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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개발은 ‘지속 가능하지 않은’ 개발일 가능성이 높다”
“모든 개발은 ‘지속 가능하지 않은’ 개발일 가능성이 높다”
  • 이수영 전문번역가
  • 승인 2010.12.13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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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점점 얇아져 가는 지구의 살갗

오늘날 우리나라의 도시 인구는 전체 인구 가운데 80퍼센트가 넘는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콘크리트 건물과 아스팔트 도로로 뒤덮인 도시에서는 생태계가 살아 숨 쉬는 흙이란 직접 경험하기 힘든 세계이자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이다.

이제 흙은 도시에 사는 이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흙먼지, 흙바람, 햇빛을 가리고 전염병을 옮기는 지독한 황사, 비 오는 날 자가용과 신발을 더럽히는 흙탕물, 기생충 알이나 중금속이 들어 있을까 의심스러운 놀이터의 모래흙, 아니면 피부를 매끈하게 만들어 주는 값비싼 황토팩은 아닐지.

도시민들은 폐타이어 알갱이들로 포장한 공원의 산책길에서 운동화에 흙 묻을 걱정 없이 걷거나 뛰며 건강한 삶을 추구한다. 도시화와 발전을 이룩하는 동안 현대인들은 흙과 함께 숨쉬고 흙을 만지는 시간이 사라지면서 흙의 존재 자체를 나날이 잊어 간다.

하지만 우리가 깊은 지혜와 가르침을 기대고 있는 종교 경전에서는 흙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인류의 종교인 기독교,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는 한결같이 흙을 근원적이고 신성한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흙은 사람을 이루고 있는 근본요소이고 죽은 몸뚱이가 되돌아가는 곳이며, 흙으로 만들어진 다른 모든 것들의 원형이고 몸과 마음을 경건하게 해주는 신성한 물질인 것이다.

수많은 문명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거듭한 오랜 역사 속에서 지구의 살갗인 흙은 돌이킬 수 없는 침식의 길로만 내달려 점점 얇아져 왔다. 20세기에 들어서 이전 시대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환경에 과부하가 걸리고 생태 위기가 닥쳐왔다. 사람들이 이런 사정을 인식하면서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한 마디로 개발을 지속하되 미래 세대의 존속을 위협하지 않는 ‘환경 친화적인 개발’을 지향하는 것이다. 환경의식이 높아지면서 국가와 기업 수준에서 환경 기준이 마련되고 환경보호를 위한 실천이 뒤따르고 있기는 하지만, 과연 우리가 ‘지속 가능한’ 경제와 사회를 일구어 가고 있는가는 더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한다.

‘지속 가능하다’는 것은 거칠게 표현하자면 적어도 자연자원의 총량이 유지되는 상태를 말한다. 말 그대로 지속 가능한 개발이 되려면 자연자원이 자연스레 보충되는 속도 안에서 개발이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개발되는 속도가 훨씬 빨라서 자연자원이 점점 줄어든다면 인류의 삶은 영원히 지탱될 수 없고 이것은 결코 지속 가능한 상태가 아니다. 따라서 상식적으로 생각하더라도, 어떤 개발 주체가 어떤 수치를 근거로 제시하든 우리 현실에서 모든 개발은 근본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은’ 개발일 가능성이 높다.

오랜 역사 동안 이루어진 숲의 개간, 농경지의 확대, 도시의 발전, 대농장 경영 방식, 기계화, 화학비료의 사용, 그리고 식량 증산이나 효율성, 상업적 이익을 목적으로 한 수많은 농업적 발전은 흙의 침식을 결코 되돌리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흙의 침식을 가속화했다. 비율로 따졌을 때 우리 몸을 감싸고 있는 살갗에 비교도 안 될 만큼 얇은 지구의 살갗! 흙은 역사 이래 단 한 번도 재생되지 못 하고 점점 벗겨져 왔으며 그 결과 우리 문명의 수명은 멀리 내다볼 수 없을 만큼 한계에 가까워졌다.

흙을 더는 잃지 않으려면 숲을 보존해야 하고, 농지에서는 지역에 맞는 작부체계와 흙 보존 방법으로써 흙이 비바람에 노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자본이나 기계에 덜 의존하고 사람이 흙에 꾸준히 유기물질을 보태면 땅 속에서는 부지런한 지렁이들이 쉬지 않고 흙을 갈아 주어서 지구의 살갗이 두터워지고 비옥해진다. 기계화된 대규모 영농방식은 그 어떤 농법보다도 흙의 양분을 빼앗고 침식했지만, 유기 농법은 시간이 흐를수록 흙을 더욱 깊게 하고 양분을 보탬으로써 흙을 되살린다는 뚜렷한 증거를 볼 수 있다.

소농의 육성, 도시 농업과 유기농업의 권장과 지원이 모두 정부가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우리가 낭비하고 후손에게 청구서를 내밀지 않으려면, 얼마 남지 않은 흙과 우리 문명을 지키려면, 정부와 기업, 개인이 모두 책임을 나누어야 한다. ‘지속 가능한 개발’이라는 미사여구에서 방점이 찍혀야 할 곳은 개발이 아니다.

□ 이 글은 데이비드 몽고메리의 『흙』(삼천리, 2010)을 옮긴 역자 이수영의 ‘옮긴이의 말’을 발췌 요약한 것이다.

이수영 전문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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