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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을 믿고 기다려준 ‘선생님’
학생을 믿고 기다려준 ‘선생님’
  • 강은주 강원대·심리학과
  • 승인 2010.05.10 16:49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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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지도교수’] 이정모 성균관대 명예교수

나에게 이정모 성균관대 명예교수님은 그냥 ‘선생님’이다. 누구누구 선생님이 아니라 앞에 형용사 없이 ‘선생님’ 이라고 불리는 선생님,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선생님이다. 무엇이 선생님을 이렇게 절대적인 스승이 되게 했을까. 그 어른은 수십 년의 교수생활에서 나처럼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는 제자를 나 말고도 많이 두셨다.

선생님과의 본격적인 만남은 대학 2학년에 들어섰을 때부터다. 난 선생님이 내 앞에 펼쳐 보이시는 학문의 세계를 무슨 종교에 입문하는 사람처럼 절대적인 열성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래서 난 학부를 졸업할 무렵, 마치 사제의 길을 가려는 사람처럼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학원에 가야겠다는 막무가내의 소명의식을 가지게 됐다. 나중에 종교를 가진 다음에 알았다. 그것은 거의 종교적인 열정이었다는 것을. 선생님이 그 불을 여러 학생들에게 지폈던 것이다.

처음으로 들어본 ‘인지심리학’이라는 학문을 80년대의 그 황량한 시절에도 우리들 앞에 펼치실 때, 그것은 황홀한 5월의 꽃밭과 같았다. 우리가 본 것은 선생님의 학문세계를 향한 경외감과 순수한 열정이었다. 한번은 학기말에 ‘가수가 노래를 못 불러도 가수를 보지 말고 부디 노래를 들어달라’는 말로 강의를 끝마치셨다고 한다(선생님은 오페라 팬이다). 늘 본인은 어눌하게 강의를 못 하지만 부디 가르치는 내용을 보라는 말씀이었을 것이다. 수업이 끝나고 대학원생들끼리 모여 하는 말을 학부생인 내가 옆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 선배들의 말보다 전공도 다르고 능력도 다르던 대학원생 선배들의 표정이 모두 뭔가를 한 대 맞은 듯 했다는 것이다. 난 알았다. 그들도 선생님의 망치를 맞았다는 것을. 그런 것은 아마 평생 갈 것이다.

선생님의 엄청난 지식욕과 광범위한 지성의 폭은 나 같은 어린 학생의 마음속에 학문을 하기에는 내가 역부족이라는 느낌을 심어주시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런 회의에 흔들리는 학생들에게 공부는 머리 좋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 주시곤 했다. 공부는 미련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그 분의 스승의 말씀이라시면서. 우리는 머리는 좋지 않아도 미련할 자신이 생겼던 것 같다.

그런가 하면 선생님은 아주 작은 우리의 질문과 대답에 늘 진지하게 귀 기울이고 감동해 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 자유롭게 질문하고, 우리의 생각을 말할 수 있었다. 그런 선생님 앞에서 배울 때 난 내 머리가 굉장히 좋은 줄 알았다. 모든 제자들을 언제나 ‘똑똑한 학생’처럼 대해 주셨다. 그것은 그분이 진심으로 학생들을 존중해 주셨기에 우리가 가질 수 있었던 자신감인 것 같다.

그 분이 나의 스승인 것은 그런 나를, 내 적성에 맞는 전공, 그 분의 전공이 아닌 다른 전공으로 돌려 세우신 것이다. 난 그래서 선생님의 학문적 지도를 떠나 다른 방향의 길에서 내 전공을 수십 년 하면서도 늘 감사드린다. 선생님은 내 석사 지도교수님이 아니었지만, 내 인생의 지도교수가 되셨다. 한 단계 끝나고 다음 단계를 선택할 때 마다 망설이거나 주저하는 나를 위해 거기에 늘 계셨다.

언제나 내가 찾아가서, 또는 멀리서 편지로 푸념, 걱정, 두려움에 의기소침해 있을 때 조용하고 따스하게 귀 기울여 주셨다. 어느 학생이라도 찾아온 학생을 선생님 방의 편안한 소파에 앉혀서 차분하게 그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셨다. 어떻게 그런 시간을 내 주실 수 있었을까. 늘 바쁘신 분 이었는데. 우리는 언제라도 선생님을 찾아가서 그분의 시간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선생님에게 밤에 꾼 개꿈 속의 두려움이나 공상 같은 장래의 꿈을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정말 그 분이 학생을 대하시던 모습과 반대로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올해도 몇몇 학생들이 스승의 날, 나에게 카네이션을 주겠지. 그리고 난 여전히 떨떨하게 느끼겠지. 진정으로 꽃을 받을 만큼 내 학생에게 베푼 적이 없을 뿐 아니라, 내 마음의 ‘카네이션 빚’ 때문이다. 나의 스승에게 카네이션으로 감사의 빚을 갚는다면, 난 얼마나 많은 꽃을 가져와야 할지 막막하다. 꽃집에서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인데, 난 어떻게 마음에서 꽃을 피워야 할지 아직도 알지 못한다.

강은주 강원대·심리학과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생물심리학 박사를 했다. 주로 기능영상법을 이용한 인지 신경과학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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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기 2016-04-15 15:39:53
평상시의 모습에서도 참 학자의 자세를 몸으로 실천해서 보여주신 교수님이세요.

김대식 2010-05-20 01:07:46
이정모 선생님 제자이시군요. 1980년대 대우재단이라는 데에 근무하면서 교수분들께 연구지원 업무를 담당했던 사람입니다. 직무상 온갖 종류의 학문을 하시는 교수님들을 자주 만나서 도움드리는 일을 했었는데, 이정모 교수님 제자분의 얘기를 읽고는 옛생각이 나서 주절거려 봅니다. 저는 대우재단에서 학자분들을 만나 그 분야 연구상황을 파악하고, 연구자분들께 연구비를 지원해 드리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저로서는 정말 듣도보도 못한 - '인지심리학'이라는, 요즘 말로 '듣보잡' 학문을 하시는 이정모 교수님이 대우재단에 연구비 신청하시고 지원이 결정되어 점심을 한끼 대접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인지심리학"이라는 학문이 필요한 학문 분야일 것이라는 판단으로 재단의 자문위원회에서 지원해 드리게 되어 아마도 "한국 최초의" 인지심리학 저술이 출판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분야 학문은 전혀 모르지만 '인지심리학'이란 분야의 학문이 이 땅에 출현하게 되는 데에 기여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