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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학문연구와 자본의 논리
[대학정론] 학문연구와 자본의 논리
  • 남송우 논설위원 /부경대·국문학
  • 승인 2010.09.24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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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송우 논설위원 /부경대·국문학
지금 우리의 학문연구는 자유로운가. 이는 학문의 본질인 자유가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가 라는 질문과 같다. 나는 결코 아니라고 답한다. 현재 대학구성원들이 관여하고 있는 많은 연구들이 직간접적으로 자본의 논리와 국가의 정책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대형국책사업인 경우, 학문 연구의 영역과 내용은 국가 정책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이는 연구를 위한 정부의 연구비가 한국연구재단에 의해 많이 집행되고 있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소위 연구를 관리하는 기관이 생겨나는 것은 학문연구를 진작하기 위함인데, 정말 학문의 진작이 실현되고 있는 것인가 라는 질문을 냉정하게 해보아야 한다. 객관적으로 발표되는 논문의 수치는 연구비의 사용만큼 늘어나고 있지만, 연구의 결과를 두고 볼 때, 진정한 의미의 학문의 자유가 신장되고 있는가를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자본의 논리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는 제도 속에서 학문 연구의 역사는 갈수록 자본에 예속돼가는 ‘종속사’를 계속하고 있다. 이는 연구에 연구비가 필요 없다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의 연구의식이 학문연구의 본질인 자유성을 거의 몰각하는 분위기로 전락하고 있음에 대한 자괴감의 발로이다.

이러한 현실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대학의 사회적 기능이 강화되면서, 학문연구에 필요한 재정적 지원을 하는 주체에 대학이 종속되기 시작한 것이다. 중세 이후 대학은 교회와 국가 권력으로부터 학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갈등의 역사를 기록해 왔다. 특히 인문사회 영역의 연구에서는 이러한 학문의 자유를 최고의 미덕으로 삼았다.

그러나 지금의 대학들은 학문의 자유라는 고전적 명제를 폐기처분한 지 오래 된 것 같다. 모든 대학들이 국가가 제시하는 정책에 따른 과제들을 어떻게 하면 따 낼 수 있을지에 혈안이 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연구재단이 관장하고 있는 BK21사업, HK사업, SSK사업 등에 대학들이 그 동안 얼마나 목을 매고 있었는지를 살펴보면, 이는 명징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사업을 통해 세계적인 연구소를 육성하고, 학문후속세대를 키우고, 부실한 인문사회영역의 연구를 진작시켜보겠다는 의지 자체를 문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 방법이나 발상이 학문연구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어, 문제라는 것이다.

학문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본질은 자유와 자기반성적 사유의 견지이다. 학문연구에서 자유란 학문의 역사를 이루어온 근원적 힘이며 바탕이다. 학문연구에서 자유는 온당한 연구를 추동하는 근원적 힘이며 토대라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학문연구를 추동하는 힘은 자유가 아니라, 자본이 돼 버렸다. 지금에 와서 학문연구의 자유를 논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인문사회과학 연구의 현황을 우리가 냉정하게 바라보면, 이는 분명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거개의 모든 연구의 출발이 이 연구주제를 통해 연구비를 얼마나 수혜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런 동기에서 출발하는 연구이기에 연구가 학문의 자유성에 기인한다는 이 근원적 명제를 고려할 틈이 없다. 오직 주어진 연구과제를 빨리 정리하고, 다음 연구과제를 향해 매진해야 하는 자본의 논리에 옥죄어가는 형국만 펼쳐지고 있다.

한 예로 HK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전임연구원들과 교수들의 현재 연구상황이 어떠한 지를 확인하면 된다. 주어진 기간 안에 마무리해야 하는 연구 논문을 완성하기 위해 질주하다보니, 자신이 추구하고 있는 연구주제에 대한 근원적 사유와 자기반성적 사유를 기대하기 힘들다. 학문의 길에 들어선 이들에게 학문의 본질인 학문의 자유성을 경험할 자리를 마련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학문연구를 위해 모인 해석공동체라 할 수 있는 학회들은 어떠한가. 한국연구재단이 관장하고 있는 학회지 등재제도가 생기고 난 이후로 우리의 학문 수준은 나아진 것일까. 수치로 보면 나아진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수치만큼 학문의 자유가 신장된 것일까. 학회들마다 연구윤리의 문제로 내홍을 겪고 있는 오늘의 현실은 학문 연구의 자유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함이다. 학문의 자유와 연구 윤리의식은 정비례하기 때문이다.

남송우 논설위원 /부경대·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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