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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기부·후원, 모여서 더 아름다웠다
지식기부·후원, 모여서 더 아름다웠다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0.12.27 14: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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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희망을 만든 아카데미 사람들

“인구 20만 이하의 작은 도시나 읍·면에서는 과학자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없습니다. 과학이나 공학을 전공한 대학원생, 연구원, 교수 중에서 강연기부를 해주실 분을 찾습니다.”
-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바이오및뇌공학과, @jsjeong3)가 지난 9월초 본인의 트위터에 올린 글.

올해를 가장 뜨겁게 달군 것 중 하나가 트위터라면, 이 한 줄은 잠자던 지식인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일깨워줬다. 대학교수를 비롯해 과학 전문가 70여명이 동참했다.
글을 올리고 한달이 지난 10월 30일, 전국 29개 지역도서관에서 총 69개 강연이 열렸다. 2천명이 넘는 청소년들이 2시간 동안 귀를 쫑긋 세웠다. 강연이 열린 도서관마다 대학교수, 대학원생, 의사, 기업체 연구원, 과학전문기자 등 각계 전문가들이 청소년들과 눈높이를 맞췄다.

‘지성의 침묵’, ‘잠자는 지성’ 등등 교수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선도 눈 녹듯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정 교수는 “나누면 줄어들어야 하는데 오히려 더 늘어난다. 덧셈과 곱셈으로 이뤄진 이상한 나눗셈으로 봐야 한다”며 트위터를 통한 강의기부의 힘을 ‘외계인의 수학’에 빗댔다.
처음 글을 올릴 때에는 대여섯 명 정도라도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던 정 교수는 예상 밖의 폭발적인 반응에 새로운 가능성을 실감하고 있다.
정 교수의 사례 외에도 올해는 트위터를 통한 강의기부가 급속히 퍼진 해였다.

학생들의 지식기반을 넓혀주려고 매주 외부인사 특강을 열어왔던 한남대 경영정보학과 교수들도 트위터를 통해 섭외에 나섰다.
학과 교수들이 릴레이 특강을 연다는 일도 이례적이지만 알음알이 방식을 벗고 트위터를 활용하는 점은 눈에 띠는 변화다.

문국현 전 창조한국당 대표(@Peoplearehope), 양광모 행성연구소장(@blu62) 등이 다녀갔다. 강신철 학과장은 트위터에 “세상은 이렇게 마음이 넉넉하신 분들이 있어서 살 맛 난다”며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트위터를 통한 강의기부가 교수사회에 새로운 실천적 지평을 열었다면, 대기업 CEO출신의 독지가의 남다른 기부 이야기도 신선한 감동을 전해줬다.

얼마 전 이헌조 전 LG전자 회장이 내놓은 기부금 70억원을 둘러싼 일화다. 거액의 기부금도 화제를 모았지만 이 전 회장이 붙인 ‘단 한 가지 조건’이 이목을 끌었다. 유일한 조건은 실학연구에 써 달라는 것. 더구나 기업가가 순수 인문학분야에 수십억원을 내놓았다는 데 남다른 의미가 읽힌다.

이우성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연구원장을 맡고 있는 실시학사는 기부금을 바탕으로 국내외 학술대회를 열고, 실학고전번역사업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 교수는 “제자들에게 대학원에 진학해서 공부를 계속하라고 말할 수 없는 선배 학자들과 불안에 떠는 학문후속세대에게 큰 용기를 줬다”고 말했다.

2010년, 아카데미 사람들은 대학 울타리 안팎에서 묵묵히 희망 서린 이야기를 써내려 가고 있었다. ‘지식인의 책무’라는 말이 무색하게 오늘도 현장으로 달려가는 교수들. 그들은 내년엔 더 많은 활기찬 기운이 아카데미에서 움트길 바라고 있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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