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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기사, 소설, 판타지
[딸깍발이] 기사, 소설, 판타지
  • 여건종 편집기획위원 / 숙명여대·영문학
  • 승인 2010.06.28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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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건종 편집기획위원 / 숙명여대·영문학
아주 오래된 소설 이론에서 소설은 스스로를 신문기사와 판타지로부터 구분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그것에 의하면 신문기사는 사실을 충실하게 나열한, 따라서 인간의 정신 능력-상상력, 창조력이라고 부르는 것-이 결여된 열등한 서사양식이고, 판타지는 욕망이 현실을 일방적으로 압도하는 서사, 따라서 현실을 보여줄 수도, 현실에 개입할 수도 없는 더 열등한 서사 양식이다. 소설은 이 두 가지를 말 그대로 ‘변증법적으로’ 지양하여 사실과 욕망과 상상력을 버무려 새로운 현실을 창조한다.

    최근에 좀 더 진화되고 복잡해진 서사 이론은 인간의 이야기는 무엇보다도 그 이야기를 만들거나 읽는 사람들의 욕망에 사로 잡혀 있으며, 이야기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은 허구라고 단정한다. 사실과 욕망, 상상력과 현실이 이야기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말하는 것은 이 글에서 소설 이론을 논의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소설이 다른 동네에서 너무 수모를 당하고 있어서 꺼내는 얘기이다.

  
    조선일보는 “광우병 촛불 그 후 2년, 그 때 그 사람들은 지금”이라는 특집 기획 기사를 실었다. 그런데 이 특집 기획의 인터뷰에 인용된 당사자들이 이 기사를 “소설”이라고 항의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인터뷰 기사에 인용된 김성훈 전 장관은 “조선일보의 작문 실력은 소설가 뺨칠 만하다”라고 말했고, 한 촛불 소녀는 자신의 발언이 기사화된 것을 보고 “이번 기획 기사는 팩트가 아닌 소설이다. 짜깁기 왜곡 보도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기획 기사를 총괄한 것으로 보이는 조선일보 취재팀장은 이러한 항의에 대한 반론으로 “누가 소설을 쓰는가”라는 칼럼을 썼다.

    도대체 소설이 어쨌길래 이 사람들이 소설을 가지고…. 나는 소설을 가르쳐서 먹고 사는 문학 선생이다. 이들이 왜 이러는가를 알고 싶어 그동안 오고 간 기사와 인터뷰들을 찾아보았다. 광우병 사태 2년을 맞아 조명한 조선일보의 특집 기획은 대담하고 야심찬 기획이었다. 그것은 2년 전 광우병 촛불의 주역들이 대부분 반성하고 부끄러워하고 있고 그들이 제기한 의혹들이 모두 무책임한 선동과 근거 없는 괴담에 의해 유포된 것으로 판명됐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 특집 기사의 특징은 인터뷰의 대상이 됐던 사람들이 후회하거나 반성하는 사람들, 줏대가 없고 아무 생각 없이 남이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로 묘사돼 있다는 것이다. 매우 특이한 취재 방식이다. 촛불 문화제에서 무대에 올라 편지를 읽었던 한채민 양은 “중간고사를 끝내고 구경삼아 시위에 갔다가” “읽으라니까 읽고, 별생각 없이 단체에서 써준 그대로” 했다고 한다. 광우병 위험을 경고한 김성훈 전 장관은 자신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미국 여행을 하면서 햄버거를 먹고 돌아다녔다. 이 특집은 광우병 촛불 사태 주역들의 일종의 커밍아웃 혹은 양심선언인 셈이다.

    조선일보의 취재팀장은 “누가 소설을 쓰는가”에서 기사에 실린 것은 모두 팩트이며, 녹취록이 있으며 취재원이 말한 모든 것을 기사화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항변한다. 인터뷰 기사를 본 김성훈 전 장관은 “나중에 보니 총알을 잔뜩 장전하고 총구를 들이대고 있었는데 나는 철없이 성공적으로 끝난 강연을 무용담처럼 이야기해 준 셈”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앞에 언급된 촛불 소녀는 “정말 뇌도 심장도 없는 것처럼, 자기 주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것처럼 보도가 됐다”며 “저희는 그렇게 무지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이 한채민은 앞의 한채민과 왜 이렇게 다른가? 그들은 동일한 인간인가? 무엇이 팩트인가?

    욕망이 너무 앞서 나가 욕망이 사실을 압도하면 기사는 판타지가 된다. 이 욕망은 광우병 촛불이 괴담이고 선동이었다는 생각을 사실로 만들고 싶은 욕망이며 자신이 속한 조직이 만든 프레임에 충실하고 싶다는 욕망이다. 정보의 경로를 독점하고 있는 언론이 스스로의 욕망의 서사를 사실로 만드는 과정에서 사람은 우스꽝스러워 지고, 뒤틀려지고, 허접스러운 존재로 추락했다.

여건종 편집기획위원 / 숙명여대·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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