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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필요할 땐 언제든 불러줘” … 보이지 않는 손길로 가슴을 데웠다
“내가 필요할 땐 언제든 불러줘” … 보이지 않는 손길로 가슴을 데웠다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0.12.27 14: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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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희망을 지핀 대학·아카데미사람들

희망의 힘으로 뻗어나가야 할 지식이 언제부턴가 ‘수요와 공급’이라는 이름으로 대학 울타리에 갇혀 버린 듯하다. 돈을 매개로 ‘교환’되는 대학교육이 지속되면 대학가의 미래는 어떨까. 그럼에도 지식은 여전히 누구에게나 희망이다. 업적평가의 荷重 속에도 울타리를 박차고 나온 아카데미 사람들이 있다. 지식으로 희망을 짓는 대학, 아카데미 사람들, 그들은 올 한해에도 대학가에 훈훈한 바람을 불어넣어줬다.

지역사회 돌봄? 그들과 함께!

‘아이덴터티 디자인’은 시각디자인학과 4학년 전공과목이다. 김형석 경희대 교수(시각디자인학과)는 기업이미지(CI)를 제작하는 기법을 가르친다. 학생들의 창작작업은 지난 2005년부터 완전히 달라졌다. 김 교수는 강의를 재정이 어려운 사회봉사기관이나 비영리학술기관에 무상으로 CI를 제공하는 데 맞췄다.

취지가 좋아도 업체에서 만족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김 교수는 강의(제작)일정을 짜임새 있게 짰다. 3월엔 이론수업, 4월엔 심벌마크를 제작한다. 기관에서 디자인을 고르면 연말까지 디자인 작업에 착수한다. 봉투나 명함, 각종 서류에 활용할 수 있게 만든다. 무상CI는 샘물지역아동센터, 한국희귀질환연맹 등 70여 곳에 달한다. 김 교수는 앞으로 10년을 내다본다. 디자인 기부를 해외로 넓히고 책도 펴낼 계획이다.

교수들의 지식나눔은 강의기부에 국한하지 않는다. 학생들과 함께 하기도 하고, 개인적인 친분을 계기로 보폭을 넓히기도 한다. 대학도 지식자산을 지역사회와 공유하기 시작했다. 희망을 지핀 아카데미 사람들의 묵묵한 선행은 내년에도 계속될 것이다. <1>안광준 한성대 교수 <2>김형석 경희대 교수 <3>박성배 계명문화대학 교수와 학생들 <4>김수관 조선대 치의학전문대학원장  <5>이정후 전북대 교수 <6>정문권 배재대 교수와 동곡요양원 제자들

김 교수가 기업이미지를 무상기부 했다면 박성배 계명문화대학 교수(디지털콘텐츠학부)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제작한다. 박 교수도 2005년부터 시작했다. 대구 척수장애인협회 홈페이지를 무상으로 제작한 것을 계기로 해마다 학생들과 함께 ‘재능기부’를 이어오고 있다. 요즘은 동영상 제작까지 범위를 넓혔다. 얼마 전 장애인밴드 공연에 쓰인 동영상을 제작하는 데 두 달이 걸렸다. 만만찮은 작업이지만 박 교수와 학생들은 돈보다 값진 ‘재능’의 보람을 배워가고 있다.

장애인들에게 11년째 글쓰기를 지도해 온 정문권 배재대 교수(국어국문학과)도 빼놓을 수 없다. 정 교수는 지난 2000년 뇌성마비 중증장애인 안형근(46세), 김상규(44세) 씨와 우연한 인연으로 글쓰기 지도를 시작했다. 이듬해 대학출판부를 통해 작품집을 발간했고 2003년엔 수업을 청강하게 했다. 요양원을 직접 찾아가거나 이메일을 통한 글쓰기는 계속된다.

오산대학(총장 홍문표)은 재래시장 상인들의 일손을 돕고 나섰다. 맞벌이, 한부모, 저소득층 등 상인 자녀 외에도 오산지역의 초등학생 자녀를 대상으로 방과후 학교(오산대학 꿈나무 안심학교)를 연 것이다. 오산시장 상가번영회 안에 있다. 학생봉사자들은 보조교사가 돼 학습·과제·생활지도를 맡는다. 전담강사를 통해 원어민 영어교실과 한자반도 운영할 계획이다.

‘방과후 학교’의 열기는 대학으로 번졌다. 취업중점교육을 지향하는 건양대(총장 김희수)는 올해 ‘방과후 학습 프로그램’을 아예 필수과정으로 정착시켰다. 건양대는 학과별로 필수적인 자격증 취득과정과 외국어 교육을 위주로 방과후 학교를 운영한다. 정규수업이 끝나는 오후 5시 이후에 열린다. 연간 200여개 강좌에 5천명이 넘는 학생들이 수강할 만큼 인기다.

한국외대카이스트 교수진중국어, 베트남어 등 이중언어와 과학 분야에 재능이 있는 다문화가정 청소년에게 무상교육을 하고 있다. LG기업의 지원으로 올해부터 2년간 진행된다. 올해에는 다문화가정 자녀 70명을 선발해 교육하고 있다.

은퇴한 교수들도 가세했다. 올초 서울대 명예교수들 복지관, 시·군·구 문화센터로 무료 출장강연에 나섰다. 철학·역사·사회과학·의학·공학 등 강의주제를 홈페이지에 게시한 후 요청이 들어오면 출장 강연을 하고 있다. 강연은 전국에서 쇄도하고 있다.

대학의 자산과 가치 ‘대중 속으로’

올초 ‘사회기부’를 약속했던 이화여대(총장 김선욱)가 매년 2천여 건씩 쏟아져 나오는 이화여대 교수들의 연구결과물을 웹으로 공개했다. ‘이화 OK-프로젝트’(Ewha Open-Knowledge Project)에 따라 교수들의 논문뿐 아니라 교내 연구소 발간 학술지, 학술행사 자료와 동영상을 인터넷으로 공개해 누구나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교내 학술지와 학술대회 자료는 총 5만2천492건(2010년 10월 현재)을 데이터베이스화 했고, 국내외 석학의 워크숍 동영상 152편이 포함돼 있다. 이 가운데 5만468건을 교내외 이용자들에게 공개했다. 학술지는 이화여대 소속연구소에서 발간하는 125종 가운데 119종을 전자화했다. 이화여대가 소장하고 있던 고서와 개화기 교과서 원문을 디지털화해 국내외에 공개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지난달 도서관 한켠에 ‘만화코너’를 마련하고 지역주민들에게 전면 개방한 한림대 일송기념도서관(관장 김인규)도 눈길을 끈다. 한림대 일송기념도서관은 2천500여권의 만화자료를 한자리에서 접할 수 있게 만든 ‘만화코너’를 만들었다. 지역주민에게 학생들과 같은 수준의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춘천지역 고교 9곳과 강원지방경찰청 외 6곳의 공공기관과 협약을 맺고 특별열람증을 발급했다. 대대적인 도서관 개방으로 지난 2월에는 한국도서관상(단체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림대 일송기념도서관은 개방과 협력의 보폭을 더 넓힐 계획이다. 강원지역 대학 도서관, 서울대 도서관, 이화여대 도서관 등과 상호협약을 체결해 도서관 개방운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수상의 영예’ 얻기도

재능기부를 장려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한층 탄력을 받고 있다. 연말의 각종 시상식에 아카데미 사람들의 이름이 부쩍 많아졌다.
제1회 광주전남 사회공헌대상 기부자선부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김수관 조선대 치의학전문대학원장 대표적이다. 1994년부터 언청이 및 안면기형 환자들을 무료로 수술해왔다. 2002년부터는 국내외 진료봉사에도 나서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선정한 ‘2010년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문화창달 부문 수상자 3인에 교수들이 나란히 올랐다. 읍·면·동의 학교에서 ‘생활과학교실’을 운영한 유수창 군산대 교수, 지역 청소년을 대상으로 과학체험 프로그램 ‘열린과학교실’을 열고 있는 이정후 전북대 교수, ‘미술과 놀이’ 전시활동을 펼친 안광준 한성대 교수가 주인공이다. 

사회 곳곳에 희망을 심는 교수들, 그들은 어떻게 울타리 안팎에서 智術을 펼칠 수 있었을까. 장애인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친 정문권 교수는 “개인적으로 학문적 미진함을 채울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찾고 있었다. 내가 조금 더 알고 있는 것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게 좋을 뿐”이라고 말했다. 선행은 드러내는 게 아니라지만, 2011년에도 멈추지 않을 아카데미 사람들의 발자취는 한층 더 선명하게 기록될 것이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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