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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중국 더운 인도
추운 중국 더운 인도
  • 이옥순 연세대 국학연구원·인도근대사
  • 승인 2011.12.26 09: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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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 중국의 북경에 다녀왔습니다. 중국여행은 난생 처음이었지요. 틈만 나면 인도에 드나들며 부족한 견문을 보충하느라고 그동안 이웃나라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은“인도를 보는 것이, 흘낏이라도 한번 보는 것이 지구상의 모든 나라를 보는 것보다 낫다”라고 말했는데요, 오랫동안 인도를 공부해온 저도 그 입장을 지지하면서 여행의 이력을 다채롭게 만드는데 소홀한 측면이 있었거든요.

막상 중국에 들어가려니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가슴이 뛴다고 읊은 워즈워드와 비구름이 벌판 위로 밀려오면 가슴이 뛴다고 노래한 갈리브가 다 생각나더라고요. 위대한 역사와 문명을 대면 한다는 사실이 가슴을 묵직하게 눌렀습니다. 드넓은 중국의 한 귀퉁이만 엿보는 한정된 여정이지만, 제가 배워 조금 아는 인도와 여러 모로 비교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심장 박동수를 올렸지요.

브릭스의 구성원이자 친디아로 인도와 함께 언급되는 중국은 인도처럼 과거가 찬란합니다. 중국이 강대국이던 역사적 사실을 인지하는 많은 사람들도 인도의 과거엔 무지합니다만, 1600년의 인도는 세계 GDP의 22.5%를 차지해 근소한 차이로 중국의 뒤를 이어 2위를 기록한 만만치 않은 존재였습니다. 그 100년 뒤엔 인도가 중국을 밀어내고 1위에 올랐고요. 두 나라는 세계사의 주인공이었던 것이지요.

잘 나갔던 과거가 있는 인도와 중국은 밝은 미래도 공유합니다. 인도와 중국이 미국과 함께 세계 초강대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것이 벌써 오래 전입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계량화한 자료를 바탕으로 그러한 주장을 펼치는데요, 미국에서 활동하는 인도인학자 타룬 칸나가 중국과 인도의 교역량이 한 세대 안에 전 세계 교역량의 약 40퍼센트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한 것도 그중 하나입니다.

물론 제 관심은 중국이 미국과 인도를 제치고 조만간 초강대국이 될 것이냐가 아닙니다. 강성한 국가가 그 구성원의 평안과 행복을 담보하진 않거든요. 근대 서구와 그 뒤를 따라간 일본의 행적은 타자의 이용과 희생이 바탕인 강대국과 그를 향한 비극적 노정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왜 강대국이 돼야하나요?”저는 일부 인도인의 이런 우문에 가까운 질문에 동조하지요.

제가 중국에서 주목한 건 보통사람의 표정과 전반적인 사회분위기였습니다. 늦가을의 북경은 쓸쓸해보였는데요, 색으로 치면 회색이었습니다. 인구에 비해 통행량이 많지 않은 단정한 거리와 아름답지만 위압적인 유적을 가득히 품은 북경의 공기는 따뜻함이 부족하더군요. 개인적이며 여성적 성향의 인도를 오래 경험한 저는 역사를 창조하려는 힘과 의지, 공동체적이며 남성적인 기류를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되는 것이 없지만 안 되는 것도 없는 인도가 생각났지요. 원색으로 점철된 혼란에 가까운 뜨거운 거리풍경도 떠올랐고요. 인도는 중국과 달리‘남성’의 진리, 곧 강한 국가를 추동하는 역사가 부재한 땅입니다. 역사는 광대한 우주에서 잠시 머물렀던 왕과 전쟁의 기록이자 뺏기고 다시 뺏어 세운 도시의 역사라는 비판이 제기되지요. 그래서 위로부터 집합적 자아를 부과하는 움직임은 곧잘 역풍을 수반했습니다. 국가는 힘이 없습니다.

중국과 인도의 인구가 그 차이를 잘 보여줍니다. 올해 비슷한 시기에 나온 중국과 인도의 인구는 각각 13억 4천만 명과 12억 1천만 명으로 인구를 억제하는데 성공한 중국과 달리 인도는 중국의 3배에 가까운 인구증가율을 보이며 세계 1위의 인구대국을 향해 빠르게 이동하고 있습니다. 이는 영웅과 강한 왕조를 기억하는 역사보다 보통사람의 신화와 전설이 힘을 가지는 전통과 무관치않은데요, 즉 국가가 개인의 삶에 개입하지 못해 나온 결과입니다.

세계 질서가 자국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은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중국의 문화적 친족인 우리나라도 역사와 진보를 신뢰하고 일등 국가를 지향하면서 강자의 논리와 남성적 성향을 드러냅니다. 강한 이웃이 좋은 이웃이 아니라는 걸 역사에서 배웁니다만, 많은 이들이 자기중심적 중국에게 미래를 걸고 민주적 인도를 무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지요. 그러나 힘을 칭송하고 직선적 진보를 자연의 법칙으로 간주하던 관점은 한계를 노출했습니다. 말하자면, 가속과 직진이 미덕인 고속도로보다 우회가 가능한 국도의 중요성을 되짚을 때가 온 거죠.

인도를 주목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인도가 중국보다 강대국이 될 가능성과 잠재력이 커서가 아니라 강대국이 될 수 있으나 왜 그래야하는지, 누구를 위해 그러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문명이기 때문입니다. 단단한 나무는 부러지기 십상이니까요.

 

이옥순 연세대 국학연구원·인도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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