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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한국 대학의 정체
[대학정론] 한국 대학의 정체
  • 논설위원
  • 승인 2002.05.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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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5-22 20:50:03
중세 유럽에 처음 출현한 대학들은 나름의 특징이 있었다. 파리대학은 오늘날 대학의 전형이었고 사립 볼로냐대학은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갔다. 영국의 옥스브리지는 파리처럼 교회가 세웠지만, 학생들이 펠로우들과 콜리지(학료)에서 숙식을 함께 하며 집중적인 개인교수를 받는 독특한 체제였다.

16,17세기 과학혁명은 대학 밖에서 진행됐지만 19세기 영국의 버밍엄, 리즈, 만체스터 등 ‘붉은벽돌대학’들은 산업혁명의 견인차였다. 같은 무렵 훔볼트가 세운 베를린대학의 이념은 ‘고독과 자유’였다. 그는 이해를 초월한 지식을 추구하는 것이 나라의 엘리트를 교육하는 이상적인 방법이라고 믿었다. 베를린대학은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사회에서 초연한 ‘상아탑’ 대학의 모범이었다.

미국의 대학은 영국과 독일 대학의 혼혈이라 할 수 있으나 새 풍토에서 달라진 변종이다. 캠퍼스의 경계는 주 경계라는 말이 있듯이 미국 대학들은 과감하게 담을 헐어버렸다. 대학은 이미 상아탑이 아니었다. 대량 고등교육의 길을 연 것도 미국 대학의 공헌이다. 2차대전이 끝난 뒤 미국 대학은 영국의 ‘유리와 콩크리트 대학’들을 비롯해 전세계의 대학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일본의 대학은 영국, 프랑스, 독일을 본따 만들어졌다. 일제하 한국의 유일한 대학 경성제국대학은 이 유럽형 대학의 성공작이었다. 해방후 개편된 서울대는 미국식 대학으로의 전환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후 한국의 대학들은 모두 미국의 제도를 따랐다. 그러나 내용은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미국 대학의 특색은 엄격한 훈련이다. 학점, 출석, 숙제…모든 것이 상상할 수 없을만큼 가혹하다. 한국 대학은 형식은 미국 흉내를 냈으되 내용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우리 대학은 들들 볶는 교육을 뒷받침할 도서관이나 시설을 갖추지 못했을뿐더러 하겠다는 의지도 없다. 미국에서 공부한 교수들이 돌아와서는 형편없이 부실한 강의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유럽 대학의 매력은 여유있는 분위기와 자율의 존중이다. 차라리 유럽 제도의 장점을 살려 대학을 키워왔다면 지금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우리 대학은 껍데기만 미국 것이고 속은 유럽 같은 느긋한 분위기다. 심하게 말하면 한국 대학은 유럽과 미국의 못된 것을 합쳐놓았다고 할 만하다.

일본과 대만도 그렇지만 우리 대학은 정부의 절대적인 통제 아래 있다. 정부는 학과, 정원, 입시, 학칙 등 모든 것에 간섭한다. 막강한 교육부는 대학을 획일화했다. 외국어대학, 수산대학 같은 특색있는 대학들이 모두 똑같은 종합대학으로 통일됐다. 이제는 돈을 미끼로 졸업학점 축소, 복수전공, 학부제 등을 강요하고 있다. 대학의 자율적인 발전에 따른 다양성이 불가능하게 됐으니 교육부를 없애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정부가 시장논리를 부추긴 결과 대학의 기초학문은 위축될대로 위축됐다. 영어와 컴퓨터만 하면 된다는 인식의 확산은 대학의 본질마저 의심하게 만든다. 반세기전 우리 대학은 학부교육이 비교적 건실했다. 대학교육만이라도 제대로 해야겠다고 이를 악물어야겠다. 대학인들의 책임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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