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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평가의 그늘] 교육에 집중할 에너지가 엉뚱한 곳으로
[대학 평가의 그늘] 교육에 집중할 에너지가 엉뚱한 곳으로
  • 권형진 기자
  • 승인 2010.11.22 14: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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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중순. 조선일보-QS 아시아대학 평가 결과가 발표된 직후 한 지역거점 국립대 기획처장은 이 대학 동문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학문분야별 평가 순위가 일제히 상승했다는 점을 앞에 세웠다. 메일을 보낸 ‘진짜’ 이유는 뒤에 나온다. 국내 종합순위가 지난해보다 한 단계 떨어졌다. 이 처장은 그 이유를 설명하며 국제화와 논문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지난해 이 평가에서 국내 종합순위 20위권 밖에 머물렀던 한 서울 사립대 총장은 대학 홈페이지에 ‘사과’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또 다른 서울 사립대 평가팀장은 “언론사 평가 순위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동문들의 항의가 쏟아진다”라고 하소연한다.
언론사 대학평가의 문제점은 평가 그 자체에만 있지 않다. 대학 운영의 키를 쥐고 있는 총장의 리더십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한다. 대학평가를 실시하는 언론사 스스로 총장 주재로 대학평가에 대한 대책회의가 열린 사실을 자랑할 정도다.


지난 9월 ‘서울 8개 대학 교수협의체 연합회’ 이름으로 언론사 대학평가를 비판하는 성명 발표에 앞장섰던 박진배 연세대 교수평의회 의장(56세, 전기전자공학부)은 “총장이 가장 신경 쓰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언론사 대학평가 순위”라고 말한다. 박 의장은 “총장이 업적을 내세울 때 대개 대학평가 순위를 내세운다. 떨어지면 총장을 공격하는 근거가 된다. 그러다 보니 한 등수만 떨어져도 초상집 분위기”라고 지적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평가지표가 달라지면 대학 전체가 들썩이기도 한다. 중앙일보가 올해 평가에 ‘강의평가 공개 비율’을 반영하겠다고 밝히자 대학마다 경쟁적으로 강의평가 결과를 공개하겠다고 나섰다. 물론 강의평가 공개 자체는 긍정적이다. 문제는 그 방식이다. 박 의장은 “강의평가를 어느 정도 공개했는지 비율로 평가하다 보니 무리하게 공개하고 되고 갈등도 생긴다”라며 “서로 우리는 3년 치를 공개하겠다, 소급해서 공개하겠다고 나서는 등 포퓰리즘에 따른 게 나온다”라고 말했다.


행·재정적 낭비도 무시할 수 없다. 임주택 전국대학평가협의회장(광주대 기획조정과장)은 “대학이 자체적으로 20년, 30년 발전계획을 세워서 추진해 가야 하는데 평가에서 순위를 따지니까 교육에 투자해야 할 돈이 엉뚱하게 지표 관리를 위해 투자되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임 회장은 “학교마다 평가 전담부서를 두고 있고 그 인원도 다른 부서에 비해 많은 편”이라며 “그만큼 다른 곳에 투자할 수 있는 자원과 인력을 온통 평가지표 관리에 낭비하게 되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김정곤 한남대 기획처장(불문학과, 전국대학기획처장협의회장)은 “교육의 본질적인 문제에 집중해야 하는데 그런 곳에 집중하지 못하고 언론사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려 다니면 결국 대학이 표류하게 된다”라며 “대학마다 지향해야 할 방향이 있을 텐데, 모두 언론사 대학평가 순위를 올리는 데 매달리게 되면 결국 다 같은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게 되고, 장기적으로는 대학이 획일화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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