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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어떤 신문을 읽고 계십니까?
[원로칼럼] 어떤 신문을 읽고 계십니까?
  • 송상용 한림대 명예교수·과학사
  • 승인 2010.11.02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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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신문에 실린 글을 읽었다. 요새 어느 신문을 보느냐고 묻는 것은 실례라고 한다. 읽는 신문에 따라 보수인가 진보인가가 드러나기 때문이란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극단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신의 정치적 경향을 떳떳이 밝히기를 꺼리는 것은 곤란하다. 마찬가지로 고향, 종교를 묻는 것 또한 예가 아니라는 주장도 수긍할 수 없다. 교사가 불이익이 두려워 전교조 조합원임을 숨기는 것은 좀 다른 문제일지 모르나 나 같으면 당당히 드러내겠다.


나는 집에서 <동아일보>와 <한겨레>를 본다. 비행기를 탈 때나 사 볼 때는 <경향신문>, <한국일보>, <서울신문>을 집는다. 우리 집에서는 1930년대부터 <동아일보>를 봤다. 한국전쟁 때는 쌓여 있는 묵은 신문에서 유진오의 장편소설 『화상보』(1939)를 읽었다. <한겨레>가 창간을 준비하고 있을 때 나는 영국에 있었다. 아내가 두 사람 몫으로 출자해 주주가 됐다. 귀국하자마자 송건호 사장을 찾아가 축하의 뜻을 전했다.


학생 때인 1950년대에는 <동아일보>와 함께 문화면이 볼 만 했던 정부기관지 <서울신문>과 중립을 표방한 <조선일보>를 잠시 보기도 했다. 새로 나온 <한국일보>도 오래 봤는데 장기영, 천관우, 홍승면의 글에 반했다. 지적인 분위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좋아했던 선우휘가 삼선개헌 이후 박정희에게 협조하자 환멸을 느껴 안 보게 됐다. <중앙일보>는 한비의 사카린 밀수사건 때문에 삼성에 대한 인상이 나빠 성균관대 교수가 된 뒤에도 보지 않았다.


부산 정치파동 이래 오랫동안 대표적인 야당지는 <동아일보>였다. 1975년 <동아일보>에 광고가 사라지기 시작했을 때 나는 크게 흥분했다. 격려광고를 냈고 노조 간부로 싸운 후배들을 도왔다. 언론 자유를 위해 싸우던 <동아일보>, <조선일보> 기자들이 모두 쫓겨나자 나도 두 신문을 안 본다는 성명에 서명했다. 33년 만에 진실화해위는 <동아일보> 사건에 대해 중앙정보부 등 국가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결정하고 국가와 동아일보사에 해직자들에게 사과하고 적절한 조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동아일보>는 아직도 사과하지 않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민주화가 이루어진 뒤 <동아일보>는 진보 정부들과 사이가 나빴다. 그동안 거대 언론기업이 된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사사건건 김대중 정부를 물고 늘어졌고 세무조사 등 탄압도 받았다. 특히 노무현 정부는 5년 내내 조·중·동과의 싸움이 힘에 겨웠고 무리수도 두었다. 유일한 예외는 노무현이 황우석을 띄웠을 때 조중동이 앞장 선 것이다. <한겨레>도 제2창간운동에 황우석을 대표로 모신 희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때 <중앙일보>는 내 글 ‘노무현과 황우석’을 한 자도 고치지 않고 실어 주었다. 진보 집권 10년 만에 이명박 정부가 태어난 데는 조·중·동의 공로가 컸다.


매일 여당지 <동아일보>와 야당지 <한겨레>를 차례로 읽으면서 이렇게 다를 수 있나 하고 감탄할 때가 많다. 오늘 아침 환율전쟁을 수습한 G20 경주회의를 다룬 두 신문의 머리기사는 ‘경주 대타협’과 ‘불안한 봉합’이다. 물론 나는 <한겨레>를 읽을 때 마음이 더 편하다. 그러나 보수화된 기성층 다수가 읽는 신문의 주장도 알아야 한다. 세종시를 둘러싼 전쟁, 무상급식 등 복지논쟁 다 좋다. 문제는 파국으로 치닫는 남북관계, 환경재앙을 가져올 4대강 사업을 정부가 고집하고 보수신문들이 이를 지지하는 것이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끈질기게 대북정책과 4대강을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보수지에는 정부 정책의 문제점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한쪽 신문만 봐서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하다.


 나는 영국에 살 때 <가디언>을 구독했지만 라운지에서 <타임즈>, <인디펜던트>, 심지어 <데일리 텔리그라프>도 들추어 보았다. 영국 신문들은 저마다 색깔은 있어도 우리처럼 심한 편향은 없다. 독자들은 여러 가지 의견에 접하게 되고 타협의 길도 열린다. <한겨레>가 시민편집인을 둬 자기비판을 하고 오피니언란에서 다양한 의견을 보여 주는 것을 평가한다.

송상용 한림대 명예교수·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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