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9 03:35 (월)
무엇이 한국사회학을 장기불황에 빠지게 만들었나
무엇이 한국사회학을 장기불황에 빠지게 만들었나
  • 우주영 기자
  • 승인 2010.08.31 10: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비판사회학회, '한국 사회학자들의 역할 정체성 혼란' 논문

한 젊은 사회학자가 국내 사회학계의 병폐를 조목조목 파헤쳐 화제다. 선내규 서강대 박사(사회학)의 이 과감한 논문은 지난 16일 비판사회학회(회장 정근식 서울대)와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소장 류석진)가 공동 주최한 학술대회를 통해 발표됐다. 지난 40년간 한국 사회학자들이 수행해 온 자기성찰적 논의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이런 논의들이 지닌 비사회학적 특성의 실체를 밝혔다. 뿐만 아니라 국내 사회학자 36명을 대상으로 자신의 역할 정체성과 학술문화에 대한 평가를 설문조사를 통해 정리했다. 사회학자들 스스로가 내리치는 국내 사회학계의 자기 비판은 뼈아팠다.

사회학자 36명 대상으로 정체성 분석

 선 박사는 1960년대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한국 사회학의 자기성찰적 논의들을 크게 ‘학술적 전문성과 학계의 자율성’, ‘사회학의 현실 적합성과 연구자의 현실참여’, ‘이론 및 방법론의 탈식민화’로 요약했다.

 특히 선 박사는 한국 사회학의 현실부적합성과 대외종속성에 주목했다. 특정 장에 속한 성원으로서 자신들이 속한 집단만을 객관화하지 못했던 한국 사회학자들의 비성찰성의 원인으로 지적됐다. 자기 순환적 논증의 폐쇄회로를 벗어나지 못하다 보니 사회학의 어떤 이론이든 서구의 이론적 개념에 의해 ‘가공된’ 우리 역사 안에 정주하고 있을 뿐이란 것이다. 서구 종속성에서 탈피하기 위한 관건은 ‘이론적 생산수단’의 개발이다. 선 박사는 “국제 사회학 공동체에서 소통이 가능하려면 사회학자들이 영어란 언어가 아닌 사회학자들이 공유할 수 있는 이론적 생산 수단을 통한 번역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와 함께 과연 ‘우리의 자생적 이론 만들기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 되묻는다.

 한국의 사회학자들이 서구의 사회학자들을 자신의 직장동료보다 더 가까운 우리로 느끼는 것은 잘못인가. 선 박사는 이 어처구니없을지 모르는 질문을 구부려 학자들의 학술적 세계에서 규정된 ‘우리’의 개념을 전복한다. 우리의 자생적인 이론 만들기 문제는 ‘어떻게 지리적 제약을 극복하고 국내외를 가로지르는 상호작용-의례사슬을 구축할 것인가’, ‘상호작용-의례사슬이 분절되거나 화석화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정서적 에너지를 충전하는 방법은 무엇인가’란 문제로 구체화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학자들의 학술적 세계가 저널, 학술대회, 저서를 매개로 형성된 ‘인정투쟁의 연결망’에 의해 규정된다면 ‘우리’의 외연에 ‘민족’ 또는 ‘국민국가’란 족쇄는 자칫 창조적 업적의 원동력인 상호작용-의례사슬을 절단하는 패적으로 귀결될 수 있다.

공정한 경쟁, 엄격한 평가 필요

 1990년대 중반이후 지속된 한국 사회학의 장기 불황은 현저하게 낮은 자율성, 사회학자의 역할 정체성 혼란, 사회적 수요의 급격한 축소, 학문후속세대의 고갈이란 악순환의 반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국내 사회학계의 낮은 자율성과 이로 인한 역할 정체성은 학문후속세대로 하여금 국내 학술문화에 대한 불신과 자조만을 낳고 있다. 대부분의 사회학계 학문후속세대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학벌차별, 성차별, 대학문화의 비민주성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유학의 길에 오른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 사회학자들은 자신들의 역할 정체성과 학술문화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을까.

 선 박사의 설문 결과에 따르면 상당수의 사회학자들은 한국 사회학이 독자적인 이론 및 방법론 구축해 실패한 채 지적 식민성을 극복하고 있지 못하는 데 동의했다. 대중과의 소통   마저 실패했다는 데도 공감하는 바였다. 사회학자의 역할 정체성을 ‘고도로 전문적인 지식생산자’로 정의한 것과 현실에 대한 평가는 사뭇 달랐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학은 서구에 비해 왜 열등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까. 사회학자들은 대학 연구자들의 과도한 행정업무를 첫 손에 꼽았다. 이어 연구자들 간 치열한 경쟁과 엄격한 평가, 정당한 보상의 부재가 원인으로 제기했다.

 선 박사는 사회학계 내에서 좀 더 치열한 장내 투쟁을 벌일 것을 촉구했다. “연구보다는 사회자본 축적에 몰두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학계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세력과 투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한국 사회학의 내면을 들여다 보면서 사회학(자들)의 정체성 제고를 위해 용기 있는 비판을 던진 젊은 사회학자의 고민이 학계에서 어떻게 수용될 지 주목된다.

우주영 기자 realcosmos@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