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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를 건너
'황해'를 건너
  • 이상용 영화평론가
  • 승인 2011.11.14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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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용 영화평론가
직배사의 등장과 함께 할리우드의 새로운 영화가 국내 극장가에 발빠르게 소개된 것은 오래 된 일이지만 올해 제작된 한국영화가 아시아를 넘어 유럽이나 미국에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얼마 전 만났던‘최종병기 활’의 김한민 감독은 미국에서 개봉한 자신의 영화에 대한 반응을 들려주었고, 해외세일즈를 하는 한 한국인을 통해서도 이 영화에 대한 관심사를 확인할 수가 있었다.

몇 년 전까지 유럽에 소개되는 한국영화들은 작가주의 영화라고 부를 수 있는 예술가의 영화였다. 이창동 감독의‘시’가 프랑스에서 개봉을 했고, 홍상수의 영화 역시 소규모로 개봉하는 단골손님이었다. 김기덕의 과거 작품들은 오히려 뜨거운 편이었고,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은 미국 내에서도 성공적으로 소개된 한국영화로 손꼽힌다. 이제 패러다임이 서서히 바뀌고 있다.

영국에서 개봉된 나홍진 감독의‘황해’는 대표적인 타임지는 물론이고, 영국의 대표적 언론인 가디언지에 소개되면서 이들의 관심사를 엿보게 한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 중의 하나가 올해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소개된 후 칸 마켓을 통해 계약이 성사된‘황해’가 국내 극장에서 본 버전과 동일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개봉당시‘황해’는 늘어지는 후반부와 과도한 추격 장면이 지적되었고, 여성의 묘사에 대해서도 비판의 견해가 있었다. 필자가 칸에서 본것 은 이러한 문제를 상당부분 해소한 새로운 편집본이었다. 후반부의 축약을 통해 주인공의 심리에 더 충실해진 연변 조선인의 활극은 가디언지의 지적처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는 구별이 되는 사회적 의미도 담고 있으며, 역동적인 대결 장면을 만들어 낼 줄도 아는 아시아의 블록버스터 영화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산업적인 차원으로 본다면 백억 이상의 자본이 투여되는 한국의 블록버스터는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제작비에 다다르지 못한다. 그러나 다뤄지는 이야기의 규모나 스케일 면에 있어서는 할리우드가 자본과 기술력을 통해 선사하는 특수효과의 화려함을 제외하면 관객들을 압도하는 것이 있다. 여기서 압도하는 힘이란‘영화적 스펙터클’이라고 부를 수 있는 에너지 넘치는 장면의 힘으로 귀결될 수 있을 것이다.

나홍진 감독은 이미‘추격자’를 영국에서 선보인 바 있다. 영국인들에게 나홍진은 아주 낯선 아시아의 감독이 아니다. 문화의 교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번째가 아니라 두 번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약간의 낯섬과 친숙함 속에서 본격적으로 만나는 장을 마련한다. 두 영화 모두 하정우와 김윤석이라는 동일한 주연배우를 기용했으며, 이들의 쫓고 쫓기는 대결 구도를 기본으로 한 다는 점에서‘황해’는 이미 친숙해진 보여주기를 제공하고 있다.‘추격자’가 연쇄살인마와 그를 쫓는 전직 경찰의 구도였다면, ‘황해’는 살인을 해야 하는 남자와 살인을 청부한 남자의 대결을 다루고 있다. 미묘한 이야기의 변주 속에서 국가의 공권력으로 대변되는 경찰은 무능력하기 마련이고, 밀거래와 남성적인 힘이 넘치는 밤의 세계가 무대를 이룬다.

영국인들에게‘황해’의 개봉은 첫 번째 영화로 특별한 인상을 남긴 감독의 좀 더 거대해진 상업버전이자 한국의 로컬리티가 잔뜩 배인 남성적 이야기를 경험할 수 있는 이국성을 제공한다. 오늘날 할리우드 영화가 만들어 내는 이국성이란 지구의 종말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이거나 아바타와 같은 풍경이 아니라면 더 이상 매력을 제공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아시아의 블록버스터는 지독한 현실적이면서도 낯선 풍경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것은 아시아 영화가 서구인들의 눈을 사로잡은 이유 중 대표적인 것이었다. 홍콩의 비평가 레이초우가 쓴‘원시적 열정’은 중국 5세대 영화가 붉은 색을 통해 자국의 민중성을 대변하는 동시에 서구인들에게 성적 판타지를 불러일으킨 이중성을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이중성이라는 테제는 좀 지겹기는 하지만 여전히 아시아의 영화가 서구인들의 눈을 사로잡는 이유를 보여준다. ‘황해’는 지로컬리티의 지독한 현실을 담고 있으면서도 그만큼 환상적인 핏빛의 향연을 보여준다. 앞서 나홍진의‘황해’가 두 번째로 소개되는 영화임을 강조했다. 여기서 두 번째는 다른 맥락으로도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에 한국영화가 여러 페스티벌이나 지엽적으로 소개돼 온 것은 주로 작가(예술)영화를 통해서였지만 홍상수, 이창동, 김기덕이라는 기반 위에 두 번째의 한국영화 경험이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가디언의 표현처럼 아시아의 블록버스터라는 이름으로 과거와는 달라진 위상학 속에서 읽어가는 문화의 전개 과정이다. 이처럼 빠르게 유입되는 과정은 한국영화의 산업적인 위축과는 달리 글로벌한 관점에서는 새로운 위치를 부여받는다. 그들이‘황해’에 주목한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할리우드 자본의 투자였다. 현재 박찬욱, 김지운 감독은 할리우드의 이름 있는 제작사를 통해 영화 촬영 중이다. 아마, 내년 후반쯤 펼쳐질 이들의 결과물이 한국영화에 대한 또 다른 시선을 가져올 것이다. 예술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산업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이상용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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