 각기 경비를 갹출하면서 희생봉사를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전문요원 없어 숱한 어려움 겪어

  이 태국어-한국어 사전은 표제어 3만2천 단어와 파생어 2만8천 단어를 포함하여 6만여 단어를 수록하도록 계획했다. 처음부터 사전편찬을 위해 각종 『泰英辭典』, 『泰日辭典』, 『泰漢辭典』및 태국에서 간행된『泰泰辭典』등을 면밀히 조사 검토해 그 중에서 다께지로 도미다의 『泰日辭典』의 표제어를 모델로 선정해 작업했다.

  한국외국어대 태국어과 최창성 교수가 편찬위원장이 되고 태국어과 교수인 이교충, 김영애, 차상호, 이한우 교수가 편찬위원이 됐다. 이병도, 최난옥, 윤경원, 최은희 교수가 편집과 교정을 담당했다. 교정과 편집에 있어 많은 오류와 온갖 어려움 끝에 1993년 8월에야 7년에 걸친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 이후 보완작업을 계속해 2000년에 개정판을 낸 바 있으며, 2008년에 이르러 시대조류에 따른 신조어, 부록 등을 추가하는 개정증보판을 내기로 해 마침 새로운 컴퓨터 활자가 개발돼 한국외대 교환교수로 초빙한 태국의 쏭클라대 한국어학과의 빠릿 웡타나쎈 교수 주도하에 태국어 입력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여전히 오류를 발견하게 되면서 2009년에는 태국 씬라빠껀대에 싸이와룬 니밋너이 교수가 한국외대 교환교수로 부임해서 사전 전부를 또다시 점검해 탈자, 오자를  바로잡았다. 송인서 강원대 교수가 한자와 한국어의 오류를 잡아주어 2010년 8월에 개정 증보판을 낼 수 있었다.

 

“편찬위원들은 주말과 방학도 잊은채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연구실적도 못냈고, 연구비 수혜도 없었다.

학자로서의 소명의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작업이다.”

 

  태국어-한국어사전 작업이 끝나던 해인 1993년에 또다시 교육부 학술연구사업 계획(외국어사전편찬)에 따라 한국어-태국어사전 편찬계획을 수립하게 됐다. 이 역시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태국어-한국어사전 편찬보다 훨씬 더 전문성이 요구되는 작업이고 막대한 예산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예산부족의 재원을 마련하기위해 국내외의 여러 기관과 단체 그리고 태국어과 동문들에게까지 지원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노력 결과 태국 大學省으로부터 사전편찬 전담 인력의 지원을 약속받고, 태국 수상실 산하 경제기술과와 한국외국어대의 학술협정교류대학인 태국 국립 부라파대의 예산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주한태국대사관 협조로 태국 정부의 재정 지원도 받았다.

  사전편찬에 관한 작업은 당초에 표제어와 파생어를 포함해 5만5천 단어를 목표로 하고 집필기간은 5년을 계획했으나, 예산 부족과 인적 자원 부족으로 도저히 진행해 나갈 수 없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2000년에 초고가 완성됐으나, 이에 만족하지 않고, 초고 첫 장에서부터 한국인 교수와 태국인 교수가 일대일로 표제어를 하나하나 점검해 나갔다. 5만여 표제어를 일일이 점검하는 일이 보통 방대한 일이 아니었다. 주말과 방학을 반납하며 3년여에 걸쳐 교정을 마친 편집위원들은 자체 평가를 거쳐 다시 한 번 점검이 필요하다고 인식을 같이 하였다. 이를 위해 한국인 편찬위원 2인과 태국인 편찬위원 1인이 한 조가 돼 재교정 작업을 할 수 있었다. 두 번의 교정 작업을 마친 원고를 마지막 단계로 한국인 1인과 태국인 1인이 최종으로 감수했다.

  사전 편찬 과정에서 편찬위원들이 겪은 노고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13년의 짧지 않은 기간에 편찬위원들은 주말과 방학도 잊은 채, 열악한 환경 하에 희생을 하며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일반 교수들처럼 학술연구 활동을 할 시간도 없게 되다보니 연구실적도 없을뿐더러 학술연구비의 수혜도 없었다. 물론 사전편찬 연구활동비도 전무했는데, 이는 아마도 오로지 학자로서의 소명의식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된다.

논문도 잊은채 사전편찬에 몰두한 교수들

  사전 편찬 위원으로는 한국외국어대 태국어과의 김영애, 윤경원, 이교충, 이병도, 이한우, 정환승, 차상호, 최난옥, 최은희, 최창성 교수가 참여했다. 태국인 편찬위원으로는 한국외대 초빙교수로 온 부라파대학교(Burapa Univ.)의 탓싸니 탄따와닛, 쑨타리 쿤나짝, 욤도이 펭퐁싸, 씨나카린 위롯 대학교(Srinakharinwirot Univ.)의 찐따나 풋따멧따, 악카라 분팁, 파이분 두엉짠, 반폿 씨리차이, 씬라빠껀 대학교(Silpakorn Univ.)의 암펀 깨우쑤완, 풋타찻 뽀티반, 쏭클라 대학교(Songkhra Univ.)의 첫차이 우돔판, 빠릿 웡타나쎈 교수가 수고를 했다. 태국인 편찬위원은 해마다 한국외대 태국어과에 교환교수로 초빙한 교수들과 태국정부의 배려로 참여한 분들이다. 특히 태국어 교정과 최종 감수에 최창성 교수, 탓싸니 탄따와닛 교수, 풋타찻 뽀티반 교수가 각별히 수고를 했다. 또한 교정 및 컴퓨터 입력에는 쏭클라 대학교 한국어과의 빠릿 웡타나쎈 교수의 노고가 컸다. 아울러 한국외대 태국어과와 태국 쏭클라 대학교의 한국어과 학생들의 고생도 많았다.

  외국어 사전 편찬 계획을 한 교육인적자원부와 일찍부터 글로벌 경쟁시대를 리드하고 있는 대학측의 적극적인 후원이 없었다면 사전편찬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 됐을지도 모른다. 더욱이 특수 문자인 태국어의 편집과 출판에 가장 노고가 컸던 한국외대 출판부를 빼놓을 수 없다. 이와 같이 한국외국어대 태국어과의 전 교수진과 태국인 교환교수들의 피와 땀으로 이룩해 낸 두 사전의 편찬에 따라 한국 대학과정에서 태국어문학과 태국학, 그리고 태국에서의 한국어문학 및 한국학을 비롯한 제반 학문의 발전을 더 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우리나라 기업의 태국 진출, 그리고 태국 기업과 수만 명의 태국인 근로자의 한국 진출과 더불어 시대적인 요청에 따라 최근의 韓流와 泰流의 확산에서 볼 수 있듯이 문화 스포츠 분야에 이르기까지 그 효과가 더욱 증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9월에는 태국 내 고등학교에 정규과목으로 한국어가 채택되어 한국어 교원 54명이 파견되는 등 태국의 대학뿐만 아니라 고등학교와 20개의 사설어학원에서도 한국어 열기가 고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인쇄매체의 사전 출간으로 사전 이용이 편리하게 됐으며, 현재 한국외국어대 출판부에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는 디지털 사전이 등장하게 되면  학문발전의 가속화와 더불어 국제화와 지식정보화 시대로 도약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차상호 한국외국어대 태국어과

 

 필자는 동국대에서 태국 정치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했다. 한국태국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외국어대 대학원장으로 있다. 지은 책에는 『태국 현대민주정치론』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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