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8:25 (금)
월드컵, 지방선거
월드컵, 지방선거
  • 신광영 중앙대·편집기획위원
  • 승인 2002.06.1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딸깍발이

신광영`/`중앙대·편집기획위원

지방선거가 끝났다. 전체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선거에 참여하지 않아서, 2002년 6·13 지방선거는 역대 최저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지방자치제도의 풀뿌리가 거의 뽑혀진 것이다.

월드컵 경기가 시작되면서 전국을 휘몰아쳤던 응원열기를 보면서 혹자는 한국인의 새로운 가능성, 공동체 정신을 들먹였다.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이후 최대의 인파가 거리로 쏟아져 나와 하나가 되어 한국팀을 응원하는 모습을 보고, 한국인도 놀라워했고, 외국인들로 놀라워했다.

그런데 한국 축구 대표팀이 경기를 하던 날 보여주었던 한국인의 열기는 완전히 사라지고 철저하게 무관심 속에서 지방자치 선거가 치러졌다. 놀랍게도 이러한 무관심을 보면서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축구는 사람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축구경기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승부욕을 자극시켜 보는 사람을 흥분시킨다. 선거도 마찬가지로 승부욕을 자극시켜 사람들을 흥분시킬 수 있다. 과거 수십만 명이 모이는 유세장의 풍경은 이러한 흥분과 열정을 잘 보여주었다.

그런데 점차 정치는 규칙도 없고 심판도 없는 진흙탕 싸움으로 변했고, 믿을 수 없는 정치인들로 인하여 선거가 재미없는 경기가 돼 버렸다. 선거 경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선거라는 경기를 관전하고자 하지도 않는다. 그 결과 유권자와 정치의 괴리 현상이 더욱 심각하게 이번 선거에서 나타났다.

문제는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치권과 선거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많은 유권자들 사이에서 악순환의 관계가 형성됐다는 점이다. 제 기능을 상실한 정치권에 대한 불신으로 유권자들이 투표에 참여하지 않게 되면서, 정치권은 더욱 무능한 정치인들에 의해서 지배되는 결과가 형성됐다. 무능하고 부도덕한 정치인들의 행태는 더욱 더 유권자들의 정치 혐오증과 정치적 무관심을 부채질한다. 심지어 이제는 투표율이 더 낮아지기를 원하는 정당이나 정치인들까지 생겨날 정도가 됐다.

월드컵은 6월말이면 다 끝나지만, 지방선거 결과는 앞으로 4년 동안 한국사회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일시적으로 대리 만족을 시켜주는 축구경기의 승리를 바라는 열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 사회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와 정치적으로 선진국이 되기를 바라는 관심이다. 무관심의 정치를 벗어나 축구와 같이 열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정치는 언제나 이루어질 수 있을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