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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非情한 대학이 두렵다
[대학정론] 非情한 대학이 두렵다
  • 최봉영 논설위원 /한국항공대·한국학
  • 승인 2010.06.28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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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봉영 논설위원 /한국항공대·한국학
우리는 흔히 시간으로 품을 파는 일을 아르바이트라고 말한다. 아르바이트로 하는 일은 대개 전문성이 적으면서 누구나 배우면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까닭에 아르바이트로 하는 일은 비정규직의 축에도 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땅에서 아르바이트처럼 시간으로 품을 파는 일이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곳이 대학이다. 대학이 지식을 전문적으로 가르치고 연구하는 곳이지만,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일의 많은 부분은 시간으로 품을 파는 사람들, 즉 시간강사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대학에서 전임교수가 담당하는 강좌보다 시간강사가 담당하는 강좌가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옛날에는 대학의 시간강사를 보따리장사라고 말해왔다. 강의에 필요한 교재를 보따리에 싸서 이리저리 품을 팔러 다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시절에는 너나없이 가난하게 살았던 까닭에 시간강사의 임금을 가지고서 가난하고 고달프게 살아도 어느 정도는 버틸만했다.

오늘날 우리는 국민소득 2만 달러에 이를 만큼 부유해졌지만, 시간강사만은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임금으로 옛날과 다름없이 가난하고 고달프게 살아야 한다. 이들은 갖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오로지 하나의 꿈, 즉 전임교수가 되는 날만을 기다리면서 온갖 괴로움을 참아가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러한 꿈이 황당하게 깨어지고 부서졌을 때, 죽고 싶지 않은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런 까닭에 이 땅의 시간강사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내몰리고 있다.

우리의 대학들은 시간강사의 임금을 착취한다는 점에서 매우 비정하다. 대학들이 시간강사의 생계를 돌아보지 않은 채, 재정사정을 이유로 시간강사를 저임금으로 착취하고 있다.
이는 모든 대학들에 해당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아예 변명조차 하지 않은 채 무시해버린다. 그러나 대학이 저지르고 있는 이런 비정함은 어떤 것으로도 용서받기 어렵다. 

우리의 대학들은 공정하지 못한 방식으로 교수를 채용한다는 점에서 매우 불의하다. 일부 대학이나 일부 학과에서 그러한 일이 벌어진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그것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하기 어렵다.
최근 <교수신문>의 잇따른 시간강사 설문조사가 우리 대학의 비정한 모습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뽑으려는 사람을 미리 정해놓고 공개채용을 내걸거나, 정해진 사람에게 점수를 더 주려고 심사의 기준을 이리저리 고치거나, 채용을 빌미로 삼아 논문을 가로채거나 금품을 받는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대학이 어떻게 자율과 책임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대학의 질은 교육과 연구를 담당하는 교수의 질에 달려 있다. 그런데 교수의 질은 이들이 시간강사로서 대학에 첫발을 내딛어서 어떤 생활을 했는가에, 그리고 시간강사에서 전임교수가 될 때 어떠한 과정을 밟았느냐에 따라서 크게 달라진다.

시간강사시절에 저임금과 착취를 오래 겪으면 겪을수록 악만 남은 교수가 될 가능성이 높으며, 시간강사에서 전임교수가 될 때 부당한 일을 많이 당하면 당할수록 저만 챙기는 교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대학에서 악만 남고 저만 챙기는 교수들이 크게 늘어난다면 대학의 앞날은 생각해보나마나이다.

대학이 교수의 기를 살려놓아야, 교수들이 세상에 맑은 기운을 불어넣을 수 있다. 대학이 안으로 떳떳하지 못하면, 교수들이 풀이 죽어서 세상에 필요한 바른 말조차 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악만 남고 저만 챙기는 교수들이 입으로만 진리, 정의, 평화, 복지 등을 떠벌리게 된다. 오늘날 교수들의 말과 글이 점점 공허해지는 까닭이다.

우리가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시간강사를 에워싸고 있는 비정과 불의부터 걷어내야 한다.

최봉영 논설위원 /한국항공대·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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