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00:20 (일)
[문화비평] ‘성북동 비둘기’
[문화비평] ‘성북동 비둘기’
  • 이옥순 서강대 동아연구소·인도근대사
  • 승인 2010.07.05 14: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북한산 중턱에 있는 우리 집 마당에는 가끔, 아주 가끔 산비둘기 한 마리가 찾아온다.  도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잿빛 ‘닭둘기들(닭처럼 뚱뚱해서 날지 못하는 것을 빗댐)’과 달리 늘 혼자 날아오는 작은 몸집의 갈색 산비둘기는 외부세계에 대한 경계태세와 긴장감이 온몸에서 배어나와 보기에 안쓰럽다. 이른바 문명세계와 자연의 경계지점까지 내려온 그는 아주 미세한 움직임에도 민첩하게 반응하며 ‘포르륵!’ 날아가 버려서 그 드문 목격사건(!)이 늘 꿈결같이 아득하다.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로 이어지는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가 나온 것이 1968년이다. 그로부터 40년이 더 지난 오늘날의 비대화한 서울의 자락에서 산비둘기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여기며 짧은 만남이 주는 아쉬움을 눅이지만,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마당’조차 없는 도시에서 곧 그마저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지울 순 없다.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은 비둘기만 볼 수 있는 세상이 좋은 건 아니리라. 한때는 평화의 상징이던 비둘기가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된 그 세상이 적어도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이런저런 이유로 ‘가슴에 금이 간’ 사람들은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낄 수 없는 획일화한 도시를 떠나 다 똑같지 않은 것들이 사는 산을 찾는지도 모르겠다. 울긋불긋한 등산복을 차려입고 주말에 북한산에 몰려드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외로운 산비둘기를 볼 때 느끼는 감정이 되살아나는 건 그래서일 것이다.

그러므로 산비둘기가 사는 산, 회색의 도시와 구분되는 초록의 자연을 지킬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는 산에 사는 가여운 비둘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거기에 의존하면서 도시문명으로부터 피난처를 구하는 더 가여운 인간을 위해서이다. 유엔이 ‘생물다양성은 생명, 생물다양성은 우리의 삶’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2010년을 ‘생물다양성의 해(International Year of Biodiversity)’로 정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즉, 환경오염과 생태계의 파괴, 기후변화로 위협을 받는 다양한 생물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그들이 사라지는 속도를 줄이려는 것이다.

지난 세기에 가속화된 더 잘 살기 위한 인간의 역동적인 움직임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생물이 감소되고 많은 종이 사라지는 결과를 수반했다. 우리나라에서 사육되던 이른바 ‘토종’들의 대다수도 경제적인 이유로 20세기 후반에 사라졌다. 다양성이라는 점에서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운해 할 광대한 영토의 인도에서도 많은 동식물이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예를 들면, 1970년대까지 인도에는 약 6만 5천 개의 다양한 벼 품종이 있었으나 녹색혁명의 여파로 생산성이 높지 않은 90퍼센트 이상의 품종이 없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야말로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산비둘기가 사는 산도 비슷한 상황이다. 희귀한 동물과 식물의 보고이자 양분순환, 물의 함유, 토양파괴의 금지, 토사방지 등의 기능을 하는 생태시스템으로서 중요한 삼림지대는 지속적으로 파괴되고 사라지고 있다.

목재와 광물의 상업적 이용, 농사와 목축으로 인한 잠식, 도로 등의 인프라 건설과 관광산업과 주거지의 확대가 그 원인이다. 삼림의 훼손과 파괴는 산사태와 홍수 등의 자연재해를 수반해 인간의 생계와 생존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20세기 최대의 이데올로기인 발전과 성장이 환경파괴와 기후변화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중이다. 배를 주리는 무겁지 않은 인간의 존재를 생각하면 잘 살기 위한 노력, 발전에 대한 높은 숭배를 칭찬해야 마땅하지만, 발전이 능사가 되면 결국 인간의 존재가 가벼워진다는 걸 절감하는 요즘이다. 이제라도 지구상의 많은 단체와 사람들이 자연에 대한 단기적인 이용보다 장기적인 보호의 필요성을 깨닫고, 녹색성장이라는 역설적인 이름을 애용하게 된 건 다행한 일이다.

지구상에는 약 200만 종의 생물이 있다고 한다. 유엔은 생물다양성을 동물과 식물, 지구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모든 생물의 다양성과 사막, 숲, 습지, 초지, 강, 해양, 농경지 등 모든 생태계의 다양성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그들이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보전을 강조한다.

그러나 내가 서울에서 느끼는 일상으로서의 생물다양성은 새가 앉을 나무조차 드문 도시의 한 모퉁이에서 그저 가능한 더 많은 새소리를 듣는 것이다. 새소리가 기계음과 다르다고 낭만적으로 여겨서가 아니라 더 많은 새가 살 수 있을 정도로 환경이 좋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산비둘기를 목도하는 안타까운 기쁨을 더 누리고 싶은 이유도 그렇다.

이옥순 서강대 동아연구소·인도근대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