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09:25 (토)
[學而思] 탈근대 시대와 일본연구
[學而思] 탈근대 시대와 일본연구
  • 최관 고려대·일어일문학과
  • 승인 2010.11.01 18: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올해 2010년은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 4·19혁명 50주년, 한국전쟁 60년, 일제강제병합 100년이라는 근대사의 큰 획을 긋는 사건을 되돌아보는 기념비적인 해라 할 수 있다. 아직도 분단의 아픔은 계속되고, 광주의 상처가 완전히 아문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100년 전에 비하면 놀라운 국가 발전을 이루어 국치의 치욕에서 조금은 벗어난 것 같다.

일본과 관련해 말하면, 최근에는 일본이라는 벽을 넘어 세계로 나아가려는 자신감이 넘쳐나고, 일부에서는 일본 경시 경향마저 나타나고 있다.
몇몇 분야에서 굴지의 일본회사를 능가했다는 보도를 접하고, 한류 스타에 열광하는 일본 팬들을 보는데도 익숙해지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무역 불균형구조는 심화돼 대일무역 적자액은 매일 약 800억원 정도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양면을 동시에 바라보며, 일본연구자로서 올 일년이 갖는 의미를 어떻게 살려야할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늘 그러하듯 결론은 다시 기본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한국은 인접 강대국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온 반도국가이다. 중국, 일본, 러시아 등에 대한 이해와 연구는 우리의 생존 및 번영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음을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이웃나라에 대해 연구가 얼마나 축척돼 있는가. 한일관계사 2천년 동안 일본을 제대로 연구해본 적이 있었는가.

전 민족이 수난을 당한 임진왜란을 겪고 난 다음에도 일본연구는 성립되지 못했고, 대학자 정약용조차도 일본의 유학서를 보고 문(文)이 발달했으니 더 이상 이웃 조선을 침략하지 않을 것으로 낙관할 정도였다. 그리고 다시 일제강점이라는 초유의 치욕을 겪고 나서도 연구자들조차 일본을 연구 대상으로 인식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세계에서 일본어 학습자가 가장 많으면서도 일본어는 타 분야 이해를 위한 도구로서 간주되고 심도 있는 일본이해와는 연결되지 않았다. 근자에 글로벌시대를 맞이해 지역연구의 필요성이 확산되고, 특히 동아시아로 세계의 중심축이 옮겨오면서, 일본연구도 그 중요성을 인정받게 된 것은 뒤늦게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깊은 것은 좁은 것이다’는 인식하에 세분화된 특정 분야만을 천착하는 일본식 학문 풍토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동안 일본의 방법론을 그대로 적용하려 했지만 큰 진전이 없었고, 특히 자료를 중시하는 고전연구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실패가 예견돼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사이 100개를 훨씬 넘는 일본관련 학과, 30여개의 일본관련 학회, 10여 곳의 일본관련 연구소가 설립돼 양적인 성장을 이루었다면, 이제는 일본형의 답습에서 새로운 연구방법론 지향으로, 양적 팽창에서 질적 모색으로, 커다란 방향전환을 해나갈 때가 된 것이다. 새로운 상황에서는 일본연구도 ‘깊은 것은 넓은 것이다’는 인식하에 좀 더 보편적이고 종합적인 연구가 인정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SCI나 A&HCI의 논문만을 주된 평가기준으로 삼고 있는 국내 현실에서, 그러한 저널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은 일본어문학 연구를 비롯한 동아시아 인문학 분야가 받고 있는 소외와 불리함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연구방법론의 도출을 향한 발걸음을 멈출 수 없는 것이 외국연구자의 숙명이 아닐까. 

다행히 고려대 일본연구센터에서는 인문한국(HK)사업에  해외지역연구사업단에 선정된 것을 계기로, 2010년을 일본연구의 전환기로 생각하고 여러 작업을 추진해왔다. 봄에는 1년 동안의 일본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대한 동향을 정리한 「재팬 리뷰 2010」을, 여름에는 국내 130명의 연구자가 공동 집필한 「일본 문화 사전」을 국내 최초로 간행했고, 가을에는 만주, 대만 등의 식민지 문학과 비교·고찰하는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일본연구도 한일관계의 특수성에 입각한 주체적인 연구에서 더 나아가, 해외 연구자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그들도 인정하는 보편적이고 국제적인 연구, 탈근대시대에 적합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연구풍토를 조성하는데 일익을 담당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최관 고려대·일어일문학과
필자는 도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일본어문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 고려대 일본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