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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로세평] 우리 사회의 그늘에 대하여
[신문로세평] 우리 사회의 그늘에 대하여
  • 이종화 목포대
  • 승인 2002.06.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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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18 10:23:27
어느 시대, 어느 사회이고 문제와 어려움이 없을까 마는 지금의 우리사회도 여러 가지로 힘들어 보인다. 우선 경제위기를 벗어나느라 힘들었고, 남북문제와 관련해서는 사회분열이 일어날 정도로 담론이 무성해 어느 것이 옳은지 판단키 어렵다. 또한 정치판은 중앙정치나 지방정치 할 것 없이 권력자의 부패문제로 답답하고, 미국에 대한 9·11 테러사건 이후 세계는 불안하고 어수선하다.

이런 상황에서 월드컵 경기가 열리고 있다. 그 열기가 대단하다. 세계의 내노라 하는 축구고수들이 모여 일합을 겨루는 지상최대의 축구축제인 만큼 어찌 흥미진진하지 않겠는가. 그간 스포츠와는 담쌓고 살던 우리 집 큰 애 조차 덩달아 야단인 걸 보면 분명 그러하다. 충분히 즐기지 못하면 두고 두고 후회할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지난 10일 한국과 미국 축구대표팀의 경기를 관람하기 위하여 서울 시청 앞과 광화문에 모인 인파와 그들의 열정, 에너지는 단순한 관심과 재미 차원을 넘어 선 것이었다. 일종의 광기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16강 진출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아니면 미국 전에서 승리하면 솔트 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의 쇼트트랙 판정시비 등으로 인한 반미감정도 해소되며 우리의 자존심도 한껏 세워지는 것인가. 축구공 하나를 놓고 이렇게 똘똘 뭉칠 수 있는 국민적 열정과 에너지분출이 무엇에 바탕을 두는 것인지 의아스러울 뿐이다.

어쨌든 이러한 월드컵 열기 속에 6·13 지방선거는 치러졌고 예상했던 대로 48%라는 사상 최저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신문지상에서는 월드컵 경기에 ‘묻혀버린(가려진)’ 지방선거라고들 한다. 월드컵 때문에 그 빛이 바랬으며 상대적으로 관심을 끌지 못했다는 정도의 의미로 해석된다. 그러나 나는 조금 다른 차원에서 이 현상을 바라보고 싶다. 즉 월드컵 경기를 핑계삼아 국민이 적극적으로 ‘묻어버린(무시해버린)’ 지방선거가 아닌가 싶은 것이다.

일반 유권자들에겐 다소간 ‘투표해도 바뀌는 게 없고 누굴 찍어 봤자 나을 게 없다’는 식의 정치적 냉소주의가 팽배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선거 당일에 한 방송국 기자가 월드컵 경기장으로 들어가는 관람객을 잡고 인터뷰한 내용이 이를 극적으로 대변해주고 있다. 기자가 투표하고 관람하러 가는 길이냐고 묻자, 그는 “재활용품 분리하기 싫어서 투표 안했다”고 응수했다.

적어도 이들은 선거고 정치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그 무엇이고 이것을 묻어버리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마침 월드컵 경기가 그 역할, 즉 무언가 짜증스러운 것을 묻어버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런 월드컵이라는 축제의 열기나 화려한 구호, 또는 그럴싸한 외견 뒤에 가리워진 채 넘어가는 숱한 사회적 문제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예컨대 올 3월 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가 우리나라 국가신용등급을 A 등급으로 올린 후 정부는 축제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그러나 이런 축제 이면에도 우리가 무시하고 넘어간 또 다른 사회적 그늘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사실 A 등급 회복은 강력한 구조조정과 경기부양책이 만든 합작품이기에, 그 이면에는 하루 아침에 길거리로 나앉은 가정과 천장부지로 치솟은 아파트 값에 내 집 마련의 꿈을 접고 전월세로 살아가는 서민의 희생과 아픔이 서려있다. 이들을 어루만지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하지 못한다면 이는 가진 자만의 축제일 뿐이다.

월드컵 경기 내내 우리 눈앞에 화려하게 그 위용을 뽐내고 있는 월드컵 경기장도 마찬가지다. 무슨 무슨 형상을 본떠 만든 경기장이라며 찬사를 거듭하지만 정작 월드컵 경기장 건설을 위해 서울 상암동 주민들에게 자행된 철거용역의 실상은 지난 30년간 이루어졌던 철거재개발 역사에서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철거당해 밀려난 상암동 주민들의 삶을 추적했던 담당 프로듀서는 “철거현장에서의 거주민에 대한 폭력은 생존권조차 유린하는 지경”이었다고 고백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던 것이다.

이달 말이면 월드컵도 끝난다. 바라볼 축구경기 화면이 없어지고 대신 그 자리에 월드컵 이전의 화면이 다시 나타날 거다. 묻어버리고 싶어했고 묻혀져 있었던 그 문제들이 말이다. 지금까지도 우리들은 애써 외면하고 싶은 많은 문제들과 함께 살아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묻어버린다고 그 문제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며, 외면하고 무시한다고 그 그늘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란 점이다. 적극적으로 그 문제들을 전면에 들어올려 하나씩 해결해가려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는 교수사회가 담당해가야 할 중요한 몫이기도 하다.

이종화 목포대·도시 및 지역개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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