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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서평 종언의 시대인가
[문화비평] 서평 종언의 시대인가
  • 이승우 도서출판 길 기획실장
  • 승인 2010.06.28 15: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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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의 시대는 종언을 고했는가. 두려운 마음에 곱씹어본다. 사실 일반독자들이 읽는 엔터테인먼트 성향의 책들이나 실용서의 경우, 굳이 전문가 서평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학술서의 경우는 차원이 다르다. 예를 들어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같은 책을 처음 맞닥뜨리는 것은 쉽지 않다. 아니 전문가 서평을 통해 길을 안내받는다 하더라도 접근이 꽤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학술(전문가)서평은 존재이유가 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일간 신문에서 본격적인 학술서에 대한 전문가 서평을 비교적 자주 찾아볼 수 있었다. 한동안 신문사마다 북섹션을 경쟁적으로 만들었을 때다. 당시 서평란은 양질의 인문서를 찾아다니는 열혈 독자층에게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해주었고, 한편으로는 우리 학계의 지형도와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척도로도 여겨졌다. 하지만 어느새 그런 지면은 모두 사라지고 현재는 각 신문사 출판담당 기자들에 의해 서평 지면이 꾸려지고 있다. 자연스레 학술서는 뒷전으로 밀리고, 다뤄진다고 하더라도 담당기자가 관심 있거나 알고 있는 지식을 동원해 기사화시킬 수 있을 때뿐이다. 따라서 본격적인 학술서가 신문 서평란에 실리는 사례는 가뭄에 콩나듯한다. 변화무쌍한 우리 신문의 지면들을 보면, 참으로 시대의 변화를 발빠르게 선도하는 느낌이 든다. 이른바 대중 취향에 맞게 가야한다는 논리….

잠깐 눈을 돌려보자. 이웃 일본만 하더라도 출판면의 서평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전문가 서평으로 꾸려진다. 더더욱 우리 신문들로서는 놀라운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다뤄야 할 책의 중요성에 비춰 속보 경쟁 없이 정밀한 서평을 위해 책 출간 이후 한 달 뒤에라도 서평기사를 싣는다는 점이다.

독일의 보수적인 신문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자이퉁> 출판면을 보았을 때 받은 충격은 더할 말이 없을 정도다. 방대한 분량의 별도 섹션의 위압감을 간신히 누르고 알지도 못하는 독일어를 더듬더듬 읽어보면 출판면이 아주 알차게 꾸려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실용서에서부터 전문적인 학술서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유용한 독서 길라잡이 역할을 함에 이방인의 눈에도 놀라울 따름이다. 국내 진보적인 독일 유학 출신 학자들조차 그 신문을 통해 독일 지성계와 문화계의 흐름을 짚어본다니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출판면을 만드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사실 신문사마다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선명하게 드러내보일 수 있는 것이 문화면이다. 정치기사나 경제기사는 ‘사실’을 주로 다루고 사설은 여론 형성을 주목적으로 신문사 고유의 성격을 드러내는 지면이라고 본다면, 문화면은 자신들의 성격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고 타 신문과의 차별성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지면이다. 그러나 문화면에서도 그 중요성이 큰 우리 신문의 출판면들은 천편일률적으로 매주 새롭게 출간된 책들을 소개하는데 급급하고 그마저도 기자들에 의해 작성되는 형편이다. 하물며 출판사에서 작성한 보도자료를 참조하는 수준이 아니라 거의 그대로 전재하는 경우도 있다하니 그 질적 함량을 보장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물론 신문사 경영이 어려워지고 매체간 경쟁이 심하다보니 긴축적일 수밖에 없고 또 한정된 기자 자원을 갖고 출판면을 꾸려가기에는 어려운 점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책 소개를 기자들에게 부담지우기보다는 해당 전공자들의 네트워크를 구성해 적재적소에 양질의 학술서를 소개함으로써 출판면의 질적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이 필요하다. 아울러 논쟁적인 성격의 책을 부각시켜 독자들로 하여금 주도적으로 그런 논의에 끌어들이게 함으로써 능동적 책읽기를 유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만나본 인문, 사회과학 분야의 전공자 대부분이 같이 하는 말이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여 책을 써도 같은 전공자들끼리조차도 아무런 피드백이 없다는 것이다. 한 프랑스철학 전공자는 이런 실정에 좌절해 새로 일본어를 배워 자신의 책을 일본에서 출간하려고 한다. 논쟁은 둘째치고 반응조차 없는 동종업계의 잔인한 무시(!)에 학자로서의 최소한의 존재감을 찾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생각한 것이라고 한다. 평가받을 곳도 평가해줄 곳도 없는 이런 사태를 신문의 문화면이 끌고 가야하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출판면을 고담준론만 다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분명 신문은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다. 따라서 독자 수준에 적합한 지면을 꾸려야 함을 당연한 논리이다. 다만 적어도 한 사회의 지적 수준의 척도를 드러내보이는 양질의 학술서를 응당 대접할 수 있는 포용력과 궁벽함 속에서도 알찬 지적 성과를 드러내는 학자들을 제대로 된 서평을 통해 평가해주어야 함은 마땅할 것이다. 깊이있는 책소개와 본격서평이 사라진 지금, 출판면은 출판계 종사자들조차 별로 신뢰하지 않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분명 곱씹어볼 대목이다.

이승우 도서출판 길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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