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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연구의 자유와 생명윤리
[대학정론] 연구의 자유와 생명윤리
  • 교수신문
  • 승인 2000.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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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2-18 11:42:18
[대학정론]

연구의 자유와 생명윤리

지난 달 과학기술부에서 한시적인 생명윤리자문위원회를 발족시킨 데 이어 보건복지부가 생명과학 보건·안전 윤리법 시안을 발표해 파문이 일고 있다. 인간복제를 금지하고 유전자치료를 엄격히 제한한 시안에 대해 시민단체와 윤리학자들은 대체로 환영하는 편이나 과학자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공청회에서 한 과학자는 위험하다고 시작단계의 연구를 못하게 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주장했다. 어느 변호사는 학문연구의 자유가 절대적인 기본권리이며 이 기본권은 국가가 보호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과연 연구의 자유는 신성불가침일까?

이런 주장의 뿌리는 깊다. 과학자들은 과학과 윤리가 별개의 문제라는 생각을 해 왔다. 그리고 그 바닥에는 과학이 중립적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다. 과학자들은 훈련받을 때부터 과학은 순수하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들이 탐구하는 자연법칙은 인종, 정치, 종교, 계급에 무관하게 타당하다고 믿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은 가치와 무관한 중립적인 것이 된다.

순수과학의 이념은 3천년 가까이 건재했다. 과학은 근대 이후 윤리와 담을 쌓으려 노력했고 기술과 가까워진 다음에도 놀랄 만큼 순수성에 집착했다. 그러나 과학을 인간활동의 체계로 본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모든 인간활동은 도덕적 평가를 받게 마련이다. 자료수집은 선택적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선택자의 가치판단이 끼여들게 된다.

순수과학은 1930년대에 소련과 독일에서 정치권력에 의해 무참히 파괴되었다. 2차대전 때 과학자들은 모두 군사연구에 참여했고 원자폭탄 개발에 동원된 미국 과학자들은 모두 기술자로 변신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순수과학과 연구의 자유를 계속 얘기한다면 잠꼬대가 아니고 무엇인가.

연구의 윤리는 1970년대에 생명과학에서 극적으로 제기되었다. 버그는 재조합유전자 기술의 위험을 깨닫고 안전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연구를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75년 애실로마회의에서 재조합유전자 연구의 중지를 둘러싸고 격론이 벌어졌다. 그 결과 여러 나라들은 재조합유전자 실험지침을 만들어 연구에 대한 규제를 하고 있다.

지금 한국의 생명공학은 다급한 상황이다. 생명윤리자문위원회가 이제 막 출발했고 아무런 규제입법도 되어 있지 않은데 연구가 앞서가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드러난 것만 보아도 두가지 연구는 배아복제와 관련된 매우 민감한 것이다.

인간의 개체를 복제하는 것이 용납될 수 없다는 데는 세계적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다만 연구를 위한 배아복제를 허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뜨거운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영국이 배아복제를 인정했고 다른 나라들도 부분적으로 규제를 완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허용할 경우에도 까다로운 조건을 붙이는 등 신중을 기하고 있는 것이 선진 제국의 경향이다.

이제 연구는 다 했다는 과학자들의 불평 속에 보건복지부의 법안은 던져졌다. 과학기술부는 생명윤리자문위원회의 논의에 따라 보건복지부와 협의조정을 해야 할 것이다. 21세기 첫 해는 정부, 학계, 시민단체가 머리를 맞대고 생명윤리의 첫 관문을 무사히 통과하느냐를 판가름할 역사적인 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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