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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다양성에 바탕 … 순위 위주로 평가할 수 없어”
“교육은 다양성에 바탕 … 순위 위주로 평가할 수 없어”
  • 권형진 기자
  • 승인 2010.11.22 14: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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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 대학평가를 평가한다_ ① 총장들이 평가 거부한 이유는?

대학들이 언론사 대학평가에 반기를 들었다. 서울 8개 대학 교수협의체 연합회가 지난 9월 언론사 대학평가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연합회 대표를 맡고 있는 박진배 연세대 교수평의회 의장(전기전자공학부)은 “교수들의 대표가 나온 것이기 때문에 교수들이 다 반대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10월에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가 “서열화하는 대학평가에 협조할 수 없다”는 결의문을 발표했다. ‘전국 대학 총장 일동’이란 이름으로 언론사 대학평가에 거부 입장을 밝힌 사례는 다른 나라에서도 찾기 힘들다. 이에 <교수신문>은 언론사 대학평가의 문제점과 대안을 모색해 보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그 첫 번째로, 대학 총장과 교수들이 왜 언론사 대학평가를 ‘보이콧’하겠다고 나섰는지 들여다  봤다. 대교협 대학평가대책위원장을 맡아 결의문 채택을 이끈 이현청 상명대 총장(62세, 교육학·사진)을 지난 17일 만났다. 이 총장은 “평가해서 서열화한다고 해서 큰 자극이 되고, 그것이 대학을 업그레이드하는 유일한 기제가 되던 시대는 지났다”라며 “큰 메시지는 평가를 하려면 제대로 하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리즈는 앞으로 언론사 대학평가의 구체적인 문제점과 해외 사례, 해결 방안 모색 등을 다룰 예정이다.

◇대교협 대학평가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현청 상명대 총장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평가 전문가 중 한 명이다. <사진제공= 상명대 홍보실>

△ 결의문을 발표한 이유가 궁금하다.

“언론사 대학평가가 처음 도입될 시기에도 대학 총장이나 기획처장들 중심으로 반대 내지 우려를 표명하는 의사 표시들이 있었다. 그런데 언론사 3곳이 하게 되니 대학에 여러 가지 부담이 되지 않겠나.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평가야 여러 기관에서 할 수 있지만 일반 기업체와 달리 교육은 다양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대학마다 특수성이 있고, 대학 내부에도 다양성이 존재하는데 이런 부분을 순위 위주로 평가하는 것은 무리다. 지표나 가중치, 평가 철학,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대학 본연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그런 우려에서 나온 것이다.”


△ 언론사 평가 결과 발표가 모두 끝난 뒤에 결의문이 나왔다. 눈치 본 것은 아닌가.

“작년부터 논의했다. 언론사 평가가 확대되면서 그간 우려해 오던 점을 이사회와 대학평가대책위원회에서 논의했고, 토론과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다 보니 10월에 발표하게 된 것이다. 1995~97년에도 그런 결의들이 있었다. 지속적인 대학의 정서라고 보면 된다.” 


△ ‘서열화하는 평가에 협조할 수 없으며, 순위 발표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대학이 협조하든 안 하든 언론사는 (평가를) 할 것이다. 정보공시제도에 의해 여러 정량지표가 노출돼 있는 상황이다. 대학이 적극적인 자세로 평가에 임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사실 (개별 대학 입장이) 통일될지, 안 될지는 두고 봐야 할 부분이다. 대학에 따라 견해가 다를 수 있다. 서열화에 대한 우려는 많다. 대학이 기능적으로 확연히 구분돼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인 규모나 위치, 학과 특성, 연구역량, 재정 규모, 교수·학생 규모 등 인적·물적 인프라, 사회적 지명도 등에서 상당히 많은 차이가 난다. 획일화된 잣대로 평가하는 그 자체, 그리고 그런 평가 결과로 서열화하는 것은 대학 본연의 임무와 사명을 왜곡시킨다고 보는 것이다.” 


 평가 결과를 대학 홍보에 활용하지 않겠다든가 하는 그런 구체적인 것도 결의됐나.

“총론은 그렇지만 각론에 가 보면 다를 수 있다고 본다. 반대 의견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홍보에 활용하는 곳도 있을 수 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대학에 따라 입장에 차이가 있다. 내가 대학평가대책위원장이라 해서 서열화의 결과를 홍보자료나 정책 입안에 전혀 활용하지 않는다고 단언적으로 애기할 수는 없다.” 


△ 그래도 의미 자체는…….

“대학 자체의 정서는 서열화 평가에 우려를 표명하고 그에 대한 적극적인 협조는 안 할 것이며, 서열화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기본 정서다.”


△ 과거에도 흐지부지된 적이 있다.

“내가 느끼기에 이번에는 정서가 다르다. 우려의 정도가 훨씬 깊다. 언론매체라는 속성상 대학은 약자의 입장이다.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지성인 집단의 리더라면 언론사에서 서열화하지 않고 평가의 지표도 더 다듬고, 대학 본연의 모습과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게 평가하는 자세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은 같을 것이다.”

언론사 평가 거부, 이번에는 정서가 다르다


△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문제인가.

“어떤 평가든 신뢰도와 타당도, 객관성이 생명이다. 그런데 ‘평판도’를 예를 들면, 우리 사회는 특정 대학에 대한 평판이 이미 정해져 있다. 동문들의 활동이나 사회 전반적으로 볼 때 이미 특정 대학이 우수할 수밖에 없고, 많은 득을 볼 수밖에 없는 지표다. 또 하나 문제는 시류를 타는 평가지표나 항목이다. 서열화와 연관돼 매년 평가지표나 가중치가 달라진다. 총점평정방식으로 가고 T점수나 Z점수로 조작하게 되면 평균치에서 멀어지면 0점으로 처리되고 가까우면 원점수대로 가는 문제가 있다. 언론사는 나름 고민하고 오류를 줄이려는 시도일 수 있겠지만 사실 대학 입장에서는 하나라도 있으면 반영해야 하는 게 맞다. 언론사 평가에서 중요한 교육여건의 경우 이미 편차가 존재한다. 변별력은 이미 나와 있는 거다. 거기서 왜곡된 점이 발생한다. 어느 특정 대학이 학생이 줄어드니까 학생 대비 시설 비율이 높아져 점수가 높아진다든지 하는. 교수 확보율도 마찬가지다. 연구실적 위주 평가인데, 연구를 할 수 없는 분야, 예를 들어 문화예술이나 예체능 분야가 많은 대학의 경우에는 말이 안 된다. 공대나 의대가 있는 대학, 특히 생명공학이나 SCI 논문이 많이 나오는 분야를 가진 대학에 유리하게 되는 문제도 있다.” 


△ 종합순위를 내지 않으면 문제점이 없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대학의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 투입과 효율, 산출이 있는데 언론사 평가는 투입 비중이 높다. 교육중심인데 교육여건은 열악한 대학이 있다고 하자. 그래도 산출물이 좋은 과정에 대한 측정이라든지 이런 걸 갖고 평가하고 서열화한다면 괜찮은데 그렇지 않고 획일화하는 것이 문제다. 트랙을 여러 개 만들어 놓으면 된다. 그리고 권장적, 장려적 결과 공유가 바람직하다. 특정 대학이 무엇을 잘한다든지, 그 부분은 잘하는데 나머지는 부족하다든지 해야 하는데 한 잣대로 하면 선의의 피해자가 너무 많다.”


△ 상업적 활용에 대한 지적도 빠지지 않는다.

“조심스러운 이야기다. 일반화해서 광고 때문에 평가한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는 없다. 다만 평가를 하게 되면 대학들이 광고 줄 때 신경은 더 쓰지 않겠나. 꼭 그것(대학평가) 때문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매년 다른 잣대 … 어느 장단에 춤춰야 하나


△ 대학 운영하는 데에도 영향력을 미치나.

“평가에 여러 문제점이 있는데도 결과가 나오면 대학 구성원들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작년에 비해 올해는 어떻게 됐느냐에 따라 책임 문제가 제기될 수 있고, 운영에 결함이 있었다는 비판도 있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평가 지표에 관심을 갖고 운영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될 수도 있다. 그랬을 경우 평가 지표나 평가 그 자체가 대학의 정책과 앞날을 리드하고 결정짓는 역할을 하는 것이 돼 버려 현장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있는 것이다. 분명한 철학을 가지고 평가한다면 모르겠지만 매년 다른 잣대로 이뤄진다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나.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고. 대학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양질의 교육을 하는 곳이다. 그런 교육을 하기 위해 교육여건을 만들고 교수도 확보하고 연구도 하는 것이다. 그런 소산물로 평판도도 있는 것인데, 주객이 전도되는 평가를 한다면 대학의 설립 목적이나 발전 계획을 가지고 장기적으로 갈 수가 없다. 


△ 총장 입장에서 실제 느끼는 영향력은 어느 정도인가.

“아무래도 영향을 많이 받는다. 재단이나 구성원이나 평가 결과가 안 좋으면 시선이 곱지 않을 수 있다.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정책을 수립하거나 장단기 발전계획을 수립할 때에도 의식 안 할 수 없다.”

 
대학평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평가 주체가 다양화되고 있다. OECD나 유네스코 등 세계적 흐름을 보면 ‘질 보장’이 핵심 화두다. 어떤 질 보장이냐.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인재’로서의 질 보장이다. 그런 틀로 평가 철학을 잡아야 한다. 동시에 평가다운 평가를 해야 한다. 전문가 집단에 의해 전문가다운 평가를 해야 한다. 단기적이고 변화무쌍한 평가보다는 본질적인 대학의 질과 연구, 봉사 능력을 평가해야 한다. 두 번째, 서열화 문제는 부적 서열화와 정적 서열화가 있는데 정적 서열화로 가야 한다. 대학의 특성화와 다양성을 유도하고 본질을 왜곡하지 않는 평가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언론에서 평가하면서 늘 중요시하는 것이 공시, 공유, 투명성, 그리고 평가 주체 자체가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소위 이해관계가 있는 집단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 논리다. 그걸 담보하는 평가 틀이어야 되는데, 언론사 평가는 거기서 자유로운가.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좋은 해법은, 진정한 의미에서 대학교육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도록 평가 주체들 간에 역할 분담을 했으면 좋겠다. 우후죽순처럼 잣대 들이대고, 여기는 이 잣대로, 저기는 저 잣대 들이대서 대학을 갈팡질팡, 상처투성이로 만들면 안 된다.”


△ 평가주체들 간의 역할 분담이라고 하면…….

“소위 말해서 대학 발전에 꼭 필요한 핵심지표가 있다. 이 부분은 공유해야 한다. 여기서 벗어나 다른 것을 측정하고 재지 말고. 결과도 공유해야 한다. 그리고 수요자 중심으로 평가해야지 공급자 중심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수요자에는 기업, 사회, 학생이 있겠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 평가 수요자는 대학 그 자체다. 그 점을 감안하라, 이거다. 지금은 대학은 어디 가고 없고 나머지만 갖고 하니까 대학 본질을 왜곡하는 경우가 많다.”


대교협 평가인증 시스템이 대안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지도 관심사다. 

 “어떤 평가든 100% 완벽하거나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평가는 없다. 그렇지만 가능한 한 측정할 것을 측정하는 평가, 그럼으로써 대학의 질과 경쟁력을 높이는 평가로 가야 한다. 그 결과가 서열화만이 답이냐에 대해 신중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대교협 평가는 진정한 의미에서 대학을 수요자로 보는 평가가 돼야 한다. 또 세계적 질 관리, 질 보증에 대한 평가, 평가에 대한 다양성, 대학이 고민할 수 있는 평가, 장단기 발전을 추구하는 데 보탬이 되는 평가로 가면 된다. 그런 것들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 평가가 제대로 되겠느냐, 회의도 있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그런 우려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금은 이미 대학이 위기다. 평가를 안 해도 대학 스스로 생존에 너무 민감하다. 서열화한다고 해서 큰 자극이 되고, 그것이 대학을 업그레이드하는 유일한 기제가 되던 시대는 지났다. 더구나 정보공시가 시행되면서 하드웨어적인 부분이나 교육여건은 모두 공포되고 있다. 순위 평가 결과 못지않게 대학이나 총장이 민감해 한다. 작년보다 지표가 나아졌는지, 전국 위상이 어느 정도 되는지 스스로 체크하고 고민하고 있다. 구태여 다시 ‘확인 사살’ 하지 않아도 된다. 그것도 왜곡된 모습으로. 다만 대교협 평가는 국제적 틀 속에서의 위상, 이런 점을 고민하면 충분하지 않나 생각한다.”


△ 마지막으로 당부할 게 있다면.

“예전에는 대학을 비판할 때 ‘학위 공장’이라고 했다. 요즘은 ‘평가 공장’이 됐다. 평가가 범람한다. 교통정리가 돼야 한다. 대학의 입장에서 보면 에너지 낭비, 재정적 낭비일 수 있다. 교육개혁에 보탬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신뢰성과 객관성을 담보하는 평가, 이런 부분도 더 정교하게 다듬어져야 한다. 글로벌 시대에 세계적인 평가 틀과 연계될 수 있고, 평가 네트워크를 통해 대학의 부담을 덜면서 진정한 의미에서 교육의 질을 업그레이드하는 평가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평가 주체들 간의 함의와 합의를 거쳐서 하는 것이고, 언론사도 동참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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