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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생명 연장과 삶의 성찰성
[學而思] 생명 연장과 삶의 성찰성
  • 박형준 동아대
  • 승인 2000.12.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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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2-18 11:41:26
박형준/동아대·사회학
시간에 대한 관념은 시대와 사회마다 크게 다르다. 요즘이야 표준화된 시계시간이 전 세계인들의 생활을 일관되게 조직하고 있지만,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심지어 근대의 여명기에 수학자 세네카는 사람들의 시간을 통일시키는 것은 철학자들의 의견을 통일시키는 것만큼 어렵다”고 실토한 적도 있다. 시계 시간에 의한 삶의 표준화야말로 근대를 낳은 혁명적 계기였다. 하지만 시계시간 아래서도 시간의 사회적 의미와 실존적 의미는 동일하지 않다. ‘시간의 사회학’이 흥미를 끄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간의 사회학이란 관점에서 볼 때 근래에 삶의 길이가 크게 연장되고 있는 것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혁명적인 변화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생명공학과 의학 발전 덕분에 또는 각종의 건강 기법의 도움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성찰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습성이 됐다. 다양한 건강식품과, 조기 운동모임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한의사의 방송강연에 이르기까지 건강 담론과 행동은 이미 우리 생활의 중심부에 자리한다. 부르디외의 용어로 말하자면 생명 연장을 위한 아비투스가 현대인의 주요한 상징이자 속성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평균 수명 80대가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니게 됐다. 일본은 이미 여기에 도달했다. 그것도 골골하는 비정상인으로서의 80대가 아니라 활기찬 정상인으로서 80대인 것이다. 예전에는 환갑이 지나면 노인으로 간주해 부양 대상으로 여겨졌지만, 이제 60대 70대는 생활과 일에서 소외될 이유가 전혀 없는 ‘젊은 노인들’이다.
생애 주기가 80년 이상이라고 생각해보자. 요즘 같은 세월에는 직장인이 50살에 퇴직하는 경우도 흔한 일이다. 60세까지 일한다 하더라도, 학교 졸업 이후에 자기 책임 하에 살았던 세월만을 계산한다면 20년에서 30년 정도인데 그 만큼의 세월을 더 건강한 육체와 함께 살 수 있는 것이다. 이 긴 시간을 무위도식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시대는 바야흐로 개인주의 시대이다.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해 더 많은 책임을 부과하는 시대인 것이다. 생애 주기에 대한 계획과 이를 성찰적으로 관리할 것(늘 되돌아보고, 반성하며, 개선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이 개인주의 시대는 날로 크게 요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하이데거 말대로 ‘세계 내에 홀로 던져진’ 자아의 무게는 더욱 커진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의미롭게 사는 방법은 무엇인가? 밀레니움의 문턱에서 누구도 이런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생애가 연장되면 그 만큼 삶의 드라마도 幕이 많아지는 법이다. 그래서 ‘인생은 강물이 아니라 바다’라 했던 괴테의 말에 새삼 머리를 끄덕이게 되는지도 모른다. 며칠 전 유학까지 갔다 와서 노숙자 신세로 전락하여 초콜릿을 훔치다 잡힌 ‘21세기판 레 미제라블’을 눈앞에서 보고 있지 않은가. ‘자아’가 강해져서든지 경쟁이 격화되서든지 가정 직장 공동체 등에서 순탄함보다는 격동을 겪을 개연성은 훨씬 높아진다. 이런 격동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은 생의 후반부에 들어갈수록 더 많이 요청된다.
국가나 사회가 이 문제의 무게를 결코 가벼이 취급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일본이 10년 전쯤부터 모든 국가 정책에서 가장 주요한 의제로 ‘고령화 사회에 대한 대비’를 꼽고 있는 것은 의례적인 것이 아니다. 노인 문제로 상정하지 않고, ‘고령화 사회’로 포착하는 것 자체가 문제 인식의 깊이를 보여준다. 물론 노인 복지나 노인을 위한 사회 인프라 구축도 대단히 중요하지만, 사회 생활의 모든 부분에서 ‘젊은 노인’들이 ‘왕따’를 경험하지 않고, 생애 주기에서 3분의 1에 해당되는 이삼십년을 어떻게 의미롭게 보내게 할 수 있는가가 사회적으로 붙잡아야 할 화두로 자리잡은 것이다.
여기서 제도의 마련도 중요하지만, 담론의 힘도 그 못지 않게 중요할 것이다. 경제적 이익만을 쫓을 것이 아니라, 정말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의미로운 일을 할 수 있는 인생의 후반부에 대한 자기 계획을 안내하고 지원해주는 담론, 생애주기에 대한 통상적 ‘시간 관념’을 과감히 버리고 새로이 조직하도록 도와주는 담론들이 요긴한 것이다. 이런 삶에 대한 성찰력을 키워주는 담론들의 생산이야말로 생명 연장 시대의 사회학과 인문학에 대한 시대의 요청이 아닐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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