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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추론
잘못된 추론
  • 교수신문
  • 승인 2002.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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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어둠은 투명함의 끝에 숨어서 끝없이 달려드는 빛을 집어삼킨다. 사라지는 빛이 남긴 뿌연 자국만이 깊은 바닷속임을 짐작하게 하는데, 지느러미를 움직이고 있는 물고기 한 마리가 화면을 가득 채운다.

자세히 보니, 그물이 물고기의 사방을 가로막고 있다. 흔들림은 일어나지만, 물고기는 나아가지 않는다. 나아가지도 돌아가지도 못하는데, 물고기는 지느러미를 쉬지 않고 움직인다. 도대체 저 큰 물고기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꽤나 굵게 뿌리던 봄비가 잦아드는 옛 도읍의 아침, 작은 새 몇 마리가 빗방울 지는 공중을 여기저기 뒤적이더니 떠나가 버렸다. 나는 창가에서 허기를 느끼면서, 같은 풍경을 벌써 몇 번이나 보았던가 생각했다. 그러자 어느 곳에선가 같은 풍경을 보고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모습이 여러 장 겹쳐졌다. 그리고 무심코 고개를 돌렸을 때, 그물에 갇힌 물고기가 밝게 비쳤다. 누군가 버린 폐어망 속에 대구가 홀로 자라고 있습니다(포항MBC, 2002년 5월). 그건 하나의 메시지였다. 삶의 의미를 파괴해 버린 의도하지 않은 폭력에 대한 경고였다.

그러나 사변만을 일삼는 자는 대구가 폐어망 속에 어떻게 들어가게 됐는지가 더 궁금했다. 그의 추론이 한창인데, 파괴당한 자연은 숨을 쉬며 끈질긴 생명을 이어간다. 물의 흐름과 물고기의 생태에 대한 추론이 끝나고, 그는 어망에 갇힌 물고기가 소심했다는 결론만을 내린다. 홀로 자라고 있던 물고기는 자신의 소심함을 반성했을까. 그의 추론은 다소 엉뚱하게 이어진다. 운동의 상대성에 대한 지식을 깨우치지도 못하고 자신의 어망이 어딘가에 걸려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도 못한 물고기에게 세계의 시작은 어디며 세계의 끝은 어딘가. 어리석게도 물고기는 그물에 걸린 거대한 바깥세계를 자신의 지느러미로 움직이려고 하고 있지는 않은가. 물고기가 그에게 눈을 돌리면서 말했다. 그대, 생각에 갇힌 자여, 생각에서 깨어나라.

갑자기 전율이 그의 온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어둔 바다 속, 무리들로부터 단절된 채 홀로 어망 속에 갇혀 자라난 물고기가 한없이 빚어내는 텅 빈 무한우주가 그에게 밀려왔다. 고통을 안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삶은 그에게 잔인했다. 하지만 물고기에게 생명은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잔인한 것이었다. 때로 생명은 삶을 속이기조차 했다. 물고기는 아직도 어망 속에서 쉬지 않고 지느러미를 움직인다.

어망을 벗기자 다 자란 대구는 어둠 저편으로 사라졌다. 나는 어디에서부터 어긋났는지 알지 못하는 추론을 접고 방을 나섰다. 나의 뒤에는 여전히 나를 가둘 생각이 따라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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