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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_ 커리어 우먼과 출산 문제
원로칼럼_ 커리어 우먼과 출산 문제
  • 강인숙 건국대 명예교수ㆍ국문학
  • 승인 2011.10.10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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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숙 건국대 명예교수·국문학
집안에 법을 전공한 딸아이가 있다. 성적이 늘 톱 5% 안에 드는 재원이다. 그녀는 미국에 가서 영문학 석사를 끝낸 후 아이를 낳고, 아이가 세살 때 로스쿨에 들어갔다. 그녀가 사는 법대 기숙사에는 아이를 가진 사람이 없었다. 법대는 아이를 기르면서 다닐 수 있는 한가한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그 학교에는 부속 유아원이 있었다. 재학생은 주 1회 설거지를 해주면 학비가 면제되니 경제적 부담은 없었다. 문제는 공부할 시간이다. 보통 때는 괜찮은데 시험기간이 되면 그녀는 아이 아빠가 귀가할 때까지 공부를 할 수가 없다. 참고 서적이 있는 도서관에 가야 하는데, 남편이 귀가하는 시간이면 도서관 자리가 차 버린다. 할 수 없이 먼 곳에 있는 다른 대학으로 원정을 가야 한다. 그녀는 기숙사가 있는 도심에서, 밤중에 버스를 타고 버클리대까지 원정을 가곤했다. 거기서 밤을 새우고 새벽에 귀가하는 일을 되풀이 하면서 학교에 다녔다.

그렇게 학교를 마치고, 변호사가 됐다. 성적이 상위권이니까 곧 큰 로펌에 취직이 됐다. 봉급이 많아서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생활에 여유가 생겼다. 그런데 큰 로펌의 신임 변호사에게는 정해진 퇴근시간이 없다. 밤 11시까지 일이 밀려 있는 때가 많다. 아이는 저녁 5시면 유치원에서 데려와야 하니까 8시까지 봐주는 시설에 다시 데려다 줘야 한다. 8시에도 일이 끝나지 않는다. 다시 가서 아이를 데리고 사무실로 온다. 소파에 아이를 재우고 일을 끝마친다. 그리고 다섯 살짜리 튼실한 사내아이를 안고 주차장까지 걸어간다. 초인적인 힘이 필요한 사항이다.

결국 얼마 못가서 그녀는 아이 때문에 변호사를 그만두고 검사직에 도전했다. 순전히 퇴근시간 때문이다. 검사는 공직자니까 5시면 퇴근이 가능하다. 그 대신 수입이 많이 적어진다. 그런 희생을 치러도 아이가 아프면 또 문제가 생긴다. 한번은 아이가 유치원에서 팔을 다쳐 깁스를 한 일이 있다. 선생님은 당분간 그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다친 부위를 다시 다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 ‘당분간’은 두 주일이다. 휴직을 할 수도 없으니 베이비시터를 구해야 한다. 그 비용은 검사의 수입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액수다. 커서 학교에 가게 되면 또 방학이 문제가 된다.

한국에서도 문제는 비슷하다. 한국은 유아교육 자체에 비용이 많이 들고, 믿을 수 있는 시설이 많지 않으니 한국의 대학원생이나 대학 강사들의 육아문제는 더 심각하다. 파출부 일당이 7만원인데 강사료는 그 절반도 되지 않는 곳이 많다. 천상 염치불고하고 양가의 부모에게 기대야 하는데, 늙은 어머니들은 손자 봐주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건 24시간 근무를 요구하는 무보수의 고된 노동이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되는 연령이 예전보다 높아서 우선 체력이 떨어진다. 손자를 안아주다가 팔에 디스크가 생긴 분도 있고, 뇌졸중으로 입이 삐뚤어지는 할머니도 봤다.

작년에 지방대학에 겨우 자리 잡았던 제자가 사표를 내는 것을 본 일이 있다. 아이가 고3이 됐기 때문이다. 여자가 대학교수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다 큰 아이 치다꺼리를 위해 사표를 내는 것은 안 될 일이지만, 나는 말리지 못했다. 큰 여자 아이가 과외 때문에 자정 무렵까지 나다니려면, 어머니는 야간까지 책임지는 운전수가 돼야 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유치원 아이까지 영어 과외를 하는 세상에서,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엄마들은 아이에게 전력투구를 해야 하니 사실상 직장을 가질 수 없는 여건이다. 더구나 고3이지 않은가. 말을 못하고 참고 있으려니 울화가 치밀었다.

그렇다면 여자의 대학교육이 왜 필요한가. 그렇게 어머니를 희생시키며 공부를 해서 대학에 들어갔는데…. 여자이기 때문에 교수님들의 도움도 못 받으며 정말 힘들게 대학교수가 됐는데…. 과외 치다꺼리를 위해 사직한다면 여자들은 왜 전문교육을 받아야 하는가.

미국은 우리보다 더 심하다. 대중교통 수단이 미비한 로스앤젤레스 같은 데서 아이가 셋 있는 엄마는 정말 운전대를 놓을 겨를이 없다. 그래서 직장을 그만둬야 한다면, 그녀의 딸들은 무엇을 위해 과외활동을 그렇게 열심히 해야 하는가.

할머니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세 아이를 기르면서 직장생활을 한 나는, 그 생활이 너무 버거웠기 때문에 다음 세대 커리어 우먼에게 차마 아이를 많이 낳으라고 권할 수가 없다. 아이가 셋이 되면 하늘 옷이 있어도 하늘에 올라갈 생각을 할 수 없다는 선녀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다행히도 미국에는 요즘 유태인들이 돌보는 완벽에 가까운 유아시설이 생겨나서 다음 세대가 일하면서 아이를 기를 계획을 세우는 것을 봤다. 그런 시설은 비용이 엄청나니까 여럿을 기르는 것은 어렵겠지만, 하나라도 기르면서 일하려면 그렇게 믿을만한 육아시설이 필요하다. 그 비용의 일부를 정부나 직장에서 보조해 준다면, 출산율도 늘어날 것이 아니겠는가.

 

강인숙 건국대 명예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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