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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越權의 맛
[대학정론] 越權의 맛
  • 최봉영 논설위원 /한국항공대·한국학
  • 승인 2010.05.10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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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정약용은 생명의 본성을 嗜好로써 말했다. 그는 파가 닭똥을 좋아하고, 노루가 평지를 좋아하고, 꿩이 숲을 좋아하는 것은 모두 본성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풀이했다. 또한 그는 사람이 뭍 생명과 달리 윤리적으로 살아가려고 애쓰는 것은 도의를 좋아하는 기호를 본성으로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정약용이 말한 기호를 오늘날 말로 한다면 맛에 해당한다. 모든 생명은 저마다 좋은 맛과 싫은 맛을 가려서, 살맛나게 살아가고자 한다. 생명체가 맛을 잃으면 좋은 일과 싫은 일을 가릴 수 없게 돼, 딱히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음으로 살아가는 일조차 할 수 없게 된다.

한국인은 사람이 맛에 기대어 살아감을 살맛, 죽을 맛, 性味, 意味, 興味, 趣味, 滋味 따위로 말해왔다. 즉 한국인은 사람의 성격이 가진 맛을 성미, 뜻에 담겨진 맛을 의미, 맛이 일어남을 흥미, 맛을 좇아감을 취미, 맛이 강하게 생겨남을 재미 따위로 말한다.

사람은 어떤 것에 맛을 들이느냐에 따라서 살아가는 방식과 내용이 달라진다. 김치에 맛을 들이면 김치를 찾고 치즈에 맛을 들이면 치즈를 찾듯이, 바른 일에 맛을 들이면 바른 일을 찾고 그른 일에 맛을 들이면 그른 일을 찾는다. 어떤 사람이 되느냐는 맛을 들이기에 달려 있다.

사람은 제 맛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맛 또한 살피고 알아줄 수 있어야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다. 이러니 사람들은 서로 살맛을 북돋워줄 수 있도록 착한 맛에 길을 들여야 한다. 고약한 맛에 길을 들이면 남에게 죽을 맛을 안겨줌으로써 함께 어울려 살아가기 어렵다.

우리가 함께 어울릴 수 없도록 만드는 고약한 맛 가운데 으뜸인 것이 지위나 돈의 힘을 빌려서 저의 이익만을 챙기려는 ‘월권의 맛’이다. 사람이 월권에 맛을 들이면 법률이나 규정 따위를 껍데기나 허울로 여기면서, 오로지 저의 이익을 좇아서 무소부지로 날뛰게 된다. 이들은 저의 살맛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죽을 맛으로 몰아넣는 일조차 마다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 월권에 맛을 들인 사람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언제부터인가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게 됐다. 이는 자리나 돈의 힘을 빌릴 수 없으면, 월권하는 사람들에 의해 억울하게 당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비꼬는 말이다.  

이즈음 주위에는 월권의 맛에 빠져서 남을 못살게 구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관료, 의원, 판사, 검사, 회장, 사장 등이 월권의 맛에 빠져서 세상을 온통 불법과 비리의 천국처럼 보이도록 한다. 특히 법의 집행을 맡고 있는 법조인이 월권의 맛에 빠져서 나라의 꼴을 우습게 만드는 일이 많다.

법조인이 월권의 맛에 빠져 있음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전관예우이다. 전관예우는 글자 그대로 ‘현직 법관이 전직 법관을 예로써 대우하는 관례’를 말하는데, 이는 국민의 복리를 위해서 만들어진 법을 현직에 있는 후배가 퇴직한 선배 변호사의 돈벌이를 위한 예의 도구로 씀을 말한다. 법의 심판이 사사로이 예를 표하는 도구로 쓰이다니, 어디 말이 되는 말인가.

법조계가 더욱 한심한 것은 이들이 전직 법관에게만 법을 사사로운 도구로 쓰는 것이 아니라 현직 법관끼리도 사사로운 도구로 쓴다는 것이다. 예컨대 재판을 담당한 판사에게 석궁을 쏜 김명호 교수 사건, 삼성비자금로비를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 사건, 검사와 스폰서 관계를 폭로한 정아무개 사장 사건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법조인들이 국가와 국민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저들 맛대로 법을 사사로이 주무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조직처럼 돼버린 검찰과 법원이 국가기구로서 제 구실을 할 수 있도록 근본을 바로잡아서, 국민들이 빼앗겼던 살맛을 되찾도록 해야 한다.

최봉영 논설위원 /한국항공대·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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