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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폭격기’의 강박 … 공부는 답을 제시할 수 있을까
‘논문 폭격기’의 강박 … 공부는 답을 제시할 수 있을까
  • 이혜진 동의대·영문학
  • 승인 2010.12.13 17: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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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고딕문학을 다룬 박사논문에서 ‘아바타’ 개념으로 주체를 연구하던 즈음이었다. 비평적·상업적 성공을 동시에 거뒀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아바타’가 개봉됐다. 그 순간 두 가지 생각이 스쳤다. 내 논문이 가장 동시대적인 화두를 다뤘다는 뿌듯함과 내 논의가 카메론 감독의 생각과 변별적이었나에 대한 우려였다.

학위를 받고 학문의 길에 이제 막 들어선 후에도 그 때의 경험은 되풀이된다. 뱀파이어를 다룬 『렛미인』은 스웨덴에서 만들어지고 난 뒤에 미국에서도 리메이크됐다. 미국판 영화 개봉과 동시에 원서가 우리말로 번역돼 인터넷 서점에서 이벤트 상품으로 광고되고 있다. 세상이 이렇게 빨리 돌아가는데 다시 한 번 놀란다.

뱀파이어라는 소재가 문학을 넘어 다른 문화의 장르에서도 매력적인 주제로 반복되는 지금,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 연구자로서 그 틈을 비집고 들어 연구논문으로 나의 족적을 남겨야 한다는 의무감이 밀려온다. 가능한 한 빨리 그러나 멋지고 새로운 시각으로 말이다.

하지만 온전히 새로운 시각은 과연 가능할까. 『김영민의 공부론』에서 저자는 ‘물듦’ 장에서 근래의 자기동일성을 배경으로 차이를 소비하는 일이 상품의 세계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한다. 공부의 세계에서도 하나의 개념을 흡수하고 전염시키는 ‘피상적 순발력’의 행태는 마치 상호모방적인 메커니즘을 연상시킨다고 지적했다.

반드시 독자적이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공부하는 사람의 허영이다. 우리는 남과 다르고자 고군분투하지만 다른 연구자에게서 물듦을 피할 수 없다. 남과 다른 새로운 관점을 포착해 지젝처럼 ‘삐딱하게 보기’로 빛나는 업적을 쌓아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조금은 벗어나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공부란 과연 무엇이며 왜 우리는 학자의 길을 걸어가는가 오래 된 질문을 던지는 순간, 한 지인이 언뜻 말한 의사들이 새로운 의료기기를 경쟁적으로 도입하려고 하는 시도가 나의 지금의 모습과 너무 닮아 반성하게 된다.

최신 개념이 난무하는 학계에서 재빠르게 시류에 편승하는 기민하고 명석한 내가 되지 못할까봐 안절부절못했다. 무언가를 발견하는 순간 제대로 나의 것으로 숙성시키기도 전에 혹여나 누가 먼저 이 보석 같은 개념을 발굴해서 현란하게 내어 보일까 자꾸 마음이 급해진다.

때때로 서점에 나가 최근의 학문적 동향은 어떠한지 바로 이 순간 최정점을 차지하고 있는 세련된 학풍은 무엇인지를 감지하려는 어설픈 노력이 되풀이된다. 지금보다 나은 내가 되기 위해서는 더 부지런해져야 한다.

특히 문학 비평에 자주 보이는 철학적 개념의 남용과 변용은 월권이 될 소지가 다분하며, 연구자로서 나는 ‘학제간 연구’나 ‘학문융합’와 같은 새로운 시도라는 미명 아래 정체를 알기 어려운 괴물적인 것을 범람시킬 수도 있다. 새로운 변종도 새로움이라는 그 나름의 가치를 지닐 수 있겠지만 무모한 변용은 학문적인 천박함이라는 위험을 내재할 가능성이 크다.

보드리야르가 말하는 과다실재 혹은 하이퍼 리얼리티가 넘쳐나고, 기호가 실체보다 우위에 있는 현 세계에서 오용과 새로운 창출의 갈림길에서 조금 더 소심해진 나는 잠시 논문 쓰는 데 주저한다.

이른바 ‘논문폭격기’라는 별칭을 얻기 위해 속도를 내야하는 우리네 학문적 풍토에서 느리게 천천히 새기는 공부는 어느새 멀어진다. 논문게재 편수와 저서의 숫자로 학자를 평가하는 세태 속에서 제대로 공부하고자 하는 욕망과 실적은 언제나 평행선을 이루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공부에 대한 성찰을 시도하는 여러 저서, 예를 들어 장정일의 『공부』와 같은 책은 계속적으로 출간되고 있다. 공부의 과정에서 누구라도 참된 공부를 고심하면서 겪게 되는 개인적 성찰과 시대적인 요구가 조우하는 결과일 것이다.

공부에 대한 해답은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와 세상이 원하는 공부 사이에는 늘 괴리가 있다. 세상의 요구에 부응해야 하는 현실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나는 제대로 된 공부를 따르고자 욕망한다. 공부는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않고 길잡이 역할을 하지도 않는다.

그런 면에서 공부하는 사람은 마치 짝사랑에 빠진 것처럼 혼자 기뻐하고 슬퍼하며 안달복달한다. 하지만 내가 진실한 사랑을 고수한다면 공부도 언젠가는 답을 제시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공부는 지속된다.

이혜진 동의대·영문학

부산대에서 영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의대 교양교육원 강의전담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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