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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_ ‘반값 등록금’논의의 이성적 접근
교육단상_ ‘반값 등록금’논의의 이성적 접근
  • 차인준 인제대·의학
  • 승인 2011.07.18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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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인준 인제대·의학
‘반값 등록금’ 문제는 이제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는 정치ㆍ사회적 이슈가 됐다. 대학 진학률이 80%가 넘는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모든 국민이 이해 당사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등록금을 지금의 절반으로 줄여 주겠다’고 하면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사정에 높은 등록금 부담까지 겹쳐 허리가 휘어지고 있는 마당에 어느 학생이나 학부모가 반대하겠는가. 나부터도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다. 사회적인 분위기가 이런 만큼 정치권에서는 강한 유혹을 느낄 수 있는 정치적 어젠다 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화성이 높은 반값등록금 문제는 더욱 신중하고 사려 깊은 접근이 필요했다. 이 문제가 대선 공약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많은 국민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제껏 무책임하게 미뤄두고 있다가 뜬금없이 불쑥 정치권이 나서 들고 나와 학부모와 학생들의 염장에 불을 지를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적정 등록금’의 수준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진지하게 거치고 합의를 모아 모든 당사자가 수용할 수 있는 대책을 정부가 나서서 마련하고 있다는 노력을 성실하게 보이는 것이 올바른 접근 방법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그런데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냉정하게 생각을 해 볼 때 반값등록금 문제는 ‘결자해지’의 입장에서 정부와 정치권이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정치권의 논의는 여전히 정략적이고 지나치게 졸속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제라도 단기 대책과 중·중기 대책으로 나눠 접근해야 한다.

반값등록금 문제를 대학의 구조조정과 연계시키겠다는 발상은 ‘반값 등록금’ 정책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명분은 될 수 있겠지만, 현실성이 결여돼 있다. 대학의 구조조정이 단시간 내에 그렇게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면 그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생각이다. 반값 등록금 문제와 ‘대학 구조조정’과의 연계는 국가의 중ㆍ장기적 과제로 한 차원 높여서 시간을 가지고 다뤄야 한다.

경위야 어찌 됐건 서울대 법인화법이 국회를 통과했는데도 불구하고 총장실이 한 달 가까이 점거 당했다는 사실은 대학 개혁이 얼마나 힘이 드는가 하는 반증이 될 수 있다. 대학의 구조조정은 국회의원들의 지역구를 줄이는 만큼이나 어려운 과제일 수 있다. 대학의 구조조정이라는 문제는 고려해야 할 사항이 너무도 많고 다양하며 복잡한 연립방정식이다. 대학의 구조조정은 청사진에 따라 시간을 가지고 용의주도하게 추진해야지 졸속하게 추진하다 보면 해답은 구해지지 않고 부작용만 일으킬 수도 있다.

‘반값 등록금’ 문제의 연립방정식 체계에는 크게 보아서 대학, 정부 및 정치권, 그리고 학생과 학부모라는 세 당사자가 주요 변수가 될 수 있다.

먼저 대학이라는 변수를 보자. 적정 등록금의 수준은 대학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학부모들과 고통을 함께 한다는 차원에서 대학은 이 문제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지금 일부 대학에서는 저소득층 자녀로부터는 등록금을 적게 받고, 장학의 혜택을 늘리는 등의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따뜻한 정책에 다른 모든 대학도 참여하는 데 인색해서는 안 된다. 등록금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된 것은 비싼 등록금을 내고도 졸업생들의 절반 가까이 변변한 일자리를 갖지 못하는 우리의 사회적 현실이 근본 원인이라는 것을 대학 스스로 자성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두 번째 변수를 보자. 정부와 정치권은 이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원인 제공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립 서비스만 일삼고, 정작 곳간 열쇠를 쥐고 있는 정부는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것처럼 보인다. 당장 2학기에 대비해 구체적인 등록금 대책을 내 놓고 학생과 학부모들을 설득해야 한다. 물론 재원 마련을 포함한 중ㆍ장기 대책도 서둘러야 국민 구성원들의 이해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학생과 학부모들도 상대적으로 높은 대학 등록금 문제가 우리나라의 높은 교육 인플레이션에서 비롯된 것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나라 곳간이 점점 비워지고 있는 현 상황에서 어차피한 약속이니 당장 ‘반값 등록금’을 실현해야 하지 않느냐 하고 요구하는 것은 우리 대학 교육의 부실화를 초래할 수 있다.

‘말로써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은 천 냥 빚에 방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말을 사려 깊게 하라는 뜻이다. ‘반값 등록금’이란 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현시점에서는 ‘반값 등록금’문제와 관련된 이해 당사자 간의 보다 냉정하고 이성적인 접근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차인준 인제대·의학
서울대에서 박사를 했다. 인제대 의과대학 약리학교실에 재직하면서 의예과장, 기획실장, 교학부총장, 대학원장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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