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입대한지 두 달이 겨우 넘은 병사였던 그는 34년 전 임진강을 건너 남한으로 내려왔다. 6.25전쟁 이후 남한으로 넘어온 98번째 귀순자이다. 그는 기자회견장에서 “세계일주를 하기 위해서 귀순했다”고 말했다. 걸어서 너른 세상구경을 하고 싶다는 뜻을 품고 죽음을 각오하고 남한으로 내려왔지만 이제는 이 땅에서 가장 오지인 골짜기에서 높은 하늘을 바라보며 살고 있다. 세상을 보고 싶어 이곳에 온 그가 오지에서 세상과 거리를 두며 살고 있는 모습은 내게 우리 사회의 역설로 보였다. 지어진지 1백년이 넘은 그의 조촐한 집 담벼락에는 세계지도가 붙어있었다.
리영광 선생은 1989년 단임골로 들어오기 전까지 자본주의 도시 복판에 살면서 삶의 정나미를 통째로 잃어버렸다. 오로지 걸으며 너른 세상을 보고 싶다는 욕망이야말로 그를 여기까지 오게 한 힘이었을 것이다. 그는 귀중하고, 소중한 기쁨은 모두 느리게 오고 가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단임골에 서 그는 새벽의 신이 주는 은총, 자연의 기쁨을 만끽하면서 살고 있다. 나무, 바위, 야생화 그리고 자연에 깃들여 사는 생명들과 교감하는 기쁨으로 살고 있다. 이제는 세상사람들에게 더러 알려져 방문하는 이들이 많아 조용함을 잃어버릴 때가 있다고 했다.
몇 년 전, 그는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소개된 적이 있었다. 그는 이북에 있는 부모님께 살아있다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슬픈’ 사람이 ‘더 슬퍼 보이는’ 그를 보고 부산에서 산골로 찾아왔다. 그리고 1998년 그는 그 여인과 결혼해서 같이 살고 있다. 맑디맑은 부인이 내주는 수정과를 마시고 나는 작고 아름다운 그의 산골집을 나와 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단임골을 내려왔다.
서울로 돌아온 다음 날 아침, 그에게 내가 쓴 ‘옛길’을 보내드렸고, 그가 쓴 산문집 ‘개마고원 옹고집’(식물추장 刊, 2002)을 읽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