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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 내 욕망의 우물 독문학
[학이사] 내 욕망의 우물 독문학
  • 교수
  • 승인 2002.05.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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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5-28 13:16:41
고등학교 시절 알지못할 동경으로 헤르만 헤세나 루이제 린저, 니체를 읽고, 역시 잘 알지 못했던 언어로 멀리 있는 이들 ‘위대한’ 독일인들에 대해 친구들과 열렬히 토론하던 때가 있었다. 친구집 언니를 통해서, 또 존경하는 몇몇 선생님들을 통해 간혹 접했던 베토벤과 슈베르트, 모차르트의 장엄하면서도 비밀스러운 아름다움은 나로 하여금 삶과 가치, 인간과 세계에 관해 무언가 중요한 것에 다가가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러나 나의 대학 시절은 오히려 우울한 편이었다. 나의 출생 이후 대학교 2학년까지 줄기차게 나의 인생을 멀리서 그러나 확실하게 지배해왔던 저 권력자 때문이었다. 억압과 무기력감, 불신과 냉소가 캠퍼스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고, 언제나 어디서나 그 고약한 냄새를 피할 수 없었다. 나의 청춘은 시름시름 앓아 가고 있었고, 그럴수록 방향을 잃은 내 삶의 욕망은 먼 곳으로만 치달았다.

박사과정 학생으로서 독일에서 보냈던 8년 가까운 세월은 이처럼 잃어버릴 지도 몰랐던 내 삶에 다시 어떤 무게와 안정, 그리고 새로운 지평을 가져다준 시기였다. 나는 벤야민, 브레히트, 루카치에서 시작하여 아도르노, 뷔르거, 하버마스, 페터 바이스에 이르기까지 닥치는 대로 읽어댔고 내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아, 저 고등학교 시절, 헤르만 헤세나 루이제 린저의 감상어린 글들이 주었던 감동이 이제 좀 더 객관적인 세계의 언어로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나는 정말 중요한 것에 도달하였다고 믿게 되었다. 그래서 신참 대학 교수인 나의 강의는 당연히 언제나 열강이었다.

그러나 내 인생의 반전의 드라마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내 가 새로운 학문적 충전을 위해 비웠던 한국에서의 팔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이 사회에서도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것을 점차 실감하게 되었다. 우선은 학생들이 예전 같지 않았다. 얄밉도록 발랄하고, 일상을 즐길 줄 알고, 또 서로서로 다정했다. 나는 한편으론 이런 학생들이 부러웠고, 다른 한편 위대한 작가들과 사상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갖지 않는 데 대해 섭섭한 마음이었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유능한 독일어선생이 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인문학자로서 세계와 인간, 가치와 문화에 대해 어떤 의미있는 지적 작업을 계속 추구해야 할 것인가. 외환위기와 연이은 대학개혁의 와중에서 이러한 고민은 나에게 보다 진지한 문제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은 사실 나만의 고민은 아니었다.

최근의 독일문학계는 그 어느 학문 분야 보다도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인문학으로 이해해 왔으며, 온갖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와 문화 현장에서 창의적 자산으로 기여해왔던 독문학이 자신의 전통과 정체성을 어떻게 현대 인문학 이론에 걸맞는 수준에서 재생산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서양’이 우리에게 규범이고 ‘서양중심주의’적 사유체계가 우리의 집단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한, 독문학은 모든 다른 서양학과 더불어 우리 사회에서 고유한 의미의 ‘인문학’적 기능을 가질 수 있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1920, 1930년대 이 땅의 젊은 엘리트들이 18세기 독일 문호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고, 로테의 삽화를 자취방 벽에 붙인 채 사모의 마음을 키우고, 그 이후 1백54회의 번역이 이뤄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국사회에서 ‘서양’과 서양문화는 새로운 문화적 감수성이든지, 압도적인 외부의 권위이든지, 아니면 선망의 대상이든지 우리의 근대적 집단 정체성에 뿌리 깊게 그리고 복잡하게 뒤얽혀 있다. 이 복잡하게 뒤얽힌 한국 현대사회의 정체성의 미로를 밝혀내는 고고학적 작업에 서양학이 참여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다시 아름다운 오월, 강의실의 나는 여전히 열강이다. 하지만 시선은 탐색 중이며, 목소리는 높고 낮음을 알게 되었다. 왜? 나는 이제 독일과 유럽의 문학 및 문화에 대해 말하고 싶을 뿐 아니라, 나를 저 먼 독일로 치닫게 했던 내 삶의 기나긴 욕망의 역사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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