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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문'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에게 '문'은 어디에 있을까?"
  • 배윤기 부산대 영문학
  • 승인 2011.03.27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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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환점 다가온 HK사업

배윤기 부산대 HK연구교수
사회사상가 게오르그 짐멜은 인간 고유의 의식의 작용으로 일어나는 ‘연결과 분리’(connect and separate)라는 사고와 그 수행을 '다리와 문(Bridge and Door)'을 통해 설명한다. 하나의 점, 개체와 다른 점, 개체의 연결을 설명해주는, 다리는 ‘길 만들기’라는 일반적 사유와 실천의 연장이자 그런 인간적 성취의 절정을 상징한다. 문은 연속성과 무한성의 공간 일부를 떼어내서 ‘단일한 의미’에 맞춰 ‘특별한 통일성’으로 정리하는 집짓기 과정에서 고립과 단절을 넘어, 수행적인, 다시 말해 관계 속에서 인간적 소통의 삶이 구현되도록 마련해놓은 자유의 향유 가능성을 표상한다.

다리나 길은 그냥 자연 그대로 존재하는 둘을 연관지어 사유함으로써 분리된 것으로 인지한 다음, 연결의 필연성이 수립됨에 따라 성취된다. 이와 달리, 문은 개별 공간 형성이라는 단호한 분리를 통해 자연을 극복하는 동시에, 세계와의 단절을 극복하고 관계를 개방하는 특이한 인간적 성취다. 내부 시선의 일방향성을 매개하는 창의 제한을 넘어서는, 문은 또한 무한한 개방과 궁극적 자유를 지향하는 ‘경계 지점’이다. 따라서 “사람이 어떤 방향으로 다리를 건너는 일은 의미상 하등의 차이도 만들지 않는 반면, 문은 들어가기와 나오기 사이에서 완벽한 의도의 차이를 보여준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생각을 연장해 우리는 제도가 만드는 공간을 사유해 볼 수 있다. 근대적 사고 체계가 제공하는 위상학적 배치 속의 집, 창, 문 따위의 위계적 분리와 본질화 되는 규범을 통한 이해를 극복할 필요가 먼저 생긴다. 집과 창과 문이 만들어지는 오래된 의도의 씨줄(공시성)과 날줄(통시성)이 구성하는 공간적 맥락의 이해를 바탕으로, 그것들을 능동적으로 활용 혹은 응용함으로써, 어떻게 ‘분리와 연결’의 수행적 의미를 구현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다. 열고 나서지 않는다면, 문은 벽이 되고, 길은 존재할 이유조차 없는 까닭이다.

제도적 공간은 제공자와 수혜자를 ‘갑-을 관계’로 환원하기 쉽고, 늘 규범화할 가능성을 갖는다. 속도와 수량의 미학에 탐닉하고 중독되는 ‘기술ㆍ행정 제일주의’는 이곳에서 탄생한다. 여기서 최고의 덕목은 ‘위기감과 경쟁’인데,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희망과 모험으로 ‘나가게’ 하기보다는, 익숙해 자리 잡기 용이한 곳에서 자기 안전과 방어의 태도로 ‘돌아가도록’ 만든다. 제도의 목적은 사라지고, 누구도 그 목적의 실현을 기대하지 않는다. 모두 구경꾼이 되고, 또 돼야 한다. 만일 목적 실현을 진지한 과정으로 이해하고 정말 실현하려고 뛰어든다면, 그 혹은 그녀는 ‘돈키호테’로 변신되거나 심지어 ‘그레고르 잠자’ 혹은 ‘마녀’의 길을 걷도록 강제된다.

난 그 탄생의 역사를 정확히 모르지만, ‘인문한국(HK)사업’은 제도적 집인 대학이 문을 열지 않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 같다. 구체적으로 인문학 각 분과학문의 집들이 오래 동안 문을 열지 않고 있다가 문이 어디 있는지 망각한 현실 각성에서 시작하지 않았을까. 문 열고 세계의 무한성과 소통함으로써, 감옥 같은 편협한 고유성으로부터의 스스로 그리고 함께하는 해방이 그 목적 아닐까. 이를테면 소통력 없어 안주하는 기존 방식이 아니라, 소통력 회복을 통해 사람들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려는 노력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제도적 공간인 HK사업의 존재 이유는 생활세계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 결국 인문학이 상실하거나 외면해온 문제 해결력의 소생을 성취하려는 의도의 투사(project)다. 이제 반환점이 머지않은 HK사업 안팎에서 ‘뭔가를 하고 있는’ 우리에게 문은? 어디에? 있을까? 문을 열고 나가는 행위가 벽에 대한 ‘거부’와 ‘비판’이라는 소중한 인문 정신을 진작부터 환기하고 있는데 말이다. 짐멜은 “벽은 말하지 않지만, 문은 말한다”라고 역설한다. 인문학은 말하고 걸을 수 있을까?

배윤기 부산대ㆍ영문학
부산대에서 미국 흑인노예문학으로 박사를 했다. 현재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의 HK연구교수로 있으면서 지구화ㆍ로컬화, 서발턴, 수행성 등을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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