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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인 나는 학생들에게 얼마나 윤리의식을 강조할 수 있을까
선생인 나는 학생들에게 얼마나 윤리의식을 강조할 수 있을까
  • 한경훈 고려대·심리학
  • 승인 2010.10.11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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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상류사회 즉 귀족계급의 도덕적 의무와 책임감을 뜻하는 말이다. 유래는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평민보다 솔선수범하고 절제된 행동으로 국가의 초석을 다진 것에서 시작됐다. 현재도 왕족과 귀족이란 계층이 존재하는 유럽국가의 귀족은 그들이 누리는 해택만큼의 의무가 지워진다. 실제,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2세 역시 2차 대전 당시 장교로, 엘리자베스 현 여왕도 19세의 나이로 2차 대전 때 영국 여자국방군에서 운전병으로 복무했다. 여왕의 차남인 앤드류 왕자 역시 1981년 해군 헬리콥터 조종사로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맞붙은 포클랜드 전에 참전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제는 서구 사회에서만 엿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역사에서 나타나는 양반문화와 선비정신에서도 찾을 수 있다. 백성들의 아픔을 진정으로 느끼고 그들을 위해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정신은 청렴과 배려를 중요시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희승의 ‘딸각발이’에 나오는 남산골 샌님의 고지식함과 절개는 사회의 지도자로서 갖추어야할 기본적 조건이었다.

지금은 계급사회가 아니지만, 사회의 지도층에게 이러한 우리의 전통적인 덕목을 요구하는 것이 무리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의 윤리적·도덕적 귀감이 돼야 하는 공직자들에게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보이지 않고 공직자의 가장 기본인 공정성조차 찾아볼 수 없다. 우리는 이 아픈 현실을 청문회나 국정감사를 통해 자주 보아왔지만 그래도 한 편에서는 ‘설마 나랏일을 할 때는 안 그러겠지’라는 속절없는 믿음을 가지기도 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딸의 특혜 채용 사건과 외교통상부 내에서의 채용 및 인사 특혜 논란을 보면서, 설마라는 믿음에 대한 배신감이 크게 다가왔다. 특히 실제 이 자리에 지원한 사람들에게는 더 큰 상실감과 분노 그리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을 것이다.

외교통상부의 전문계약직 특별채용이라는 제도는 3차에 걸쳐 치러지는 외무고시와 다른 방법으로 외교통상부에 필요한 전문 외교인력을 선발하겠다는 취지에서, 각 직종에 해당하는 수준의 경력 소지자를 대상으로 2000년대부터 시행된 제도이다. 이는 국제변호사나 박사, 어학우수자 및 해당 분야에 실무경력이 있는 자를 선출함으로써 다양한 분야에 전문적인 인력을 공급한다는 긍정적인 제도였다.

필자 역시 외교통상부의 이러한 선발제도를 전문 지식인들에게 기회가 되고 전문외교로 나아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긍정적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기회마저 없어질 위기에 서 있다. 또 다른 다양성과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좋은 제도가 존폐 위기에 놓여 있게 됐다. 좋은 제도를 이용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상류층 즉 고위 공직자나 기득권층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들에게 노불리스 오블리주를 바라지도 않지만 공직자의 가장 기본인 공정성과 도덕, 윤리의식은 갖추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제 그들은 사회 龜鑑이 되기는 고사하고 境界의 대상이 되고 있다. 노력하고 성실하게 살아서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는 이 나라의 미래인 젊은이들에게 상실감과 부정적 세계관을 안겨줄 수 있다. 취업난은 점점 가중되고, 공직자의 사회적 부조리는 만연하고 있는 사회에서 진정한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가. 또 잘못을 하고도 진정으로 반성하는 모습조차 볼 수 없는 사회 분위기에서 선생으로서 나는 학생들에게 얼마만큼의 도덕과 윤리의식을 강조할 수 있을지 물음을 갖게 한다.

한경훈 고려대·심리학

한경훈 고려대·심리학

 

한경훈 고려대·심리학

2009년부터 고려대 행동과학연구소 연구교수로 있다. 독일 뮌헨대에서 박사를 했다. ‘기억/알츠하이머성 치매’를 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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