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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스민 도미노’와 오리엔탈리즘
‘재스민 도미노’와 오리엔탈리즘
  • 임상우 편집기획위원 / 서강대
  • 승인 2011.03.09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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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임상우 편집기획위원 / 서강대사학과

북아프리카와 중동지역의 연이은 민주화 시위 및 내전 상태는 최근 전 세계적인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벌써 ‘재스민(Jasmine) 혁명’이라고 명명된 이슬람 국가에서의 대중 봉기는 무엇보다도 종교가 정치에 우선하는 문화권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격변이기에 그동안 중동을 정태적 실체로 인식하던 세계의 관찰자들은 경이의 시선으로 사태의 추이를 주시하고 있다.

일찍이 20세기 중반의 냉전시대에 있어 동남아 지역의 공산주의 세력의 확장을 우려한 국제정치학적 이론 중의 하나로 ‘도미노 이론’ 이라는 것이 있었다. 즉, 한 국가가 공산화 되면 인근 국가들이 순차적으로 도미노 넘어가듯 공산화 될 것이라는 가정이며, 기실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 등에 미국 및 서방 열강이 개입할 수 있었던 이론적 근거였다.

그 덕분인지 동남아 지역의 전반적인 공산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튀니지에서 시작된 민주화 운동은 전 아랍권을 순차적으로 격동시키고 있어, 가히 ‘재스민 도미노’ 현상이라 부를 수 있는 역사적 격변이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는 이 도미노가 멀리는 중국까지 또는 급기야 북한에 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반 기대 반의 관찰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국제정치적 시각의 관찰자들은 중동 산유국들의 동요가 단기적으로는 국제유가와 무역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하고 있고, 중기적으로는 향후 중동지역에 대한 미국 및 강대국의 세력구도에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이러한 중?단기적 관찰 및 우려와는 별도로 이번 ‘재스민 도미노’의 역사적 의미를 보다 긴 호흡의 장기적 관점에서 관찰할 필요가 있다.

일찍이 미국의 저명한 석학이자 역사가인 슐레진저(Arthur Schlesinger, Jr.)는 이른바 ‘시계추(pendulum) 이론’으로 20세기 미국의 정치사를 설명해 적지 않은 반향을 얻은 바 있다. 즉, 20~25년을 주기로 해서 미국의 정치적 기상도가 보수와 진보 사이를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했다는 비교적 단순한 이론인데, 그러한 설명이 커다란 설득력을 가지고 받아들여진 바 있다.

마찬가지로, 지난 20세기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대략 20년을 단위로 벌어진 세계사적인 격변을 관찰할 수 있다. 1910년대에는 1차 세계대전으로 유럽 및 전 세계가 격동했고, 1930년대에는 나치즘과 파시즘의 확장과 뒤이은 2차 세계대전으로 전 세계는 다시 또 다른 역사의 공포를 경험했다. 1950년대에는 동서냉전으로 전 세계가 얼어붙었으며, 1970년대에는 석유위기와 동서화해로써 획기적인 역사 국면이 시작됐으며, 1990년에는 러시아 및 공산권의 붕괴로 새로운 역사 시대가 개막됐다. 이제 2011년 벽두에서 아랍권의 변혁은 향후 10~20년간 세계사의 향방을 가늠할 것이라고 필자는 보고 있다.

그 동안 단순히 석유생산국, 테러의 온상지, 문명충돌의 상대방 등으로 주로 부정적 이미지로 세계사에 등장했던 아랍권은, 사이드의 표현을 빌자면 ‘오리엔탈리즘’적으로 인식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중동 각국의 독자적 문화나 내부의 사회적 역동성은 전혀 도외시 된 채, 세계 경제의 원료 공급지이거나 냉전 이후 자유서방세계의 새로운 적으로만 그려졌던 것이다. 중동 각국은 그 종교문화적 동질성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의 역사적 독자성과 사회적 다양성 및 민간 차원의 국제적 개방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간과돼 집합적으로 세계사의 ‘他者’로만 인식돼 온 것이 아닌가 반성해 볼 때가 됐다.

임상우 편집기획위원 / 서강대 사학과
중동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격변은 그 중, 단기적 결과를 예언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들이 날이 갈수록 세계사의 무대에 정당하게 등장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우여곡절은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중동지역의 정치적 민주화는 역사적 대세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세계시민의 일원으로 활동할 날이 머지않았다. 이제 우리의 중동 인식에 있어 오리엔탈리즘적 타자화를 불식하고 그들과의 다양한 경로를 통한 정부 간, 민간 간의 교류를 모색할 때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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