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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서양 논리로 한국말을 할까
우리는 왜 서양 논리로 한국말을 할까
  • 최봉영
  • 승인 2024.03.06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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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한다_『한국말 말차림법』 최봉영 지음 | 묻따풀학당 | 256쪽

‘참과 거짓’과 ‘맞음과 틀림’은 달라
한국말 논리의 차림새 묻고 따져야

나는 2000년에 『주체와 욕망』이라는 책을 내고 나서 내가 한국말의 바탕에 어둡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이십 년 가까이 한국말의 바탕을 묻고 따져서 2019년 8월에 한국말 말차림법을 완성했다. 4년 동안 고치고 다듬는 과정을 거쳐서 지난해 10월 『한국말 말차림법』을 출간했다. 나는 한국말을 씨말·마디말·매듭말·포기말로 체계를 세워서 완전히 새로운 문법을 선보이게 됐다. 

나는 한국말 말차림법을 왜 새로 만들게 되었는가? 사람들이 한국말을 잘 배울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이다. 사람들이 한국말을 잘 배울 수 있어야 생각하는 일을 깊고 넓게 펼쳐갈 수 있다. 그런데 이제까지 사람들이 학교에서 배운 한국말 문법은 한국말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는 얼치기 수준에 머물러 있다. 사람들이 한국말 문법을 열심히 배우더라도 생각을 깊고 넓게 펼쳐가는 일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런 문법을 100년이 넘도록 받들어 왔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에 이르는 12년 동안에 학생들이 배우는 과목 가운데 가장 많은 시간이 주어진 것은 국어 교과이다. 그런데 학생들이 국어 시간에 한국말 문법을 배우는 시간은 매우 적다. 그리고 학생들은 한국말 문법을 배우더라도 무엇을 어떻게 배웠는지 잘 알 수 없게 돼 있다. 한국말 문법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바탕이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니 국어 교사들도 힘을 내지 않고, 수능시험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이에 더해 학생들은 한국말 문법과 영국말 문법이 어떤 점에서 같고 다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한국말 문법을 배우더라도, 영국말 문법에 눌려서 한국말 문법이 영국말 문법으로 뒤바뀌는 일이 일어난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이면 한국말 문법에 대한 이야기는 머릿속에서 까마득한 옛일처럼 되고 만다.  

한국사람은 사람들이 머릿속에 갖고 있는 한국말의 차림새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무엇에 대해서 생각할 때, 그것을 한국말의 논리에 맞게 차려내는 일을 잘 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무엇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한국말의 논리가 이리저리 뒤엉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니 말하기나 글쓰기에 관심을 가진 이들은 서양사람이 서양말의 논리에 맞추어서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방법을 빌려서 토론·논술·논리·철학 교육 따위를 말한다. 

우리는 왜 한국말 논리가 아닌 서양말의 논리를 따르고 있을까. 이미지=픽사베이

그런데 이들이 쓰는 교재를 살펴보면 논리 판단을 내릴 때 쓰는 영국말 ‘true’와 ‘false’를 ‘참’과 ‘거짓’으로 말하고 있다. 그들은 한국말에서 ‘참’과 ‘거짓’, ‘맞음’과 ‘틀림’이 어떤 뜻을 가진 말인지 또렷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맞음’과 ‘틀림’으로 말해야 하는 ‘true’와 ‘false’를 ‘참’과 ‘거짓’으로 말하고 있다. 이를테면 ‘1+2=3’과 ‘1+2=4’를 말할 때, “하나에 둘을 더하면 셋이라고 하는 것은 맞고, 하나에 둘을 더하면 넷이라고 하는 것은 틀렸다”라고 말해야 말이 맞다. 그런데 ‘1+2=3’과 ‘1+2=4’를 말할 때, “하나에 둘을 더하면 셋이라고 하는 것은 참이고, 하나에 둘을 더하면 넷이라고 하는 것은 거짓이다”라고 말하면 말이 맞지 않다. 그런데 그들은 말의 논리를 말하면서도 한국말에서 볼 수 있는 논리의 차림새를 전혀 묻고 따지지 않는다.  

한국사람은 한국말을 제대로 풀어낼 수 있는 새로운 말차림법을 왜 만들어야 하는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만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따위를 생각해보지 않는다. 이 때문에 누가 한국말 말차림법을 새롭게 만든다면 크게 낯설어 하고, 어설퍼 한다. 어떤 이들은 그런 일을 하지 못하게 꾸짖거나 나무라기까지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한국말을 제대로 배우고 쓰려면 누군가 반드시 제대로 된 말차림법을 만들어야 한다. 누군가 하다가 안 되면, 다른 사람이 다시 시작해야 한다.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구도 이런 일을 하려고 나서지 않으니 내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한국말 말차림법을 만들었다. 한국말 말차림법에 대해서 매서운 검토와 날카로운 비판이 있길 바란다.

 

 

최봉영
한국인문학연구회 이사장
(전 한국항공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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