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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별 해당 학과 교수들의 '열정'이 만든 결실…세계화 대비했다
언어별 해당 학과 교수들의 '열정'이 만든 결실…세계화 대비했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2.01.02 12: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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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유산, 한국의 미래다 (7) 한국외국어대의 30여종 외국어사전

사전 편찬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이를 독려했던 한국외국어대 설립자인 고 김흥배 이사장의 선견지명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한국외국어대(총장 박철)는 1954년 창립자 김흥배 박사(사진)에 의해 설립됐다. 김 이사장은 자원이 부족한 한국의 현실에서는 세계 각국과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파악하고, 세계 각국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소통이 기본이라는 신념으로 외국어 교육을 시행했다. 외국어 교육을 전담하는 대학을 국가 차원에서 뒷받침하고 있는 이웃 중국이나 일본과 다른 한국적 상황은 이렇게 시작됐다. 

영어, 불어, 독일어, 러시아어, 중국어 5개 언어를 가르치는 것으로 시작한 초창기 한국외국어대의 외국어 교육의 어려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교원을 초빙하는 일, 교재를 구하는 일, 어학 실습시설을 갖추는 일 어느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특히 전쟁 직후에 '러시아어'처럼 적성 국가의 언어를 가르친다는 것은 불온한 일로 받아들여지는, 예민한 문제이기도 했기 때문에 어려움은 더 했다.

외국어 교육 초창기에는 관련 학과 교수들이 유학 당시 가져온 책들이 '신주'처럼 귀중했다. "주한외국대사관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교재 한두 권을 구해오면 그것을 보물처럼 아끼고 등사기로 복사해 사용하기도 했다"라고 교수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이런 시절이다보니 해당 언어의 사전을 만든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사전을 만들 수 있는 인프라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사전 역시 한두 권을 구해오면 여럿이서 돌려보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한국외국어대 특수외국어사전의 탄생에는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이 작동한다. 1970년 후반 김흥배 이사장은 "이런 상태에서는 외국어 교육의 내실을 기할 수 없다"라고 판단, 어떻게든 사전을 만들자고 구성원들을 독려했다. 때마침 정부에서도 세계 각국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고 인프라도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전 편찬에 필요한 연구비 지원을 제의했다.

인도네시아어, 태국어, 인도어 3종을 시작으로 베트남어, 이란어, 아랍어, 터키어 폴란드어, 루마니아어, 체코어, 유고어, 헝가리아어, 스웨덴어, 러시아어 등 20여 종의 사전을 만들기로 하고 언어별로 연구비를 지원 받았다. 물론 출판은 한국외국어대 출판부에서 하기로 했다. 그러나 사전을 편찬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수동타자기로 타이핑을 해가며 원고를 작성할 수 있는 언어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타이핑도 할 수 없는 언어는 모든 원고를 손으로 일일이 종이에 써 넣어야 했다. 연구기간은 통상 3년에서 5년이었으나 약정된 기한 내에 원고를 완성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페르시아어-한국어사전』을 엮은 당시 이란어과 김정위 교수는 사전 머리말에 흥미로운 고백을 남기고 있다. "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1987~1990년에는 아직 컴퓨터가 일반화돼 있지 않았고 원고는 모두 손으로 쓰여졌으므로 그 뭉치는 엄청났다. 그래서 1991년 한 해는 이 원고를 컴퓨터에 입력하는데 소요했다. 그러나 페르시아어, 로마글자 및 한글을 동시에 표기할 수 있는 컴퓨터는 그 가격이 엄청나 구입할 수 없어서 결국 로마자와 한글만 입력되는 컴퓨터를 이용했다." 사전 편찬팀은 페르시아어 각 단어의 발음과 어원표시는 로마글자로, 내용설명은 한글로 쳐서 입력한 다음, 페르시아어-영어사전을 복사해 페르시아어 단어와 숙어를 가위로 오려내어 그 밑에 붙이는 고되고 지루한 작업을 했다. 특수외국어사전 대부분이 이러한 고되고 지루한 여정의 산물이다.  

작업 자체가 이렇게 고되고 지루했지만, 또 하나의 큰 문제는 전문 연구자의 부재였다. 전문가가 부족하다보니 언어별 해당 학과의 거의 모든 교수와 외국인 교수, 심지어는 강사와 대학원생들까지 이 일에 매달려야 했다. 연구기간을 넘겨 이름이 바뀐 교육부에서는 연구 기간을 준수하라는 독촉이 빗발치기도 했다.

연구 기간을 연장해가며 우여곡절 끝에 원고가 완성됐으나 언어(문자)지원이 안 되니(글자가 없으니) 그 당시 제작 방식인 식자를 할 수가 없었다. 탁경구 한국외국어대 출판팀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문자를 만들고 제작처 직원들에게 기초적인 문자 교육을 시켜가며 모든 것을 하나하나 저자가 지휘하고 감독하고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야 컴퓨터를 통한 워드프로세서에서 세계 각국의 다국어를 지원하니까 컴퓨터로 입력하고 편집해 출판할 수 있지만 당시로서는 꿈같은 이야기였다. 1980~1990년대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1984년 드디어 『터키어-한국어사전』을 필두로 『페르시아어-한국어사전』, 『힌디어-한국어사전』, 『인도네시아어-한국어사전』 등이 잇달아 출판되기 시작해 현재 30여 종에 이르렀다.

한국외국어대의 특수외국어사전은 아직도 국내에서 유일무이한 상품이다. 수요가 많지 않으니 상업성이 있을 수 없으며 상업성이 없으니 그 누구도 이 분야에 달려들지 않는다. 사전 제작에 참여한 교수들은 한결같이 "열정이 만들어낸 결과다"라고 말한다. 일리 있는 말이다. 불행하게도 사전 편찬은 '승진심사'나 '연구업적'에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새한노사전』편찬에 참여했던 강덕수 교수(노어과)는 "사전을 만드는 일은 전에 없던 일을 하는 것이다. 모델이 없기 때문에 매우 힘들게 마련이다. 오랜 시간 교수들 개인의 열정으로 빚어진 것인데도, 연구업적으로 정당하게 인정받지 못했다. 지금 '사명감'만으로 사전을 만들라고 하면 아마 아무도 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네덜란드어-한국어사전』을 편찬한 김영중 교수(네덜란드어과) 역시 같은 말을 전한다. 특히 이 사전은 고립무원의 처지에서 김영중 교수 혼자 작업한 것이어서 그 절절함이 더하다. 김 교수는 영어를 통해 다양한 세계언어를 접할 수 있지만, 이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와 사회가 특수외국어 교육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지원을 확대했으면 좋겠다"라고 김 교수는 주문한다. 그 역시 승진, 연구업적 어디에도 '사전편찬'의 덕을 볼 수 없었다. 2007년부터 겨우 '논문 한 편'정도의 업적으로 인정해주는 게 지금 이 나라 대학 현실이다.

강덕수 교수는 사전편찬과 관련, 이를 한글 세계화라는 큰 틀에서 이해하고 정책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김영중 교수는 "우리가 만든 사전은 아날로그 시대의 산물이다. 지금 디지털시대로 전환했으니, 여기에 발맞춰 온라인 디지털 사전으로 가야 할 필요가 있다. 정부나 기업이 이러한 작업의 실제 수혜자 아닌가. 각별한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한다. 

산업화와 근대화, 보릿고개 넘는 일에 국가가 집중한 나머지 교육은 상당 부분 私學의 몫이 돼야 했던 '가난한' 대한민국이 아니다. 모든 학문의 공구서이자, 실생활의 투명한 소통 척도가 되는 사전, 한국외국어대가 이 사전 작업에 기여한 공로는 정당하게 평가돼야 한다.  최근에는 이 사전들이 외국인 100만 시대를 맞아 외국인 근로자를 포함한 이주여성 등 다문화사회와의 의사소통 및 공동체 구현에도 필수자료로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는 것도 고무적이다.

『인도네시아어-한국어사전』은 인도네시아의 제일 큰 그라메디아출판사로 저작권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조만간 인도네시아 현지에서도 출판 판매될 예정이다. 수년 사이 이른바 한류바람이 불면서 세계 곳곳에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수요가 늘고 있다. 물론 간단한 회화 몇 마디야 회화책 한 권이면 해결된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한국어를 좀더 깊이 있게 알고 배우고 싶은 외국인에게 사전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외국어대는 이들 사전을 보완해 대학 설립 60주년에 맞춰 e- dictionary(스마트폰 용), web-dictionary(포탈 용), 전자사전 등 다양한 형태로 출판할 계획이다.

아날로그 방식의 사전을 시대의 변화에 맞게 미래지향적으로 재편집하고 출간해 세계 어느 곳에 있는 누구라도 이를 쉽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한국외국어대의 다부진 포부를 두고 '21세기 사회적 유산'이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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