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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 현장에서 우리말이 사라지면 … 영어보다 열등한 한국어
학문 현장에서 우리말이 사라지면 … 영어보다 열등한 한국어
  • 교수신문
  • 승인 2011.09.06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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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 『우리말로 학문하기의 날개짓』 출간

네 번째 문집 『우리말로 학문하기의 날개짓』(2011, 채륜)을 발간했다. 우학모가 지난 한 해 동안 벌여온 ‘말 나눔 잔치’에서 발표했던 글들을 엮은 책이다. 그동안 우학모는 『우리말로 학문하기의 사무침』(2008. 푸른역사), 『우리말로 학문하기의 고마움』(2009, 채륜), 『우리말로 학문하기의 용틀임』(2010, 채륜) 등을 펴냈다. 우학모의 네 번째 책 『우리말로 학문하기의 날개짓』은 한국말이 처한 현재의 위기와 과거의 풍요로움, 그리고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여러 생각을 한 데 모았다.

우학모의 회장을 맡고 있는 최봉영 한국항공대 교수(한국학)은 여는 글에서 한국말이 이 세상과 생각을 빚어내는 오묘한 방식을 알기 쉽게 갈무리한다. 다섯 학자의 글을 담고있는 첫째 벼리는 한국말이 처한 위기를 알린다. 유재원 한국외국어대 교수(언어학)는 한국말글이 학문의 자리에서 추방당하고 있는 현실을 꼬집었다. 김정수 한양대 교수(국어학)는 훈민정음이 갖추고 있는 조직적인 생성과 무한한 변형, 초정밀한 표현 능력을 되살릴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성낙수 한국교원대 교수(국어학)는 학교 문법에서 사용되는 품사 이름이 결정되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밝히며, 올바른 문법 역사에 대한 학문적 접근을 요구한다.

이 가운데 특히 학문의 현장에서 모국어가 사라진 현실을 지적한 유재원 교수의 주목할 만하다. 유 교수의 글 「한국어가 아무 소리 없이 학문어의 자리에서 사라져가고 있다」를 요약해 소개한다.

 

국어가 학문어로서의 위치를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조선일보가 지난해부터 영국의 대학 평가 회사인 QS(Quacquarelli Symonds)와 공동으로 실시하는 “아시아 대학 평가”에는 한국어 논문에 대한 점수가 아예 고려의 대상에서 빠져 있다.

조선일보의 대학평가 기준은 △연구능력(60%) △교육수준(20%) △졸업생 평판도(10%) △국제화(10%) 등 4개 분야를 점수화 해 순위를 매긴다. 연구 능력과 국제화가 모두 영어로 논문을 쓰는 것을 전제로 평가되기 때문에, 이 기준을 따르면 한국어로 쓴 논문은 모두‘0’점으로 처리된다.

이런 평가 기준에 대한 각 대학의 반응은 상당히 우려할 만하다. 예를 들어 A대학은 SCI나 SSCI, A&HCI 1편 당 현재 1억을 지급하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으며, B대는 국제 저명 학술지 논문 1편당 600점을 부여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한국 대학교수들이 한국어로 논문을 쓰기를 바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앞으로 10년만 이런 일이 계속된다면 우리말 한국어는 이 땅에서 학문어로서의 지위를 영원히 잃고 저급한 2류 언어로 전락할 것이 뻔하다. 이런 대학 개혁이 성공할 경우, 우리나라의 학문 수준은 영국의 식민지 지배를 받던 인도, 필리핀과 같은 나라의 위치로 전락할 것이다. 이들 나라의 지식인을 비롯한 지배 계층은 자신들의 모국어로는 학문도 철학도 할 수 없어 영어로 모든 고급문화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비극적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한국의 최대 지성이자 사회의 지도 계층인 대학교수들을 비롯한 한국 학자들이 더 이상 한국어로 논문을 쓰지 않을 때, 한국어의 미래는 절망적이다. 학문과 문학을 창조하지 못하는 언어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또 모든 고급문화 생활이 영어로 이뤄지게 되면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문맹’에 빠진다. 오늘날과 같은 한국어 천대 현상이 계속 되는 한 ‘영어를 하는 한국인’과 ‘영어를 못하는 한국인’으로 나뉘어 차별을 받게 될 날도 멀지 않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하지 않는다면 이런 일은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이뤄질 것이다. 아무도 나서서 저항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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