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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근대의 종언
책과 근대의 종언
  • 이영석 서평위원/광주대ㆍ서양사
  • 승인 2011.12.19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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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기타무스

사극 ‘뿌리 깊은 나무’가 시청자를 사로잡고 있다. 탄탄한 구성과 배역을 맡은 탤런트들의 농익은 연기가 인기를 끄는 주된 이유라고들 한다. 드라마를 관통하는 주제, 즉 백성들이 배우기 쉬운 글자를 만들겠다는 세종의 집념과 이를 막으려는 사대부세력의 암투를 아주 설득력 있게 그린 것도 인기를 끄는 또 다른 이유가 될 것이다.

백성이 글자를 알게 되면 그 후에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드라마에서 세종은 그런 문제는 후대의 백성 스스로 책임질 일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그들에게 다행일 수도, 또는 불행일 수도 있겠지만, 세종은 지식의 유포와 더불어 전개될 사회 자체의 역동성에 모든 것을 맡기겠다는 속마음을 드러낸다. 물론 이는 작가의 역사해석일 뿐이다. 나는 세종의 의도를 이런 식으로 단정 짓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드라마의 세종이 기대했던 것과 달리, 훈민정음 반포 후에 백성이 글자로 의사소통하고 새로운 지식을 널리 받아들여 마침내 사회가 변화를 향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는 증거는 나타나지 않는다. 수 세기 동안 조선왕조는 드라마의 세종이 원했던 그런 역동적인 사회로 이행하지 않고 여전히 정체된 사회로 남아 있었다. 조선에서 ‘근대’는 아직도 태동하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까닭은, 근대란 무엇보다도 책의 시대와 동의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근대적(modern)’이라는 말이 영어권에서 처음 나타난 것은 1580년대였다. 라틴어 ‘modernus’에서 비롯된 그 말은 원래 ‘오늘날’ 또는 ‘현재’라는 뜻으로 사용됐다. 세익스피어는 가끔 ‘널리 퍼진’이라는 뜻으로 쓰기도 했다. 그러다가 점차 의미가 변해 ‘새로운’이라는 뜻을 갖게 됐다. 이 무렵에 새로운 시대, 새로운 사회, 새로운 역사 같은 용례가 등장한다.

이와 함께, 지금 이 시대가 새롭다는 당대인들의 인식은 점차 이전 시대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그리스ㆍ로마 시대를 황금시대로 간주하는, 이른바 고대ㆍ중세ㆍ근대라는 시대구분을 낳았다. 이 같은 역사인식에서 근대는 끝을 예감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 언제까지나 계속돼야 할 시대였다. 사람들이 근대의 끝을 감지하고 언급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말 이후의 일이다.

유럽사에서 서적인쇄술은 근대가 시작되던 무렵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인쇄술과 책이야말로 근대가 이룩한 무수한 성취의 원인이자 결과물이이라고 할 수 있다. 활판인쇄술의 발명과 서적 보급은 유럽사회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18세기에 접어들면서 글을 읽을 줄 아는 다수의 남녀가 독자층을 형성했다. 지식의 유포와 더불어 사회가 역동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몽테스키외가 유럽만이 문명을 가지고 있으며 유럽이 곧 문명이라고 자부한 것도 이런 분위기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19세기에 이르면 신문과 잡지를 비롯한 새로운 형태의 인쇄물이 쏟아져 나와 식자층을 넘어 일반 대중에게까지 널리 보급됐다. 제도교육의 확대, 문자해독율의 전반적인 상승과 함께 급속하게 증가한 잠재적인 독자층을 이들 새로운 인쇄물이 끌어들인 것이다.

근대의 원인이자 결과물인 그 책의 시대가 바야흐로 저물고 있다. 이미 디지털혁명 이전에 책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징후는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 인쇄물이 증가하면서 불가피하게 그 질이 떨어졌고 책 자체가 다른 매체의 영향을 받게 됐다. 신문, 잡지, 서적에서 이전보타 훨씬 더 자주 그림이 재생산되고, 영화와 텔레비전의 등장 이후 영상언어가 문자언어보다 더 커다란 위력을 발휘하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의 상상력을 지배하는 것은 문자가 아니라 회화적 이미지와 영상이다.

오늘날 영상언어의 승리는 거의 결정적인 것처럼 보인다. 영상언어와 이미지의 영향을 받아 사람들은 머리를 싸매고 정신을 집중하는 형태의 독서를 멀리한다. 아니, 진저리를 치는 것 같다. 영상언어로 표현되는 정보와 지식은 찰나적으로 그저 스쳐지나가는 방식으로만 제공된다. 그런 언어는 기를 쓰고 기억할 필요가 없다. 어디서나 편리한 정보통신 장치로 재현하고 불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읽기와 쓰기에 할애하는 나는 분명 근대인의 외투를 벗어던지지 못했다. 읽기와 쓰기에 익숙할 뿐 다른 자극이나 다른 매체의 위력을 맛보는 모험을 즐기지도 않는다. 어쩌면 나와 같은 부류는 한 세대 후에 화석으로 변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이 부류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고집과 완고한 태도를 우려의 눈길로 바라볼 필요도 없다. 그들의 강력한 성채였던 대학에서도 점차 소수자로 밀려나고 있으니 말이다.

이영석 서평위원/광주대ㆍ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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