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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권 15억 주고 사겠다” 유혹도…신분․시스템 모두 바꾼 번역의 힘
“판권 15억 주고 사겠다” 유혹도…신분․시스템 모두 바꾼 번역의 힘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1.12.07 12: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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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유산, 한국의 미래다(3) 전주대 國譯『與地圖書』

 

대학의 유산, 한국의 미래다 세 번째는 전주대 國譯『與地圖書』다. 2002년부터 번역을 시작한 이래 8년만에 원고지 6만 매, 50권 세트로 전주에서 출간했다. 조선시대 향토 지리서인 이 전집은 조선후기 생활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디지털시대 다양한 콘텐츠화의 가능성도 열었다.
2002년 5월에 학진에서 공모한 ‘기초학문육성 인문사회분야’의 ‘국학고전’부문에 변 교수팀은 ‘여지도서 번역 및 색인’ 과제(연구책임자: 변주승 전주대 언어문화학부 역사문화콘텐츠전공 교수)로 응모해, 다단계 심사를 거쳐 지원 과제로 최종 선정됐다. 번역 연구팀은 2003년 9월 1차년도 연구 성과를 심사한 학진으로부터 최우수연구과제로 선정돼, 인센티브를 지원받기도 했다.

 

2004년 7월에 사업 기간이 종료된 뒤, 연구팀은 결과보고서를 제출해 출판 적격 판정을 받았고, 이후 연구팀은 번역 원고의 교정·교열 작업을 계속해 왔다. 2007년 12월에 학진에서 『여지도서』 출판비용으로 3억 3천만원을 보조해 출판 통로를 열 수 있었다. 이어 2008년 6월 전주대는 공개 입찰을 통해 전주에 있는 디자인흐름 출판사(사장 한명수)를 사업자로 선정했다.

 

『여지도서』번역 완간의 구심점에 서 있는 변주승 전주대 교수(역사학, 50세). 한국연구재단, 전주대, 그리고 한국고전번역원의 지원 속에서 고전번역의 한 가능성을 제시했다.
『여지도서』 번역 연구팀에는 연구책임자 변주승 교수를 중심으로 김우철(한중대), 이철성(건양대), 서종태(전남대), 문용식(순천향대) 등 4명의 공동연구원과, 김진소(천주교호남교회사연구소장), 이상식(한국고전문화연구원) 등 전임연구원 2명, 전주대 역사문화콘텐츠 학과와 대학원의 연구보조원 그리고 자문위원 및 평가위원 등 약 20명의 인원이 참여했다.

 

漢學 전공자가 아닌 까닭에 이들 번역 연구팀은 개별 번역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번역 수준의 질적 제고를 위해 동분서주했다. 매달 어김없이 3박 4일씩 번역 세미나를 개최했다. 장소는 전북 완주의 깊은 산 속에 위치한 한국고전문화연구원이었다. - <교수신문> 525호, 2009.6.29.

조선시대 향토지리지 『여지도서』는 200자 원고지 6만 매, 50권으로 2009년 6월 우리에게 다가왔다. 당시 연구책임을 맡았던 변주승 교수는 “완역본 출간은 조선후기 사회 전반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고, 지역사·향토사 연구 기반을 한 단계 진전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의미를 매겼다. 그는 또 “역사학은 물론이고 국문학 등 인접 학문, 향토사 연구와 문화 관광사업, 청소년 교육 등에 미칠 효과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라고 기대감을 표시했었다. 시대의 변화 탓일까. 이 때문에 곳곳에서 디지털화 작업을 맡겠다고 연락이 쇄도했다. 『여지도서』에 내장된 무궁무진한 콘텐츠들이 '디지털 콘텐츠'로서 손색없다는 방증이다. 판권, 전송권 등을 15억에 달라는 곳도 나타났지만, 변 교수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24세 대학원생과 한문 공부의 깊이

다시 만난 변 교수는 『여지도서』출간 후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고 말한다. 번역에 참여했던 연구자들 모두가 놀라워할 정도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변 교수가 꼽은 제일 큰 변화는, 팀 단위 번역 연구가 제도화됐다는 것. 24세의 대학원 석사과정생 박민희씨를 비롯, 전국 곳곳에서 뜻을 품은 학문후속세대들이 번역팀을 노크했다. 고려대를 졸업한 학생들이 이곳 대학원에 진학해 번역 작업에 합류하기도 했다. "24세 대학원생이 한문 공부에 새롭게 눈떠가고 있다. 이들이 훗날 어떤 번역을 내놓을지 기대된다"라고 변 교수는 말한다. 고전번역과 공부가 함께 가는 것이 인상적이다.

시스템상의 변화는 학부·석사·박사 과정을 연계하는 효율적인 체제에서도 나타났다. 전주대 역사문화콘텐츠 전공은 학부, 석사, 박사 과정을 연계해 고전국역 전문 과정을 개설했다. 현재 석사 박사 과정에 20여명의 젊은 연구자들이 국학 분야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여지도서』, 『추안급국안』 번역 과정에 연구보조원으로 참여, 그 경험으로 바탕으로 전문연구자의 길에 들어선 학생들이란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런 변화를 이끈 또 하나의 힘은 전주대측이 마련해준 '한국고전학연구소'다. 이 연구소는 2010년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주관하는 협동번역 사업에 응모, '호남권 고전번역거점연구소'로 선정됐다. 한국고전학연구소는 향후 30년 동안 100억 원 규모의 예산을 지원받아 호남과 제주지역의 문집을 번역 출판하게 된다.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번역 작업을 강조했던 변 교수의 숙원이 이뤄진 것이다.

 

 

두 번째 변화는 작업에 참여한 연구자들의 신분 변화다. 실제 과제를 진행할 때만 해도 '시간강사' 신분이었던 변 교수부터 시간강사-겸임교수-연구교수-전임교수로 자리 잡았다. "교수직에 한 번도 지원한 적이 없다. 고전번역 사업에 열중했더니 어느 날 전임이 돼 있더라"라고 변 교수는 말한다. 이러한 사정은, 외부에 적을 뒀던 전문 연구자들도 전주대로 옮겨오게 만들었다. 서종태 교수는 정년 보장된, 잘나가는 호남교회사연구소 실장이었다. 그는 번역팀의 공부모임에 두 번 참여한 뒤, 사표를 내고 전주로 짐을 싸서 들어온 인물. 2005년 3월에 합류했다. 2007년 8월 여지도서 과제가 끝난 뒤, "공부하는 모습이 좋아서" 무작정 합류했던 서종태 교수는 몇 년을 경제적으로 쪼들려야 했다. 그는 2010년 9월 1일부로 전임강사로 임용됐다. 오항녕 교수는 충북대에 적을 두고 있다 전주대 번역팀에 합류한 케이스다.

이주형 특별연구원의 사례도 기억할 만하다. 그는 당시 석사를 마친 학문후속세대였다. 연구비 한 푼 없었던 변 교수는 그에게 두 가지를 약속했다. "고전번역 작업에 합류한다면, 한문 공부가 늘 것이다, 장차 번역 사업의 주축으로 진입할 능력을 기를 수 있다" 라고. 그렇게 해서 이 연구원은 1년 6개월을 지원금 한 푼 없이 원고 교정 확인 작업에 매달렸다. 지금 그는 호남권 고전번역거점연구소인 한국고전학연구소의 '특별연구원' 신분이다.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논문만 남아 있다.

호남권 거점고전번역연구소의 출현과 전망

세 번째 변화는 나라 밖에서 『여지도서』에 관심을 보임에 따라 자긍심이 더 깊어졌다는 것이다. 출간후 곳곳에서 연락이 왔다. 특히 미국 쪽에서는 국회도서관에서 2질을 구입해 갔다. 스탠퍼드대, 프린스턴대, 워싱턴대, 컬럼비아대, 캘리포니아대,  버클리대, 호주 국립대학 도서관, 캐나다 토론토대, 독일 괴팅겐대, 중국 베이징대, 일본 도쿄대 등에서 『여지도서』를 구입해 갔다.

『여지도서』국역 작업이 끝나고 책으로 나온 뒤, 번역 작업에 합류했던 이들의 운명은 달라졌다. 한문 공부의 깊이가 심화된 것은 물론, 개인적 신분 변화, 무엇보다 고전국역이라는 과제가, 민족문화유산을 현대화하는, 가장 민족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괴테의 말을 입증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다양하고 풍부한 전통사회의 콘텐츠들이 현대적 언어로 새단장하면서 얼굴을 내미는 가운데, 유실되고 있는 한학 연구자 층이 두터워지고, 새로운 역사 콘텐츠를 확보함으로써 오늘과 내일을 잇는 접점을 새롭게 모색해냈다는 점에서 『여지도서』 번역은 하나의 시금석으로 남을 것이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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