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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월드컵과 6·13선거
[대학정론] 월드컵과 6·13선거
  • 논설위원
  • 승인 2002.05.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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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5-28 14:09:32

올해는 2002년 한·일월드컵 기간 중에 지방선거를 치러야 한다. 이래저래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다. 밖으로는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을 보여줘야 하는 선거지만, 안으로는 이게 ‘이해관계’가 아주 복잡한 정치적 쟁점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억한다. 군사정권이 만들어낸 잠실벌의 신기루가 ‘선진사회도약’이라는 정권의 명제를 반영한 위로부터의 사건이었다는 것, 결과적으로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낮았고, 때문에 대외적 성공이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사회통합에는 실패한 반쪽의 잔치로 끝났다는 사실은 ‘역사의 교훈’을 다시금 되새기게 만든다.

2002년 한·일월드컵은 지방 분산형으로 치러진다. 지방선거가 있는 13일, 서울과 수원에서 경기가 열린다. 그러나 월드컵이 선거 열기를 잠식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애초부터 시민들은 자신들이 오래 구상하던 지역 발전과 성숙을 위한 후보에게 점을 준다는 생각으로, 정권 심판이나 대선 전초전쯤으로 편한 해석을 일삼는 정치집단들과 달리 차분했기 때문이다.

한편 월드컵 경기가 열리는 서울, 부산, 인천, 광주, 대구 등 서울에서 제주까지 온통 ‘월드컵’ 바람이다. 8조 8천억 규모의 국가적 수익을 가져다줄 국제 경기다보니 기울이는 정성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스페인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역시 이번 월드컵을 통해 세계무대에 자신감있는 ‘역동적인 모습’을 과시하면서 ‘선진 민주주의 사회’로 부상할 호기가 분명하다. 진흙탕 싸움을 벌이던 정당들이 ‘정쟁중단’을 선언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일 게다.

그렇다면, 6·13지방선거는 어떨까. 제 논 물대기 식으로 지방선거를 이용할 꼼수를 정당들이 놓칠 리는 없다. 그렇게 된다면 ‘한국사회의 민주주의 성숙’을 우리 스스로 확인할 길도, 또 나라밖 전 세계에 이 ‘성숙한 포옹’을 보여줄 수도 없을 것이라고 예측하는 건, 지나친 발언일까.

이번 지방선거는 월드컵 때문에 결코 가려져서도 안 되고, 또 그렇다고 ‘대외용’으로 부풀려질 필요도 없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의 일꾼을 자기 세계관과 상식, 개인의 합리적 선택에 따라 걸러내는 지역 축제일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 기본 정신이 월드컵 바람에 왜곡되는 건 아닌지 우려한다는 것이다.

 
지역민 스스로가 참여하고,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재목’을 선출하는 과정은 월드컵 못지않은 큰 축제다. 이 크고 멋진 축제를 앞두고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그리고 우리 정당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냐고 묻는다면 지나친가. 풀뿌리 민주주의를 다지는 세 번째 실험이며, 월드컵 경기가 치러지는 모습을 시청할 동시대의 세계 시민들에게 우리들의 ‘고귀하고 성숙한’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지방분산 방식으로 경기를 여는 이번 월드컵을 적극 활용할 방안은 없는 것인가. 끈끈하게 맺어진 지역과 지역이 서로 ‘선의의 경쟁’을 아낌없이 펼치는 ‘페어 플레이’는 월드컵을 통해 벌어들일 9조 가까운 경제혜택보다 값질 것이다.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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